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서울’을 꿈꾸는 ‘불완전 노동자’들의 동지
‘진보 서울’을 꿈꾸는 ‘불완전 노동자’들의 동지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10.0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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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직·비정규 조직화 사업에 박차
다른 지역과 같이 재정문제 해결이 급선무
[여기는 지금]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것의 중심이다. 1천만 명의 서울 시민 중 서울 토박이가 드물 정도로 고향이 다른 각 지역 출신들이 서울시민을 구성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서울을 지역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쑥스러운 구석이 있다.

모든 것의 중심인 서울이기에 경제계, 노동계도 그 중심을 서울에 두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기 때문에 서울‘지역’ 노동운동을 취재한다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지역 노동운동이라기보다 노동운동 전체의 역사가 서울에서 출발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이주노동자노조에 대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 마련

노동운동 역사에서 서울 지역은 절대 빠질 수 없는 자기 역사를 갖고 있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에서부터 1979년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의 신민당사 점거 투쟁, 1985년 구로동맹파업, 1986년 서울의 봄 등 서울지역 노동운동의 역사는 한국의 전체 민주화 운동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할 수 있다.

또한 이 특이점은 서울 지역 노동운동에 단지 조합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노동운동 전체를 관통하는 운동사적 의의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갖고 있는 의미는 다른 지역본부에 비해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체 지역 운동이 이들에게 갖고 있는 기대 또한 크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본부장 최종진)는 2008년 11월 현재 250개 노조, 16만 명의 노조원을 보유하고 있다. 각 산별연맹의 서울지역본부와 직할노조로 구성되어 있는 서울본부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직할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이주노동자노조(Migrants' Trade Union, 이하 MTU)다.

현재 일반노조인 대구 성서공단노조도 이주노동자들을 가입대상으로 하지만 성서공단노조의 경우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를 가입대상으로 하는 반면 MTU는 지역, 업종, 출신국가에 상관없이 한국에서 노동하는 모든 외국인 노동자들만을 가입대상으로 한다.

현재 조합원은 25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독자들이 예상하는 대로 정부의 불법취업 외국인들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활동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임금의 대부분을 고향으로 보내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조합비를 걷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재정이 무척 취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본부는 서대문 사무실 한켠을 MTU 사무실로 쓸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이주노동자 후원회 등을 통해 모금된 돈으로 한국인 상근자 2명의 임금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매번 단속에 쫓겨 다녀야 하고 잦은 사업장 이동, 넉넉지 못한 임금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상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소속 노무사들을 비롯해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노무사들이 돌아가면서 자원봉사 형태로 이주노동자들의 법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본부, 미조직·비정규 조직화에 앞장

이주노동자노조의 활동이 쉽게, 그리고 근래에 진행된 것이 아니란 사실은 서울본부의 그동안 활동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울본부 문문주 조직국장은 “1999년, 2000년 정도에 민주노총은 미조직 사업장에 대한 조직화 사업을 당면과제로 설정하고 각 지역본부에 조직화 활동방안 강구를 지시했다”며 “이에 서울본부는 미조직 및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에 앞장서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금까지 서울본부가 조직화 사업을 시행한 사업장의 면모를 보면 놀랍다. 한국통신계약직노조, 덤프연대, 애니메이션노조, 학습지노조, 방송사비정규직노조 등이 바로 서울본부에서 조직한 노조들이다. 이들 노조들은 사회적 이슈로 중요하게 거론됐던 노조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산별체제로의 전환과 맥을 같이하며 2003년을 기해 하강국면을 그리게 된다. 이에 서울본부는 계속되는 양극화와 경제위기, 청년실업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기 위해 청년노동자와 실업노동자의 조직화에 나섰다.

문 국장은 “청년·실업자뿐 아니라 비정규직의 고용 형태는 비정규직-실업-비정규직을 반복하는 형태”라며 “특히 실업자와 청년실업 문제는 정부의 노동정책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사회운동과 결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이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서울본부는 지역 고용센터 앞에서 거리선전전과 함께 실업자와 청년들을 조직하는 사업에 나섰다. 윤진영 서울본부 북부지구협의회 조직차장은 “본부를 중심으로 노동자 권리찾기 거리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는데 북부지구협의회는 노원역에 있는 종합고용센터 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실업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거리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서울본부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미조직·비정규 조직화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기 위해 본부 자체에서 마련한 전략조직기금으로 전담 활동가 2명을 채용해 미조직사업팀을 따로 구성할만큼 조직화 사업에 본부 역량을 총집결하고 있다.

‘진보 서울’을 위한 상시적 정치활동도 중요

서울본부는 지난해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주경복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 지원했다. 비록 주 후보가 낙선을 했지만 현 교육감인 공정택 후보를 막판까지 몰아붙이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은 서울본부에게 소중한 자산이 됐다.

또한 민주노동당 비례후보로 서울시의원에 당선된 이수정 의원을 통해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정을 감시하고 노동자·서민들을 위한 정책입안에 노력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본부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 각 진보정당 서울시당과의 정례협의회를 통해 서울지역 현안에 대한 다양한 논의구조를 가져가고 있다.

