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국민건강보험공단직장노동조합
<41> 국민건강보험공단직장노동조합
  • 안형진 기자
  • 승인 2009.11.10 17:45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직급은 5급, 입사 동기는 1급?
승진적체·직무공백 등 불안정한 미래
복수노조 문제, 연대로 푼다
ⓒ 국민건강보험공단직장노동조합

2007년 개봉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에는 중지와 약지가 절단된 미국인의 사연이 등장한다. 병원은 손가락이 잘린 그에게 “중지 봉합은 7,200만 원, 약지 봉합은 1,400만 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격이 저렴(?)한 약지의 봉합을 선택했고, 중지는 결국 치료받지 못했다.

이 끔찍한 이야기는 적어도 아직까지 바다 건너 미국의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대다수가 건강보험제도의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제도를 주관하는 공기업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직장노동조합(위원장 이판규, 이하 건강보험공단직장노조)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조직된 두 개의 노동조합 중 하나이며, 승진적체와 인력운영, 의료민영화 저지, 징수통합, 공기업 선진화 등 향후 불안정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복수노조, 대립에서 연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국민보험관리공단 직장노동조합은 한국노총 공공연맹 산하의 노동조합이지만, 같은 사업장에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산하의 공공노조 전국사회보험지부가 있어 복수노조다. 이 같은 상황은 2000년 7월 이전 의료보험이 직장과 지역으로 나뉘어 있던 것에 기인한다.

당시 두 노동조합은 통합 찬반을 놓고 극렬하게 대립했다. 직장보험은 어렵지 않게 소득을 파악해 징수가 가능했던 반면 지역보험은 자영업자를 포함한 직장보험 대상이 아닌 인원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소득을 산정하지 못해 합리적인 징수가 어려웠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건실한 재정을 가지고 있던 직장보험노조 입장에서는 지역보험과의 통합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재 두 노동조합은 징수통합, 의료민영화 등 사안에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연대 중이다. 참여정부에서부터 진행된 징수통합은 국세청 산하에 징수공단을 설립해 4대 보험 통합 징수 및 적용업무 통합이 주요 골자로 이야기 됐다.

건강보험공단 직장노조 곽태형 정책의장은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장 기금이 국세청의 소관으로 편입되면 ‘세금’의 개념으로 인식돼 목표한 금액을 채우는데 만 급급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건강보험공단 직장노조는 징수통합에 대해 같은 사업장의 공공노조 전국사회보험지부와 연대하고,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근로복지공단노조와 함께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중심으로 하는 징수통합안을 제안했다. 또한 2009년 10월에는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해 사회보험지부와 함께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곽 의장은 “징수통합과 관련해서 논의를 하다 보니 공투본이 조직되고 지금은 의료보험, 건강보험 민영화와 관련해서도 참여하고 있다”며 “노사협의회도 공동 운영하고 있어 점점 두 노조 간 접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사합의 사항, 기재부만 “안돼”

건강보험공단 임직원 평균 연령은 42세이며, 평균 근속 기간은 18년이다. 숫자에 나타난 사실은 일반적인 공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부 사정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공단은 1987년과 89년 설립과 동시에 약 7천여 명의 대규모 인력을 채용했다. 현재까지 공단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인력이 이 시기에 채용된 셈이다.

ⓒ 국민건강보험공단직장노동조합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작용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는 심각한 승진적체다. 곽 의장은 “같은 시기에 입사한 사람이 어떤 이는 직급이 1급인데 어떤 이는 5급 직급에 머물고 있다”며 “20년을 일하고도 승진을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승진적체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현재 임직원들의 퇴직시점이 다가오는 10년 뒤다. 건강보험공단 직장노조의 송영무 사무처장은 “앞으로 10년 간 공단 직원의 50% 이상이 물갈이 된다”며 “지금대로라면 아직 직무에 익숙지 않은 신입 직원이 공단의 절반 이상을 채우게 될 텐데, 그렇게 된다면 공단의 업무가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노동조합에서는 이 같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2007년에 조합원들로부터 100억 원의 자금을 출연해 명예퇴직자의 퇴직금에 추가 위로비를 지급하고 신규 인력을 채용했다. 이는 향후 반드시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다는 노·사간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9년에도 노동조합은 노·사 협의를 통해 조합원들에게서 80억, 정부에서 80억의 예산을 받아 같은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뜻밖의 암초에 부딪혔다. 보건복지부의 승인까지는 받아냈으나 예산 집행을 최종 승인하는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안이 반려된 것이다. 사유는 ‘공기업에 아직까지 이와 같은 전례가 없어 승인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곽태형 의장은 “예산안을 세울 때까지만 해도 어렵지 않게 통과되리라 예상했던 사안이 막판에 암초에 부딪힌 것은 정부의 공기업 정책과 태도가 빠르게 경직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불명확한 부과 기준, 스트레스 쌓이네

2000년 직장보험과 지역보험 통합이 갈등을 겪은 것은 보험료 징수 기준을 명확히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정확한 징수가 가능한 직장보험에 비해 지역보험은 징수액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아 뜻대로 징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곽태형 의장은 “지역보험의 경우 자영업자는 소득파악이 어려우며, 주택 가격으로 액수를 책정하는 것도 개인 부채 등 다른 변수가 있어 객관적인 재산파악이 힘들다”며 “공정한 부과 기준을 세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객관적 징수 기준을 만드는 일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이 문제는 2000년의 통합 논쟁뿐 아니라 현재는 스트레스로 조합원들을 억누르고 있다. 부과 기준의 공정성 시비가 계속되는 바람에 조합원들이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만만치 않은 감정노동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 국민건강보험공단직장노동조합

송영무 사무처장은 “초창기 의료보험을 선도해왔던 사람들이 현재 직원들이며 그런 직원들이 사회 공공성에도 애착을 가지고 있지만, 민원의 성격 상 요구사항을 100% 충족시킬 수는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직원들을 무례하게 대하는 경우도 많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송 사무처장은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모두 해결해주기는 어렵겠지만 현재 땅에 떨어진 조합원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의료 산업의 공공성을 지키는 활동, 조합원의 권익을 높이는 활동을 중심으로 향후 사업을 추진하면 조합원들의 직무 만족도를 높여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