독특함에 대한 편견,열정으로 바꿔간다
독특함에 대한 편견,열정으로 바꿔간다
  • 김관모 기자
  • 승인 2009.10.0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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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댄스복을 끈질긴 진정성으로 재단하다
스포츠댄스웨어의 명장, 장일남패션 장일남 대표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우리나라에서 스포츠댄스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볼룸댄스나 사교댄스로 불리며 ‘춤바람 났다’는 식의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서 직접 즐기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스포츠댄스는 음지에서 벗어나 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심지어 연예프로그램에서 스포츠댄스를 자주 다루는 것은 물론 댄스를 통한 다이어트 운동 등이 알려지면서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기고 있다.

이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인식으로 외면하던 시기에도 진정성을 갖고 그 일을 자신의 천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최근 스포츠댄서들은 사람들에게 각광 받고 있는 직업이며, 스포츠댄스웨어로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의류디자인을 개척한 디자이너가 명장이란 명예를 얻었다. 올해 스포츠댄스웨어라는 이름으로 처음 명장에 오른 장일남패션의 장일남 대표(56)가 바로 그러하다.


예술과 기능의 만남

서울 명동에 자리 잡은 장일남패션 부티크의 옷들은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레이스거나 화려한 파티복들처럼 보인다. 잘못 생각하면 춤바람 난 ‘아줌마’나 ‘아저씨’들이 몰려와 옷을 뒤적이다 갈 것 같지만 실은 한국에서 명실상부한 스포츠댄스의 프로들이 옷을 주문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까다로운 프로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스포츠댄스웨어는 외부의 아름다움과 독창성, 그리고 내부로 느끼는 기능성이 두루 갖춰져 있어야 한다.

먼저 스포츠댄스는 현란함이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춤이기 때문에 자극적이면서도 각 댄스와 음악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보통 옷 제작은 거의 수작업으로 이뤄지며, 옷 하나 만드는데 3~4주가 걸린다. 이 중 절반 이상의 시간을 옷에 액세서리나 무늬를 달아서 옷의 맵시를 내는데 할애한다.

댄스를 하는데 가장 적합한 기능성이란 어떤 동작을 해도 불편하지 않은 착용감을 말한다. 실제로 스포츠댄스웨어는 보기에는 활동이 불편할 것 같지만 실제로 옷 안에는 신축성이 좋고 땀 흡수가 잘되는 면스판으로 된 레오타드 등이 붙어 있다. 이런 옷들은 입었지만 입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주고, 평소에 움직임이 매끄럽지 못한 동작을 좀 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까다롭게 굴던 프로선수급 손님들도 이제는 이곳에 맡긴 옷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10년 전까지 스포츠댄스웨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장일남 명장이 보여주는 옷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대단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포기하지 말고 확인하고 움직여라

어려서부터 옷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장일남 명장은 학원을 수료하고 양장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특히 장일남 명장은 화려하고 다양한 제작이 가능한 여성복에 집중했다. 그래서 명망 있던 박윤수 의상실에 들어가 패턴 실장을 하면서 경험을 쌓기도 했지만 결국 다양한 옷을 만들기 위해 독립해서 홍대에 자신만의 부띠끄를 열었다.

당시 그는 호기심이 생기고, 그래서 해보고 싶은 옷은 무엇이든지 시도했다. 특히 그가 집중하던 분야는 파티복이었다. 1990년도까지 아직 생소한 분야였지만 그는 유명 패션모델들과 접촉하기도 하고 일본이나 중국, 필리핀 등 해외에 수출하면서 안정을 잡아갔다.

그러다가 2000년도 초에 우연히 스포츠댄스 경기대회가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스포츠댄스웨어를 처음 접하게 됐다.

“30년 가까이 안 만들어본 옷이 없었지만 스포츠댄스 장면을 보고 나니까 정말 해보고 싶은 의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스포츠댄스라는 것이 종합예술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귀걸이, 목걸이, 장식, 의상, 신발까지 모두 코디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매력 있겠다고 느꼈어요.”

그 당시 한국에서 스포츠댄스는 프로선수들을 비롯한 소수의 마니아층만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난생 처음 이를 접하는 장일남 명장은 모든 것이 새롭고 어렵게 느껴졌다. 게다가 옷을 만드는 기술도 한국에는 전혀 알려진 곳이 없어서 옷을 수입해야하는 실정이다 보니 배울 곳도 마땅치 않았다.

제대로 된 스포츠댄스와 의상을 봐야한다는 생각만으로 장일남 명장은 바로 댄스의 본고장인 영국 블랙풀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열리는 세계 대회 등을 관람하고 선수들의 각종 의상들을 관찰하고 연구해 서울로 돌아와 그 모습을 반복적으로 만들면서 연습을 거듭했다. 그렇게 2002년 스포츠댄스웨어 부띠끄를 처음 오픈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의상을 보러 사람들이 올 리 만무했다.

