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공무원노조 닻 올리다
통합공무원노조 닻 올리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9.10.0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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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노정관계 어떤 변화 가져올까?
행정서비스 개선·풀뿌리 사회연대 앞장설 것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 9월 26일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이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법원공무원노동조합,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등 3개 조직이 근간이 된 통합공무원노조는 노동부 설립신고 기준 11만5천여 명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다. 여기에 경남공무원노동조합협의회, 지식경제부노동조합 등이 합류할 것으로 예상돼 조합원 16만 명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통합공무원노조의 앞길이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통합에 앞서 실시한 조합원 총투표에서 정부와의 갈등이 표출되는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만만찮다. 설립신고만 해도 통합공무원노조는 12월 이내에 신고를 마친다는 계획이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해고자의 조합활동 등을 이유로 설립신고를 반려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하반기 노사·노정관계에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공무원노조의 통합 과정을 통해 통합이 가지는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보자.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2년의 갈라섬 끝에 다시 하나로

지난 9월 21, 22일 이틀간 공무원노조 3개 조직은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3조직의 통합과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을 결정했다. 이로써 지난 2007년 8월 분화됐던 공무원노조가 다시 하나로 뭉쳤다.

공무원노조의 전신은 지난 1999년 각 기관별로 구성된 공무원직장협의회(이하 공직협)다. 공직협은 노동조합은 아니지만 최초로 공무원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구로서 출범했다. 하지만 공직협은 직장협의회법에 따라 단체교섭권이 인정되지 않는 등 온전한 권익 대변 기구로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한계로 인해 공직협은 단체교섭권을 비롯한 노동3권을 완전하게 보장받는 노동조합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문제의식은 지난 2001년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연합(전공련)을 결성함으로써 구체화되다가, 결국 지난 2002년 3월 대의원대회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창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공무원노조가 설립됐지만 이들은 아직까지 ‘법외노조’였다. 정부는 공무원이 노동조합으로 뭉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2년 12월 치러진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가 ‘교원노조 수준의 공무원 노동기본권 인정’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됨에 따라 공무원‘노조’의 가능성이 열렸다.

노무현 후보의 당선으로 노동부는 공무원노조특별법(공무원의노동조합설립및운영등에관한법률)을 국회에 제출했고, 논란 끝에 이 법안은 2004년 12월 31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것이 이른바 ‘특별법’이다. 이로써 공무원노조가 인정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는 마련됐지만, 이 법률은 공무원의 노동3권을 제약함으로써 이후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특별법은 2006년 1월 발효됐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특별법은 일부를 제외한 공무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은 인정했지만 단체행동권은 여전히 금지하고 있었다. 당시 공무원노조가 주장하던 공무원 노동3권의 완전한 보장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 이에 따라 공무원노조는 특별법을 거부하고 노동3권의 완전한 보장을 요구했다.

이런 정부와 공무원노조의 갈등은 2004년 공무원노조의 민주노동당 지지 선언으로 인해 결정적인 파국을 맞는다. 공무원노조는 제2기 집행부가 출범하면서 당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지지와 17대 총선 개입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정부가 공무원노조 간부들을 사법처리하고 2006년에는 공무원노조 사무실을 폐쇄하는 등 강경하게 맞서면서 노정갈등이 고조됐다.

공무원노조는 이에 특별법 거부와 노동3권의 완전한 보장, 공직사회 개혁과 부패추방을 전면에 내걸고 대정부투쟁에 돌입했다. 결국 2004년 11월에는 공무원노조가 총파업을 단행함으로써 수많은 해고자가 발생했지만 제3기 집행부는 법외노조 및 특별법 거부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각 지부들이 이탈하는 등 공무원노조의 조직력은 심한 타격을 입었고, 공무원노조 일각에서는 법내노조로 전환하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제3기 집행부가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문제를 제기했던 그룹은 조직의 진로에 대해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총투표 제안이 집행부에 의해 거부되면서 공무원노조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고, 이들은 2007년 7월 독자적인 대의원대회를 열어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결국 정부가 의도했던 공무원노조 ‘갈라치기’가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공무원노조의 통합을 불러온 계기는 다시 정부가 제공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시행한 공무원 감축, 공무원연금 개혁 등의 정책은 공무원노조와의 마찰을 빚었고,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통합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해 11월에 열린 전국 공공부문 노동자 궐기대회에는 그동안 통합 움직임에 소극적이었던 전국공무원노동조합까지 참가해 통합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결국 올해 1월에는 그동안 조직경쟁을 벌이던 두 공무원노조가 서로 상대방에 대한 법적 소송을 취하함으로써 통합 논의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지난 6월 3일에는 법원공무원노동조합까지 3개 공무원노조가 참여한 가운데 대통합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3개 노조는 각 조직별로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를 열어 공무원노조 통합안을 가결시켰고, 지난 9월 21, 22일에는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을 승인했다. 이어 지난 9월 26일 열린 통합대의원대회에서 규약을 제정하고 상급단체 가입 건을 최종적으로 확정함으로써 대통합 작업은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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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최대 공신은 정부

