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 ‘신바람’ 위한 노·사·민간의 ‘새바람’
지역경제 ‘신바람’ 위한 노·사·민간의 ‘새바람’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5.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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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기업·노동계 주도로 설립된 향토기업사랑 부산시민연합

빈사 상태에 빠진 지역경제의 활로를 찾기 위해 향토기업인과 노조대표들이 손을 잡았다.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기업 살리기를 목표로 부산지역의 기업관계자와 노조대표, 학계, 시민단체대표 100여 명이 주축이 돼 지난 4월에 출범한 ‘향토기업사랑 부산시민연합’(이하 향사연).


그간 여러 지역에서 지역사랑 운동이 전개되어 왔지만 지자체나 경제단체가 단독으로 추진하는 캠페인성 행사에 그쳐왔기 때문에 향사연의 활동은 여러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개별기업 이익 넘어 지역사회와 연대 나선 노동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역 노동계의 적극적인 참여다. 부산은행과 기술신용보증기금 노조를 비롯해서 연합철강 노조, 전국선망 노조, 대선조선 노조, 국제신문 노조 등 다양한 업종은 물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10여 개 노조가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노동계의 참여는 ‘지역경제가 살아나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고 임금과 복지가 향상되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향사연의 창립준비위원을 맡아 지역 노동계의 참여를 호소했던 부산은행 노동조합 서창덕 위원장은 “노동조합이 개별기업의 임금, 복지 중심 활동에서 벗어나 사회와의 연대에 나설 때가 됐다”며 “지역 기업이 살아나야 노동자의 삶의 질도 높아지고 우리 지역의 청년들도 실업자 신세를 면할 수 있다. 이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는 노동계가 빠질 수 없는 주체”라고 말했다.


물론 노동계의 참여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기업 살리기는 회사가 나서야 할 일이 아니냐’는 반문부터 ‘회사가 할 일이 따로 있고 노조가 할 일이 따로 있다’는 완곡한 거절도 있었다. 하지만 선뜻 참여 의사를 밝힌 노조들은 ‘파이를 키우자’고 뜻을 모았다. 지역경제의 규모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데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과 노동자가 잘 될 리 없다는 것. 

 

노동조합의 참여는 시의 지원을 얻어내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부산시는 기업의 애로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해결해 주기 위해 6월에 설치한 ‘기업애로해소 대책위원회’에 부산은행 노조 서창덕 위원장을 대책위원으로 위촉하는 등 지역 노동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향사연의 전진 상임대표는 “지역경제에 있어 노동자는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이자 지역시민이기도 하다”며 “노와 사의 입장이 되기보다 시민의 입장에서 지역을 살리자는 운동이므로 지역시민의 주축인 노동계의 참여는 당연하고 반가운 것”이라고 말했다.

 

   

전 진
향토기업사랑 부산시민연합 상임대표 - 향토기업사랑 부신시민연합의 출범 취지는?

"부산지역의 경제가 끝도 없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인구가 360만에 달하는 한국 제 2의 도시라지만 현재 부산의 경제가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대다. 수출입 비중도 70~80년대 수준인 10%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지역경제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높지 않은 편이다. 중앙정부로 경제정책이 집중된 탓도 있지만 ‘누군가 알아서 해주겠거니’하는 생각이 많다. 지역경제 침체는 크게는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만 당장 고통을 받는 것은 지역민이다. 그래서 ‘우리경제 우리가 살려보자’는 뜻을 모으게 된 것이다. 지역의 특성과 문제점은 지역의 경제주체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정책개발도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 최근 들어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정책의 양이 문제가 아니다. 가장 심각한 것이 지역경제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정책들만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현장성이 없다. 지역경제에 관여하고 있는 정부부처만 해도 산자·과기·교육·해양수산부 등 다양하지만 부처간 정책조율도 잘 되지 않는다.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쥐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자체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예산이 태부족이다. 부산만 해도 시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보니까 도시 기반시설에만 투자가 집중되어 있고 재정지출은 부족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지방 공무원들의 중앙 의존도도 자꾸 커지고 이렇게 해서는 지방만의 독자적인 경제정책이 나오기 어렵다."

