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은 사람’ 아니라 ‘한계에 머물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운 좋은 사람’ 아니라 ‘한계에 머물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5.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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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자 역할 충실·지역 특성 살린 고용안정 사업에 힘쓸 것
대전지방노동청 김동회 청장

60년대 말,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무원을 택했던 한 젊은 청년이 있었다. 7남매의 막내, 중학교도 간신히 졸업할 만큼 가난한 집안에서 그는 ‘다른 삶’을 꿈꾸며 공무원시험에 도전했고 만 열여덟의 나이로 노동청(노동부 전신) 산하 대전직업안정소에서 말단 생활을 시작했다. ‘강산이 세 번은 변했을’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첫 근무지의 노동행정 수장으로 돌아왔다.


노동부가 7월에 단행한 국장급 전보인사에서 대전지방노동청장으로 발탁된 김동회(54) 청장. 그의 특이한 이력은 ‘첫 중졸 노동청장’ ‘유일한 9급 출신 고위공직자’ ‘단기간 승진’ 등의 수식어와 함께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하지만 ‘최초’나 ‘고속’ 등의 수식어 뒤에는 그가 노동행정 현장에서 쌓아온 36년의 세월이 있다. 천안지방노동사무소장, 노동부 장애인고용과장, 노사협력과장 등 현장과 정책부서를 두루 거치며 쌓아온 노동행정에 대한 철학과 노하우가 오늘의 김 청장을 있게 한 것. 

  

희망 없던 말단 시절, 그리고 비상

 

부임한 지 보름이 채 못 되어 대전지방노동청장실에서 만난 김동회 청장은 “유관 기관을 비롯해서 여기저기 인사를 하러 다니느라 통 사무실에 차분히 앉을 시간이 없었다”며 멋적게 웃는다.

 

실제로 대전지방노동청에는 물론 관련 기관에도 김 청장이 대전·천안 지역에 근무하던 시절 안면을 익혔던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 푸근하죠. 서로의 업무 스타일도 잘 알고 정도 두둑하니까 훌륭하게 조직의 역량을 발휘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어렵게 9급 공무원이 되어 대전직업안정소에서 생활을 시작했을 때 김 청장은 그다지 도드라지는 인물이 아니었다. 행정고시 등을 거치지 않은 공무원의 승진은 일정한 단계까지만 가능하다는 것이 지금이나 당시나 변함없는 통념. 김 청장도 이런 현실의 벽 때문에 얼마 동안은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9급 생활을 시작했는데 까마득하더라고요, 하숙비 내고 나면 생활하기도 너무 빠듯하고 비전도 안 보이고. 그래서 최소 5급을 목표로 일보다는 공부에만 매달렸어요. 그러다 보니 4년여 동안은 직장생활에 별 흥미를 못 느끼고 무기력 했죠.”


그러던 중에 한 선배의 조언이 김 청장을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선배가 지금의 일에서 벗어나려고 하기보다 더 열심히 하면 승진 기회나 시험 도전 기회도 더 많이 찾아올 거라고 조언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느낀 점이 있었어요. 주어진 일을 그 이상으로 해 내야겠다, 그래서 동료와 상사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전에서 7급까지 승진한 김 청장은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꺼리던 본부 근무를 자원했다. 지방 근무는 노동행정 전반을 알기에 많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문제해결 능력 갖춘 ‘따뜻한 기관’ 만들고 싶다”

 

본부에서 사무관을 거쳐 서기관으로 승진, 2001년에 다시 천안지방노동사무소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의 경험은 노동행정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로 다가왔다. 노동행정이 ‘권위를 앞세우는 군림’의 태도에서 벗어나 문제해결 능력과 갈등조정 기능을 갖춘 ‘따뜻한’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게 된 것도 이때다.


“아직도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당시에 I금속의 분규 사태에요. 노사 대표와 함께 교섭장에서 3일 밤을 새우면서 중재하려고 애를 썼지만 노조는 명분에 매달리고 경영진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아 끝내 폐업에 이르렀어요. 나중에 거기 다니던 직원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 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이를 계기로 김 청장은 ‘현장 행정’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노동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킨십’이라는 게 그의 소신. “노사간의 갈등이 아무리 얽히고, 노사의 입장차이가 커서 노와 사는 대립점에 위치해 있더라도 조정자인 나를 낀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 꼭지점에서는 뭔가 해결점이 나오고 ‘따뜻함’이 통하게 됐으면 하고 늘 바랍니다.”

 

지역 노동시장 안정에 주력할 계획

 

처음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곳으로 부임한 만큼 각오도 남다르다. 우선 지역 특성에 맞춘 고용서비스를 통해 고용안정과 지역 실업문제 해소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충청권의 경우 농업 중심 구조에서 급속히 산업화를 겪다보니 산업도시로 출발한 지역과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대전청 관할 지역은 취업률의 편중현상이 많은 상태. 제조업이 빈약해 청년층을 흡수하기가 어렵다는 전체적 특성 속에서도 청주, 천안, 충주지역은 고용여력이 많은 편이다. 구인구직망을 제대로 갖추고 구직자의 눈높이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면 지역 노동시장의 불균형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김동회 청장의 구상이다.


이를 위해서 김 청장은 지자체나 지방대학, 지역기업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아무래도 실업대책이나 고용정책 등은 중앙 차원에서 마련되고, 지방노동행정은 집행 업무에 가깝죠. 하지만 지역 실정을 감안해서 융통성 있게 집행해 나갈 생각입니다”


지역의 노사관계는 원만한 편이지만 중재자로서의 역할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노동계는 명분과 조직논리보다 전체 노동자와 가정을 생각하고, 경영자도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노동계를 파트너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 전제 위에서 정부는 균형자적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만든 한계에 갇히지 말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후배 공무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게 가장 기쁘다는 김동회 청장. ‘변화와 도전’은 후배들에게 뿐만 아니라 노사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노사관계도 공무원조직도 그것이 형성되던 시기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죠. 과거의 자세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노동부 직원들이 3천 명 규모인데 이중 2천8백 정도가 비고시 출신이거든요. ‘고시 출신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나의 승진 한계는 어디까지다’라고 스스로 한계를 긋는 것이 변화와 도전의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나는 스스로 한계 짓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한계 앞에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그거 하나는 꼭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