공무원노조의 통합이 선언된 지난 6월 3일 이후, 정부는 통합에 제동을 걸기 위해 압박을 가했다. 민주노총에 가입하기로 한 것이 표면적인 이유가 됐다. 정부는 ‘정치세력화를 강령으로 내걸고 있는’ 민주노총에 공무원노조가 가입하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웠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정부가 그런 입장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공무원노조가 통합함으로써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공무원노조의 통합에 대해 정부가 제동을 건 빌미가 된 것은 공무원노조의 시국선언 참가와 해고자들의 노조활동. 정부는 공무원노조들이 시국선언을 한다고 선언하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내세워 이를 가로막았다. 결국 시국선언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정부는 현수막을 내걸고 일간지에 광고를 게재한 것을 이유로 양 공무원노조 간부 100여 명에 대한 중징계를 결정했다.

정부의 징계방침이 결정되자 공무원노조들은 행정안전부 장관을 고발하는 등 오히려 더욱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정부의 압박이 공무원노조들을 오히려 자극한 셈이 된 것. 정부가 해고자들의 활동을 이유로 공무원노조에 대한 설립신고를 반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지만, 이는 오히려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의 위기의식을 부추겨 통합 움직임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이번 공무원노조 통합의 최대 공신은 정부”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압박을 통한 갈라치기’가 처음에는 통했지만, 두 번째는 통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한편으로 통합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노사관계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노총과 통합공무원노조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으로 민주노총이 제1노총의 지위를 얻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 경우 그동안 노동계의 양대 축 중 하나이면서도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았던 민주노총의 위상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당장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위원의 구성과 운영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은 “조합원 수를 기준으로 볼 때 통합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더라도 KT노조 등 민주노총을 탈퇴한 노조가 있어 한국노총이 여전히 제1노총으로 남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역시 공무원노조가 통합되고 민주노총 가입이 결정되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이 가결된 직후 정부는 “민주노총 소속의 통합공무원노조가 대화상대로 적절한지에 대해 심각하게 검토할 것이며, 향후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과 함께 불법활동을 할 경우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공무원노조의 통합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이들도 있다.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으로 민주노총의 운동방식이 변화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장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단체행동권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전체 민주노총 운동방식에 있어서 보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유인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부에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주노총이 보수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들은 “공무원노조를 구성하고 있는 공무원들이 그 속성상 보수적인 경향을 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정부와의 갈등이 고조돼 노정관계가 경색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공무원노조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보수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일부의 시각에도 불구하고 통합공무원노조의 가입으로 민주노총이 힘을 얻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올해 들어 소속 단위사업장들의 이탈로 초래된 민주노총의 위상 저하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마치 민주노총이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고 잘못된 노동조합운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돼 있는 것을 한꺼번에 극복하는 의미가 있다”면서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을 반겼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어떤 활동 하느냐가 관건

공무원노조의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을 계기로 노사관계와 노정관계에 불러올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가운데 통합공무원노조에게 지워진 짐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은 향후 다른 노동조합에게도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여러 단위 노조들의 민주노총 이탈처럼 노동조합들의 원심력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공무원노조의 통합이 이런 경향을 얼마나 상쇄하거나 반전시킬 수 있을지 노동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무원노조의 활동이 ‘대국민 행정서비스의 질 개선’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번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에 대해 ‘철밥통 지키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통합공무원노조 출범식에 참석한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이것이 통합공무원노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도록 활동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통합공무원노조는 향후 활동방향을 크게 3가지로 잡고 있다. 우선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해소와 사회공공성 확보를 위한 활동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 첫째다. 특히 현 정부 들어 더욱 심각해진 고위공직자의 법 위반이나 복지축소를 막고 사회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사회연대운동을 더욱 내실 있게 진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공무원노조의 조직 특성상 지역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므로 지역사회에서의 ‘풀뿌리 사회연대운동’을 펴는 데 가장 적합한 조직이 공무원노조라는 것이다.

공무원노조는 이와 함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행정구조 개편논의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확대통합이 아닌 지방자치의 강화와 지역복지의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재의 논의는 지방자치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빠진 채 정치권의 정략에 따라 행정구역을 통합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통합공무원노조가 이후 어떤 활동을 하는가에 따라 이번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의 의미가 달리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공무원노조가 통합 이전부터 줄곧 주장해왔던 것처럼 ‘정권의 공무원이 아닌 국민의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입장을 가지느냐보다 어떤 활동을 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