장일남 명장은 무작정 한 음반회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스포츠댄스와 관련된 사람을 소개받아 매년 큰 행사장에서 패션쇼를 열고 대중에게 의상과 장일남 패션을 알리는 발판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제가 생각하고 해야겠다는 것들은 바로바로 하는 편입니다. 처음 접하는 일이고 하는 일도 어렵지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어디든지 바로 찾아가서 알아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분야를 조사해서 관찰하고 따라해 보는 연습을 매일 반복했지요. 그때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라 반신반의했는데 조금씩 알려지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주변에서도 지지해줘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끈질김으로 독특함에 대한 편견을 바꾸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처음부터 장일남 명장의 시도를 따뜻하게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당시 다루던 파티복이나 사교댄스복은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서 음지에 머물러 있던 분야였기 때문이다. 처음 스포츠댄스웨어를 시작한다고 할 때도 웃어넘기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장일남 명장은 “지금도 댄스를 배우는 사람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자기가 댄스 배우는 일을 숨기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스포츠댄스나 사교댄스 등이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선에 신경을 썼다면 지금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를 명장의 자리에 오르게 한 것은 스포츠댄스웨어라는 특이함보다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입체패턴’이라는 재단 때문이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재단 과정에서 평면패턴은 원단에 종이를 올려놓고 자를 대서 제도하는 것이라면, 입체패턴은 원단 자체를 사이즈에 따른 사람 모형에 입혀서 핀으로 고정하고 가위질을 해가며 맞춰나가는 방식이다.

이는 유럽에서 유행하던 패턴으로 대학의 한 교수와 함께 연구해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가꾸어 남들보다 한발 앞선 기술로 뛰어난 옷을 만들 수 있었다. 여러 의상실에서 러브콜을 받기도 하고 박윤수 디자이너가 그를 붙잡으려고 한 이유도 이런 뛰어난 기술과 끈질김 때문이었다.

“이미 잘 닦여 있는 직장을 가는 것도 좋지만 내가 가서 같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직장으로 가는 것이 좋지요. 저와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나 후배들에게 ‘너는 참 운이 좋다. 우리 같이 커가자’고 항상 독려합니다. 막상 이 일을 통해 명장이란 칭호를 받고 나니 뭔가 새롭게 느껴지고 무슨 일을 해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가 벌이는 패션쇼도 범상치 않다. 다른 패션쇼와 달리 사람들이 관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댄스에 참여한다. 100평도 넘는 홀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6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추고 축제를 벌인다.
일정이나 경제적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년 이 패션쇼를 빠지지 않고 열고 있다. 그런 꾸준함 때문일까. 이제 이 패션쇼는 주위에 많은 반향을 일으키며 연예계나 정치계 인사들도 패션쇼 참가 요청에 흔쾌히 응하고 있을 정도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해라

장일남 명장에게 옷을 만드는 일은 즐거움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만족해야 하루하루가 즐겁죠. 그러다보면 세월이 흘러갑니다. 자기의 꿈과 이상도 자꾸 커지고 변하게 되죠. 큰 틀을 본다기보다는 자기 앞의 일을 성실히 하다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에게도 일을 하면서 힘들 때가 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이 워낙 개성이 강하고 까다롭다보니 주문하는 것도 많고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다른 옷과 조금만 비슷해도 항의가 들어오기 일쑤다.

또한 수작업으로 일일이 주문받은 옷을 재단하다보면 미리 틀을 맞춰서 파는 기성복은 생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이제 장일남 명장이 그들을 도와줄 경지에 이르렀다.

“아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연습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죽어라 노력하는데 자기가 원하는 만큼 결과가 잘 나오지 않다보니 이런저런 상담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그 선수의 특징에 맞춰서 옷을 바꿔주면 성적이 금방 오르는 거예요. 그럴 때는 이 일을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명장에 오른 소감을 자신과 함께 스포츠댄스를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그가 느끼는 스포츠댄스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힘든 일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마니아층에서 대중과 함께 하는 댄스

“탱고는 인생과는 달리 단순하죠. 탱고는 정말 멋진 거예요.”

1990년대 초 알 파치노가 주연한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에서 맹인인 프랭크 슬레드(알 파치노)가 도나라는 여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며 탱고를 제안한다. 그가 탱고를 배운 적이 없어 걱정하는 도나를 이끌고 전 국민이 한번은 들어봤을 ‘Por una cabaza’의 음색과 함께 탱고를 추는 장면은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교댄스로 불리던 탱고가 아직 한국에서 대중화되지 않은 때 이미 사람들은 이런 영화나 TV매체를 통해 춤이란 문화를 갈망하고 있었다. 춤을 보는 것을 즐기는 일은 일반화가 됐어도 자신이 직접 즐기는 것은 아직 낯선 시기였다.

하지만 최근 스포츠댄스는 이미 우리 생활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 이미 한국체육회에 스포츠댄스는 2008년 정기 가맹이 됐으며 학교에서 선수를 뽑고 교육을 시키는 한편, 국가대표 선출을 위한 프로그램도 개설된 상태다. 2010년에는 광주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까지 했다.

또한 동사무소를 비롯해, 문화체육센터나 읍·면사무소에서도 스포츠댄스 강사가 강좌를 할 정도다. 그동안 마니아층이나 프로선수들만 즐기다보니 수공예를 위주로 하는 스포츠댄스웨어 가격도 40~50만 원대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렀다. 장일남 명장은 이제 스포츠댄스가 국민생활체육으로 자리매김한 만큼 대중이 편하게 댄스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위해 중저가의 제품 생산에 나설 예정이다.

이제 스포츠댄스를 즐기는 것도 세상살이만큼 복잡하지 않다. 예쁜 옷을 입고 음악에 맞춰 새로운 댄스를 즐길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