- 지역경제 살리기 운동에 노동계가 참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것은 노와 사의 생존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개별 기업의 근로자는 부산지역의 최대 생산자이면서 최대 소비자다. 동시에 부산지역의 시민이기도 하다. 이번 운동은 특정한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지역 경제주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시민운동으로 시작한 것이므로 지역 시민의 주축을 이루는 노동계의 참여는 당연한 것이다.

경제가 살아나면 일자리도 많아지고, 일자리가 많아지면 노동자에 대한 처우도 좋아진다. 자녀들을 위한 일자리도 더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노동계의 참여는 특히 중요하다. 말하자면 ‘모두를 위한 선순환’인 셈인데 노동계는 이 구조를 만드는데 빠질 수 없는 축이다."

- 세계화로 인해 국가 간 경계마저 허물어지고 있다. 지역경제에만 매달리는 것이 자칫 폐쇄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는데.

"오히려 세계화는 곧 지방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싶다. 국가 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적 특성이 더 중요해 진다는 얘기다. 세계의 기업들이 부산에 선뜻 투자를 할 만큼 지역경제가 경쟁력을 갖추고 부산의 기업들도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특성화하는 것이 세계화시대 지방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단순한 향토기업 이용하기 운동을 뛰어넘어 지역산업과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입안 활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향토기업 이용하기’로 지역 중소납품업체 ‘단비’


향사연의 첫 번째 활동은 지역 납품업체를 홀대하는 대형 할인점의 정책을 바로잡는 것으로 시작됐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부산지역에서도 향토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유통업체들은 전국규모의 대형 마트에 밀려 고사한 지 오래다.


전국 규모의 유통업체의 경우 매출액이 대부분 서울 본사로 송금되면서 지역주민의 소비가 지역에 재투자 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또 전국적 납품망을 가지고 있어서 지역 납품업체를 이용하는 비율도 낮다.

부산의 경우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의 부산·경남업체 납품 비율이 30%, 현대백화점 부산점 9%, 메가마트 9%, 이마트 5.7% 등 지역 납품업체가 전체 납품업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에도 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올해 2월 부산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유통업체로는 유일하게 명맥을 잇던 아람마트가 전국 규모의 유통점인 홈플러스에 인수됐다. 이어 흠플러스가 아람마트 납품업체를 승계하겠다던 약속을 저버리고 지역 업체들과의 거래를 하나둘 중단하기 시작하면서 중소 납품업체들이 부도 위기에 처했다. 

향사연은 “부산시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부산이 아닌 타지역의 기업을 살찌우는 형국은 묵과할 수 없다”며 대형 유통점의 지역 납품업체 비율 50% 유지를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대형 마트의 주요 이용객인 주부단체와 소비자단체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결과 일부 업체로부터 지역업체 납품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지역기업의 기업 활동에 관한 정보 부족을 해소해 주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7월에는 지역기업인을 대상으로 부산지방국세청장 초청 강연회를 열었다. 지방세정에 대한 지역기업인들의 이해를 돕고 지역기업으로서의 애로사항을 전달하기 위한 것. 부산경제를 살리는 일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지방국세청장의 요청도 있었다. 앞으로도 향사연은 지역기업의 실질적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정책 반영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지역의 지도층에 ‘부산경제 사랑하기’와 ‘향토기업 이용하기’를 호소하는 편지 발송을 준비하고 있다.

 

참여단체와 지역경제의 동반성장


지역 노사와 시민단체, 제조업과 서비스업, 문화·언론계까지 참여하고 있는 향사연의 활동은 각각의 주체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점도 남다르다. 단순히 ‘애향심’에 호소하기 보다는 참여자들의 특성을 살려서 전체의 시너지 효과와 개별 주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치는 것. 한마디로 ‘현명한 주고받기’다.

