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맺기’에서 시작되는 특별한 만남
‘관계맺기’에서 시작되는 특별한 만남
  • 김종휘 하자작업장학교 교사
  • 승인 2005.09.1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이들이 헤매도록 내버려두라! ‘함께’ 헤매라!

김종휘
하자작업장 학교 교사
아래 글은 제가 하자센터에서 운영하는 생태주의 예술단 ‘재활용+상상놀이단’의 모든 워크숍 강사들에게 우리가 하려는 교육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위해 쓴 것이랍니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말하는 교사의 상도 같은 맥락이고, 제가 추구하고 노력하려는 교사의 모습도 같은 것이어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학생이고 누구나 교사이니까요.

 

미로를 통해 교사에게 다가오는 학생

 

특별한 교사는 특별한 학생이 만든다. 특별한 교사는 특별한 학생을 만나는 체험으로 시작된다. 특별한 학생은 한 번에 한 명씩 나타난다. 모든 학생의 특별함을 동시에 만날 수 없다. 관계 맺지 않으면 아는 것이 아니다. 관계는 한 번에 한 명씩 가능하다. 교사 한 명에 학생 한 명. 여건이 어떻든 특별한 교사가 되려면 한 번에 한 명의 학생을 찾아야 한다.


언제나 보면 특별한 학생이 교사에게 먼저 다가온다. 누가 특별한 학생인가. 교사에게 미로처럼 다가오는 학생이다. 만날수록 해답이 없다는 사실만 확인되는 미로 같은 문제의 학생이다. 이 문제는 학생이 교사를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들고 오는 희망의 길이다. 만약 교사가 이미 알고 있는 미로를 가지고 온다면 그 학생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학생의 미로는 알고 보면 그 학생이 그 교사에게 다가오기 위해 힘들게 걸어온 단 하나의 특별한 길이다. 이 길, 학생이 교사에게로 나온 그 길, 교사가 이제는 들어가야 하는 길이다. 학생이 교사에게로 온 길을 반대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교사의 길이다. 한 번에 하나의 길에 들어서고, 다시 나오고, 또 하나의 길을 들어서면서 특별한 교사가 된다.

 

함께 헤맨 경험 나누기

 

학생의 미로를 헤매는 것은 특별한 교사가 되는 특권이다. 학생의 특별함을 조각조각 나눠서 이해하는 것은 가짜다. 학생의 특별함은 통합적으로 총체적으로 직관적으로 느껴서 알게 되는데, 그 방법이 미로 헤매기다. 한 번에 하나의 길을 헤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씩 헤맬 때마다 교사는 학생과 한 번씩 만나고 관계 맺으면서 특별함을 배우게 된다.


교사는 헤맬 때마다 학생을 쳐다보아야 한다. 그 때마다 먼저 미로를 헤쳐 나와 교사에게로 온, 그러나 어찌 통과해왔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학생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도움은 번번이 실패한다. 실패하고 또 헤매며 학생을 쳐다볼 때마다 교사와 학생은 서로 특별한 관계로 발전한다. 도움을 주고 실패하고 다시 도움 요청하고.


이 과정의 반복은 교사로 하여금 학생도 그렇게 헤매며 나에게로 왔다는 것을 알게 하고 학생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교사는 학생의 모든 몸짓과 언어를 한꺼번에 알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 마치 창공의 모든 번개를 죄 빨아들이는 피뢰침처럼, 교사는 미로 가운데에서 우뚝 솟아나 학생을 마주본다. 특별한 교사가 되는 순간이다.


미로에서 출구를 찾아 빠져나오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 그냥 미로를 벗어나 솟구치게 되고, 미로를 내려다보게 된다. 그때 교사와 학생은 헤매며 돌아다녔던 흔적을 바탕으로 은밀한 영역을 소유하게 된다. 이 소유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 때부터 교사와 학생은 어느 방향으로든 특별한 길을 개척하며 나아갈 수 있다. 목적은 출구가 아니다. 특별한 교사가 되고 나면 이렇게 학생과 미로에서 같이 헤맨 흔적과 그 때문에 만들어진 은밀한 소통의 영역을 갖게 된다.


