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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났지만 한낮에는 여전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중순,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은 SM3 새 모델 출시를 앞두고 부산함과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조립라인에 들어서자 여느 자동차공장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젊은’ 작업자들. 분주히 돌아가는 컨베이어 위의 작업자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20대 초·중반이다. 부산공장의 생산직 평균 연령은 29세로 생산직 노동자의 평균연령이 40대에 접어든 다른 자동차업체와 10년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러나 정작 다른 것은 나이의 적고 많음이 아니다. “시장점유율은 아직 미미하지만 품질과 기술은 최고다”, “우리 공장의 인력은 국내 자동차업체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생산직 노동자들의 말이 르노삼성자동차만의 자부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자부심 뒤에는 ‘최고의 품질은 최고의 사람이 만든다’는 인적자원 전략이 있다.
최고의 차를 만든다는 자부심과 프로정신,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공장에는 삼성자동차 부도와 공장가동 중단이라는 5년 전의 상처보다 새로운 도약을 향한 꿈이 움트고 있었다.
경영진의 참여철학 + 사원대표위원회 합리주의
르노삼성자동차의 출범 당시, 부도와 생산 중단으로 인한 상처로 구성원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여기에 외국기업인수에 따른 막연한 고용불안 심리와 불신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외국기업의 투명경영과 노동자를 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관행이 노사신뢰의 기반이 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매년 초 경영계획을 수립할 때 사원대표위원회(사대위)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실시한다. 이 설명회에서는 CEO와 CFO, 기획, 인사 담당 임원이 지난해 성과와 새로 시작하는 해의 사업환경, 생산·판매 목표 등을 발표한다. 이 외에도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모든 직원이 매일의 계약건수와 시장점유율을 알 수 있다.
부산공장 인사팀 관계자는 “경영현황이 투명하게 공개되면 ‘숨기고 안 준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회사의 지불능력을 알기 때문에 무리한 요구도 없어진다”며 “사대위에 경영방침과 성과를 알리는 것은 회사의 이념과 전략을 사원들과 공유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매년 실시되는 임금협상에서 ‘지불능력을 기준으로 한다’는 원칙이 통용되고 있는 것도 회사가 공개하는 정보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 사대위 이재경 위원장은 “과거 삼성그룹의 협의문화와 달라 어려운 점도 있지만 경영방식이나 성과 공개는 국내 어느 업체보다도 투명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의사소통 채널로 사전 갈등 관리
르노삼성자동차의 의사소통 구조는 노사협의와 임원 단위, 관리자와 현장 단위까지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사간의 의사소통이 분기별 노사협의회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생산 현장의 의사소통은 각종 간담회로 제도화되어 있다. 팀장은 대의원, 생산과장, 공정장(반장)과 각각 월 1~2회의 간담회를 갖는다. 생산과장도 같은 방식으로 대의원, 공정장, 릴리프와 간담회를 갖는다. 이 외에도 팀장은 일주일에 한 번, 과장은 3일에 한 번 현장직원들과 미팅을 갖고 결과를 발표하도록 되어 있다.
공정장과 생산과장은 매월 한 차례 면담을 통해서 현장 내의 불편사항이나 생산목표 등에 관해 협의한다. 공정장 이상의 관리직의 경우 성과평가 기준에 ‘의사소통’ 항목이 들어 있을 정도로 의사소통을 중요한 업무능력으로 보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조립1팀 이명관 기사는 “외국기업이 되었다고 해도 작업자 간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다”며 “오히려 과거에 비해 의견수렴이 많아진 면도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활발한 계층별, 계층간의 의사소통 제도화는 정보의 왜곡에 따른 오해와 불필요한 갈등을 사전에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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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공동 실천 프로그램으로 신뢰회복
모든 외투기업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는 ‘언제 떠날지 모르는 기업’이라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심리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 부산공장 구성원들의 고용불안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은 편이다. 지난 2004년 내수시장 침체 때문에 2교대를 1교대로 전환했지만 <고용안정선언>으로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고 위기를 넘겼기 때문이다. 완성차 노사관계의 최대 쟁점인 비정규직 문제도 르노삼성차에서만은 예외다. 공장 보수 등을 위해 필요한 단기 계약직 외에 직접 생산라인에는 비정규직이 전혀 없다.