향토기업사랑 활동 계획

▷ 향토기업육성 정책개발 및 제도개선 운동
▷ 향토기업제품 구매운동
▷ 재래시장 이용하기 운동
▷ 향토금융기관·할인점·인쇄소·서점 등 향토기

    업 이용하기 운동
▷ 한 세대 1부씩 지역신문보기 운동
▷ 공기업 부산유치 운동
▷ 향토기업 박람회와 향토기업사랑 축제 개최
▷ 향토기업인 및 근로자 대상 제정
▷ 향토문화예술진흥 운동 등


지역금융기관·할인점·인쇄소·서점 이용하기와 향토기업 제품 이용하기와 같은 운동은 참여 기업들의 매출과 이미지 제고에 영향을 미친다.

지역신문보기 운동은 중앙일간지에 밀려 점차 설 자리가 좁아지는 지역언론의 지평을 넓힐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제신문 노동조합 김해창 위원장은 “향사연에 참여하면서 향토기업을 소개하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며 “언론의 특성을 살려 지역경제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한편 지방신문 구독하기 운동 등으로 실질적 이득도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부산은행 관계자도 “노동조합이 향토기업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면서 직원들이 기업과의 거래를 틀 때나 예금을 유치할 때 고객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도 훨씬 커졌다며 반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실제로 부산은행의 경우 지역시민 단체 등과의 유대를 통해서 전국규모 은행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금고 유치에 성공하기도 했다.


많은 지역의 캠페인성 행사들이 실질적 이익보다는 대의에 호소하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여러 단체의 이름을 올려놓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참여 업체에 실질적인 이득을 주면서도 서로의 장점을 살리는 방안을 찾은 것. 참여 단체들의 이익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지역경제 모델 창출에 기여할 것”


출범 넉 달을 맞고 있는 향사연의 회원은 500명 안팎이다. 이들은 모두 연 3만원의 회비를 내는 ‘진성회원’. 앞으로 향사연은 최소 5천명의 회원을 갖는 실질적인 단체로 확장해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당장은 향토기업 이용하기 운동에 머무르고 있지만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기업 육성을 위한 정책개발 활동도 꾸준히 펼쳐나갈 예정이다. 기업과 상품의 국경마저 사라지는 마당에 단순한 애향심에 기대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향사연 전진 상임대표는 “기업과 노동조합, 생산자와 소비자, 지역시민과 노동자가 함께 지역경제와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취지로 발족한 만큼 큰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며 “부산지역에서 새로운 지역경제 선순환 모델을 만들어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중앙정부 차원의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이 맥을 못 추고 있는 가운데 지역 노사와 민간의 새로운 시도가 주목된다.

 

지역기업, 이렇게 살렸다
특성화 전략으로 향토기업 위상 지킨 영광도서
전국규모 서점 공략에도 ‘받은 만큼 돌려주는’ 지역사랑으로 ‘윈-윈’
문화시설이 취약한 지방에서 지역민들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해 왔던 지방의 서점들도 전국규모의 서점 진출로 휘청하고 있다.

대형서점 진출에 따른 지역서점 고사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대구. 2000년 전국 최대의 유통망을 갖춘 교보문고가 대구 중심가에 들어선 이후 인근 서점들이 잇따라 폐점한 것은 물론 여타 서점들의 매출도 반 이상 감소했다. 이런 현상은 부산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지역 토종 서점으로서의 입지를 지키고 있는 영광도서(대표이사·김윤환)는 지역 특성화 전략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향토기업사랑 시민연합 공동대표이기도 한 영광도서 김윤환 사장은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은 헌혈에나 통하는 일”이라며 “부산 상품만의 특성과 경쟁력, 지역민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는 철학이 있어야 지역기업의 입지를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영광도서는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을 설치하고 명사초청 강연, 작가와의 대화, 독서토론회 같은 행사를 매주 무료로 열고 있다. 또 서점 안 갤러리에서 유명 작가의 전시회 등을 열어 지역민의 문화 갈증을 해소해 주고 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지역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다. 서점에 ‘부산책 코너’를 설치해 부산의 작가와 출판인들이 내는 책의 판로를 열어 놓은 것.
영광도서는 지역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지역주민과 함께 성장하는 특성화 전략으로 지역에서의 입지를 더욱 키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