이 경험을 고스란히 글로 쓰고 발표해도 이 세상에 없던 특별한 성장 모델이 하나 탄생한다. 그것이 갖는 매력을 옆에서 지켜본 학생들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학생들은 저마다 교사에게 자신의 미로를 개봉한다.


우리 모두는 다른 방법으로 성장한다

 

학생이 평범해지는 것은 정답이 미리 있다고 전제하거나 알려주고서 정답을 흉내내게 할 때이다. 학생이 특별해지는 것은 자신이 어떻게 헤맸는가를 보게 될 때이다. 교사가 그 학생의 미로에 들어갔을 때만 학생은 그것을 보게 된다. 학생이 헤매고 온 길을 교사가 거슬러서 헤매며 들어가는 것. 특별한 학생은 특별한 교사와 함께 이렇게 발견된다.


게릴라 학습법으로 유명하다는 미국의 교사 개토는 <바보 만들기>(민들레)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제멋대로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스스로 바로잡을 기회를 가져야만 자신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헤매지 않고 미로를 나오는 법을 가르치는 교사는 엉터리다. 다만 한 번에 한 명과 어떻게 헤맸는지 발견할 수 있다. 특별한 교사가 되는 방법이다.


지금껏 남발해서 사용한 특별함이란 것은 실은 관계와 만남으로 이뤄지는 자기 주도적 성장(Self-teaching)이 마치 모든 이들에게 동시에 똑같이 적용해도 될 것처럼 하는 획일주의와 효율주의와 비교할 때, 그런 엉터리 공식을 믿고 좀체 달라지려고 하지 않았던 나를 거역하려고 할 때, 이때 생기는 충격과 불안과 혼란이 교사를 특별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문제가 능력을 길러준다

 

그래서 특별함이라는 것은 진짜(Real)를 의미한다. 어떤 학생도 시시한 것과 흥미진진한 것을 금세 안다. 시시한 것은 잘 정리된 길들과 곳곳에 준비된 표지판으로 기차 레일처럼 한 번 출발하면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식의 학습과 성장을 약속하는 교사에게 있다. 흥미진진한 배움은, 특별한 교사가 특별한 학생을 찾아 미로를 헤매는 진짜 경험에서 나온다.

세상에! 네 몸 속에 이토록 자욱한 눈보라!
헤집고 갈 수가 없구나
누가 가르쳐주었니?
눈송이처럼 스치는 손길 하나만으로
남의 가슴에 이토록 뜨거운 낙인 찍는 법을
세상에! 돌림병처럼 자욱한 눈보라!
이 병 걸리지 않고는 네 몸을 건너갈 수가 없겠구나


- 김혜순 <자욱한 사랑> 일부


‘재활용+상상놀이단’의 ‘일을 통한 성장 키워드 3가지’ 중 2번, ‘문제가 능력을 길러준다(Thanks problem!)’는 말이 뜻하는 것 역시 미로를 헤매며 문제와 씨름하는 한 명의 교사와 한 명의 학생이 맺는 진짜 관계와 연결된다. 가짜 문제란 시험지에나 있고 시시하다. 진짜 미로에서 진짜 문제를 만났을 때 특별한 교사는 ‘땡큐!’ 하게 된다. 또 하나의 성장 모델을 발견할 테니까.


‘재활용+상상놀이단’의 워크숍, 상하반기 각 3개월, 24회차 프로그램표. 이것은 틀에 불과하다. 특별한 교사가 되려면, 한 번의 워크숍을 할 때마다, 봄과 가을이 한 번씩 돌아올 때마다 한 명의 특별한 학생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훌륭한 어른들이 특별한 교사가 되지 못하고 마는 이유는 이 과정을 모르거나, 학생이 걸어온 그 길로 들어서서 헤맬 용기가 없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