또한 서울본부 내에 설치된 정치위원회를 통해 조합원과 서울지역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치학교를 개설하고 지역 정치활동의 모범사례를 개발하고 이를 널리 유포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를 통해 서울본부는 내년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와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플랜이 제시된 것은 아니지만 이수정 의원과 같은 지역 정치인들을 계속 발굴해내고 또 다시 교육감 선거에서 패배하지 않도록 여러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에 대해 문 국장은 “서울이라는 상징성을 ‘진보 서울’로 바꾸기 위한 다양한 작업을 준비 중이기 때문에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또한 장기적으로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사업도 확대할 방침이다. 현재 노동운동이 위기에 봉착한 이유에 대해 서울본부는 “초발심(初發心)이 없어졌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즉 노동운동의 이념이 거세되고 탈각된 상태에서 자신들만의 이득에만 목을 매 ‘정규직 이기주의’, ‘대기업 귀족노동’이란 소리를 듣게 됐다는 것이다.
서울본부는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중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일단 교육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는 내부 교육위원들과 외부 교육전문단위들이 참여한 교육센터를 만들어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확정하고 단지 조합의 임단협 교육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미조직 노동자들까지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역운동으로서의 서울은 한계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서울이라는 특이성 때문에 지역본부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미약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 서울본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서울에는 민주노총 본부와 각 산별연맹 본부가 다 있기 때문에 서울본부 자체가 지역 운동을 움직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 국장은 “서울본부가 지역연대사업이나 정치사업 등을 많이 하지만 일상적인 조합 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조금 빈 구석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는 서울본부가 갖는 문제라기보다 지역이 갖는 특이성에서 나온다.

또한 산별체제로의 전환은 지역본부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부정적인 면도 갖고 있어 지역본부의 활동이 일정정도 위축되고 있다는 점에도 문제는 있다. 그러나 서울본부는 이러한 문제로 산별로 가야한다는 노동계의 원칙을 훼손할 것이 아니라 각 산별지역본부와의 연계를 강화하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지역활동을 가로막는 더 큰 문제는 인력과 재정이라고 구성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현재 서울본부는 민주노총 중앙에서 확정해 준 인력이 10명이다. 즉 10명분의 임금만 중앙에서 책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이라는 큰 지역을 커버하기에는 10명은 턱도 없이 적은 인원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서울본부에는 20여명의 상근자가 임금을 쪼개가며 활동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업비는 두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CMS, 후원금을 받아도 모자란 것이 현실이다. 서울본부 김진억 조직국장은 “서울본부는 미조직·비정규 조직화에 노하우가 있지만 어디 그것 갖고만 사업하나”라며 “이 문제는 서울 뿐 아니라 대부분의 지역본부가 갖고 있는 어려움인데 현재 재정 집행의 대부분을 산별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고민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서울본부 최종진 본부장은 서울본부 재정사업을 위해 현장을 돌며 상품팔기에 나선 상황이다. 최 본부장은 “이렇게라도 해야 상근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임금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일단 내가 소속된 사업장을 돌며 상품판매에 나서고 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중앙과 함께 6개의 지구협의회를 운영하며 서울지역을 ‘진보 서울’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역 노동운동이라고 하기에는 지역적 특성상 정치적 활동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 또한 노동운동이 한국사회에서 부여받은 임무라고 생각하는 젊은 활동가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려운 재정과 이로 인한 인력 부족이 항상 발목을 잡고 있지만 향후 산별체제의 완성과 그에 따른 지역 산별로의 전환을 꿈꾸며, 또한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진정한 진보와 노동자·서민들의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은 계속해서 거리를 뛰어다니고 있다.


지역 일꾼들

▲ 1964년 서울 출생 / 1994년 서노협 중동부지구협의회 / 1995년 서울본부 중동부지구협의회 / 2009년 서울본부 조직국장

⊙ 김진억 조직국장 

청년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 같다

“청년노동자 조직화 사업이 제일 어렵다. 왜냐하면 현재 청년층은 어렸을 때부터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 물들어져 있어 무한경쟁에 익숙하다보니까 어떻게든 경쟁으로 해결을 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실업 문제도 사회구조의 문제라기보다 개인의 스펙 문제 등으로 치부해 공부만 하게 된다.” 


▲ 1972년 경북김천 출생 / 2000년 서울본부 / 2007년 서울본부 조직국장

⊙ 문문주 조직국장

용산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초반에는 상황실 파견까지 했었는데 상황이 길어지면서 내부 사업 역량 부족으로 잘 못하고 있다. 솔직히 조금 창피하다. 그러나 욕심내지 않고 우리 조합원들에게 상황을 알려내고 1인 시위, 대시민선전전, 국민법정 기소인 참여 등을 유도하여 올해 내에는 반드시 해결될 수 있도록 서울본부도 노력할 것이다.”


▲ 1971년 서울 출생 / 1999년 서울본부 중부지구협의회 조직국장

⊙ 김순희 중부지구협의회 조직국장 

지금 담당하고 있는 사업은 어떤 것인가

“정치·통일 사업을 맡고 있다. 특히 정치사업과 관련해서 2010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되는 교육감선거에 대한 논의와 준비들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10·14선언 2주년을 기념해 서울본부 중심으로 각 사회단체와 연대한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어렵다고 주위에서 말씀들 하시는데 나는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 1981년 인천 출생 / 2006년 서울본부 북부지구협의회 조직차장

⊙ 윤진영 북부지구협의회 조직차장 

지구협의회에서 활동하면서 어려운 지점은 무엇인가

“지구협의회는 지역에 가장 밀착해 있는 민주노총의 손과 발이다. 그런데 점차 산별체제로 조직 전환이 이루어지니 지구협의회 활동을 강제할 수 없게 됐다. 단사에서 산별의 지침을 받으니 지역사업에는 참여율이 떨어진다. 단사 입장에서는 지구협의회 활동이 또 하나의 지침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아쉽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