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글로벌스탠다드’ 논쟁은 그만
이제 ‘글로벌스탠다드’ 논쟁은 그만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11.1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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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의 법적 규제는 국제노동기준 아니다
국제기구 관계자들 한 목소리로 한국 정부 비판

▲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CCMM빌딩 메트로홀에서 '노조전임자의 위상과 국제기준에 관한 국제 세미나'가 국내외 노동계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 정우성 기자 wsjung@laborplus.co.kr
ILO(국제노동기구), OECD-TUAC(경제협력개발기구 노동조합자문위원회), ITUC(국제노총) 등 국제노동계 관계자들이 한 목소리로 전임자 임금지급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국제 노동기준 위반이며 오히려 노사 자율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한국 정부의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했다.

9일 오후, 여의도 CCMM빌딩 메트로홀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공동 주최로 열린 ‘노조전임자의 위상과 국제기준에 관한 국제 세미나’에 참가한 팀 드 메이어 ILO 방콕사무소 노동기본권 담당관, 스티븐 베네딕트 ITUC 노동기본권・ILO기준 담당관, 롤랜드 슈나이더OECD-TUAC 선임정책자문위원은 한 목소리로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법제화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다.

이날 토론회에 앞서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지금 한국정부는 국제기준을 내세워 전임자 임금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노동악법을 강행 실시하려하고 있다”며 “사실과 전혀 다른 외국의 사례를 거론하며 ILO를 비롯한 국제단체의 수차에 걸친 권고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정부가 국제기준을 운운하는 것은 노동운동 자체를 말살하려는 기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정부가 전임자 문제에 대해 입법적 관여 대상이 아니라는 국제단체의 권고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부장관이 이 자리에 왔으면 국제적 상황을 잘 알고 갔을 텐데 오지 않아서 유감”이라며 “복수노조・전임자 문제를 대화로 풀려면 이런 자리에 와서 정부의 입장을 제대로 정리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노동부장관의 역할인데 섭섭하다”고 말했다.

"고양이 쥐 생각한다"

발제에 나선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정부가 노사관계 선진화라며 국제기준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원칙 없는 이야기로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입법례”라며 “노동계가 노조 전임자 임금을 일방적으로 달라는 것이 아니다. 노사가 단체협약에 의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부분이고 그 부분에 대해 정부가 입법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문제점으로 △ 국제노동기준 위반 △ 노조 자주성 훼손의 근거 없음 △ 노동조합 무력화 △ 결사의 자유 원칙에 반하는 타임오프제도 △ 노사자율원칙의 위배 △ 현장갈등 유도 △ 과반수대표노조의 유급전임시간 독점 등을 들고 있다.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임금은 노사자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노사가 임금삭감을 결정하기도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ILO도, OECD도 노사자치의 원칙에 따라 이 문제를 입법적 관여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고양이 쥐 생각한다고 정부에서는 전임자 임금 지급이 노조의 자주성을 훼손한다고 하는데, 이는 노동조합이 걱정할 일”이라며 “우리가 스스로 괜찮다고 하는데 오히려 정부가 걱정하고 있다. 우리가 할 이야기를 거꾸로 정부가 하고 있는 꼴”이라고 정부 논리를 비판했다.

▲ (왼쪽부터) 팀 드 메이어 ILO 방콕사무소 노동기본권 담당관, 스티븐 베네딕트 ITUC 노동기본권・ILO기준 담당관, 롤랜드 슈나이더OECD-TUAC 선임정책자문위원. ⓒ 정우성 기자 wsjung@laborplus.co.kr

토론에 나선 팀 드 메이어 ILO 방콕사무소 노동기본권 담당관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법제화하는 것은 국제노동기준을 위반하는 것이고, 이는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에서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입장”이라며 “한국 정부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문제에 대해 법적 개입해서는 안 되며 노동자들과 고용주들이 자율적인 협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조합 전임자라고 하는 것은 단지 정해진 시간에서 회의하고 교섭만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관계에 있어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처리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며 “(노조 전임자는) 단체협상의 적용문제, 고충처리문제, 경영실적과 같은 정보를 직원들과 공유하는 것, 산업안전보건과 관련된 문제 등 역할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 대해서 어떠한 기능과 업무가 특정적으로 전임자가 해야 하는지를 규정하기는 대단히 어렵고 이를 특히 법적으로 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노조법은 노조공격법"

스티븐 베네딕트 ITUC 노동기본권・ILO기준 담당관은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라며 “전임자 임금에 대해 노사가 협상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한국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특히 베네딕트 담당관은 한국의 노동법과 관련해 “한국의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은 노조활동을 제약하고 노조의 권리를 제약하는 범위나 정도가 정말 심각하다”며 “이런 식의 법이 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부 당국에서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이 조정이라고 이름 붙인 것 같은데 사실 결사의 자유를 저해하고 단체교섭권을 저해하고 그리고 아주 심각하게 파업권을 제약하는 법은 조정법이라고 부를 수 없고 노조 공격법”이라고 비꼬았다.

롤랜드 슈나이더 OECD-TUAC 선임정책자문위원도 한국 정부 비판에 나섰다. 그는 “한국정부 관료와 경영계에서 국제기준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며 “한국이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는 유일한 나라라고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며 만약 일부러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그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나라마다 특색 인정해야"

김선수 변호사는 “(ILO 제135호 협약과 제143호 권고에 따르면) 전임자 급여 지급을 전면 금지하고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는 입법이 위 협약과 권고에 위반되는 것만은 분명하다”며 “한국에서는 노동조합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을 금지하는 방안들이 모색되어 왔는데 왜 그러한 모색을 위해 사회 전체적으로 역량을 낭비해야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낭비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는 노사자율에 맡기는 방안이 최선이며 공익위원안을 채택할 경우에도 “유급근로면제시간은 최소한의 보장이고 그 이상을 단체협약 등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경선 노동부 노사관계 법제팀장은 “한 나라의 법이라는 것은 그 나라의 특수성에 기초하고 있다”며 “결사의 자유는 보편적으로 보장해야 하지만 그것을 이뤄내는 방식에 있어서는 나라마다의 특수성도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