매년 실시하는 직원만족도(ESI) 조사도 르노삼성자동차만의 특징이다. ESI는 직원 만족도 향상 → 경영성과 향상 → 보상과 투자 향상 → 만족도 향상의 선순환을 위한 것으로, 이 조사를 통해 인사제도와 근무환경, 복지 개선 등에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인사본부장 이승희 전무는 “일과 삶의 균형(Working Life balance)을 추구하는 프랑스의 기업·노동문화를 도입한 것으로, 앞으로 국내기업도 점차 일과 삶의 조화, 노동만족도 향상을 주요 의제로 삼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금은 지불능력, 성과급은 생산성을 기준으로
기준과 원칙이 명확한 외국기업의 특성은 성과급에도 적용된다. 현재 성과급이 정률 기준으로 제도화되어 있는 곳은 국내 완성차 5사 중 르노삼성차뿐이다.
르노삼성자동차의 성과급은 PI(Productivity Incentive)와 PS(Profit Sharing)로 이루어져 있다. PI는 판매량, 시장점유율,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그해의 목표치를 얼마나 달성했느냐에 따라 100~400%까지 지급되는 생산성 격려금이다. 목표치 달성정도에 따라 지급되는 PI와 달리 PS는 세전이익의 5%를 모든 직원에게 균등 지급하는 것으로 말단 직원부터 임원급까지 모두 동등하게 받는 집단 성과급 개념이다.
이런 성과급의 지급 기준은 단협에 명시되어 있어 ‘성과급을 몇 %로 할 것이냐’를 놓고 매년 반복되는 지루한 줄다리기 대신 파이를 키우기 위한 생산성 향상에 노사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문화적 융합 위한 노력은 과제로 남아
외투기업들이 흔히 겪는 문화와 언어, 경영전략의 차이는 르노삼성자동차에서도 가장 어려운 해결과제 중 하나다.
인사팀 관계자는 “문화와 경영관행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존재하는 편”이라고 전제하고 “르노그룹은 하나에 투자해도 10년을 내다보고 여러 측면을 고려하는 등 지속성장을 중요시하는데 구성원들 대부분이 ‘한다면 한다’, ‘몇 년 내에 한다’ 등의 공격적 경영에 익숙하다 보니 ‘의사결정이 늦다’, ‘이렇게 해서 언제 크냐’는 등의 불만이 있다”고 설명한다.
문화적 차이에 대한 현장의 정서는 분분하다. 모든 면에서 원칙이 우선하는 글로벌기업의 문화가 합리적이고 공정해서 좋다는 평가에서부터 ‘정’으로 대표되는 한국적 문화와 어울리지 않아 혼란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조립1팀 이진성 주임은 “우리 기업은 한번 풀어줄 때 확 풀어주기도 하고 그런 게 있는데, 체육대회나 창립기념행사도 근무시간 외에 한다는 원칙 같은 게 너무 확실해서 좀 서운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 팀 강준호 차장은 “관리자 입장에서도 롱텀과 쇼트텀, 장기계획과 마스터플랜 등 단계가 많고 모든 성과가 통계화되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르노그룹 특유의 신중함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인의 열정과 프랑스인의 기획력이 결합돼 시너지 효과를 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출범 당시의 상처와 우려를 딛고 르노삼성자동차가 거둔 ‘절반의 성공’은 새로운 투자와 고용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방한한 르노그룹 슈웨체르 회장은 올해 르노삼성차에 6000억원을 투입, SUV 개발과 생산성 향상에 집중 투자하고 르노그룹의 후속 엔진을 부산공장에서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자동차회사로만 구성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내의 경쟁사들을 제치고 이 프로젝트를 유치한 것은 지난 4년간 르노삼성차가 보여준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신호였다.
외국기업의 선진적 경영전략과 투명경영에 우리기업 특유의 열정이 합쳐진 결과였다. 이 노력에 싹을 틔운 노사신뢰와 합리적 선택도 빼놓을 수 없는 공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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