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원한 개그맨, 방송과 내 인생이 같이 끝났으면 좋겠다”
“나는 영원한 개그맨, 방송과 내 인생이 같이 끝났으면 좋겠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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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이홍렬

개그맨 이홍렬은 젊다. 1954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로 쉰 둘인데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도전을 즐긴다. 그러나 그의 젊음은 연륜과 함께 하는 젊음이다. 단순히 톡톡 튀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넉넉함 속에서도 늘 새롭다.


이홍렬은 79년 TBC 라디오를 통해 방송에 데뷔한 이후 MBC <청춘만세> <영11>의 변사 역할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오늘은 좋은 날>의 ‘귀곡산장’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다면 한다’를 거쳐 SBS <이홍렬쇼>를 맡으면서 최고의 개그맨이자 MC의 자리에 섰다.


그런 와중에 87년 뒤늦게 대학에 진학했고, 활발한 활동을 하던 91년에는 훌쩍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98년에는 또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때 그는 “내가 10년 뒤에 10년만 젊었더라면 미국에서 공부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고, 그러나 마침 그 10년 전이 지금이기에 떠나기 좋은 때라고 여겼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지금 그는 방송활동을 하면서 매니지먼트회사 리센을 설립했고, 대학에서 ‘아이디어 발상법’을 강의하면서, 대학로에서 연극 무대에 서고 있다.


여전히 ‘개그’를 꿈꾸고, ‘인생’을 가꾸고, ‘믿음’을 심고 있는 이 ‘젊은’ 개그맨을 대학로 공연장에서 만났다.

 

1막 도전 -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직업


- 항상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살아왔는데, 도대체 무엇이 그 힘인가.


"개그맨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요즘 개그맨들이 너무 강한 캐릭터를 자꾸 앞세우고 빨리 알려지려고 하다 보니 과장된 제스처, 유행어 등 무리수를 많이 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발력을 키워나가야 하고, 아이디어가 풍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선천적인 것도 있지만 후천적인 훈련과 공부에 의해서 키워나갈 수 있는 것들이다. 문화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 할 일이 많은 직업이다."

 

- 일본과 미국으로 훌쩍 떠나면서 나중에 돌아온 후에 자리가 없으면 어떡할까 걱정 안 했나.


"일본 갔을 때는 걱정이 많이 들었다. 2년 동안 일본 있으면서 전세금 다 까먹었는데 인덕이 있었는지 돌아와서 더 잘 풀렸다. 미국에 있을 때는 걱정 안 했다."


- 그렇게 유학을 다녀오고 나니까 이경규, 이봉원 등 다른 후배 개그맨들도 많이 뒤를 따랐는데.


"평생 한다고 생각하면 급할 거 없다. 나하고 같이 8년 일했던 매니저가 있는데, 평소에 공부해야 된다고 했더니 어느 날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겠다고 떠났다. 그 친구 학비 일부 대줬다. 그 매니저가 소개해 준 게 지금 매니전데, 지금 매니저한테는 공부하란 얘기 안 해야 겠다. (웃음)"

 

 

2막 후배 - 난 방송인 아닌 개그맨


- 요즘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제일 슬퍼질 때가, 메뚜기도 한 철이니까 개그맨 좀 하다가 돈 좀 벌어가지고 딴 사업을 하겠다는 후배들을 볼 때다. 최근에는 개그맨 수명이 2년 밖에 안 된다는 얘기를 들을 때 슬프다. 이제는 개그맨이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직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다. 후배들이 2~3년 하다가 사라지는 게 정말로 안타깝다.


후배들이 오래오래 해야, 그래야 나도 더 오래할 수 있다. 너무 급하다. 짧은 시간에 웃기려고 하니까 기승전결은 무시한 채 본론, 캐릭터 부각, 이렇게 되고 있다.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들은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 지금은 코미디 프로그램이 많이 늘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버라이어티쇼, MC 진출을 많이 생각하지 않나.


"난 비행기 타고 해외 나갈 때 반드시 직업란에 개그맨이라고 적는다. 방송인이라고 적으면 더 폼 날지도 모른다. 누군가 왜 개그맨이라고 적는지 묻더라. 난 앞으로도 개그맨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 자리에 있어줘야 후배들의 폭도 넓어지고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3막 기록 - 과거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비전이 생긴다


- 홈페이지(www.bbangco.com) ‘이홍렬의 역사는 흐른다’ 코너를 보니까 놀랍더라. 아주 오래 전 일들도 날짜까지 꼼꼼하게 기록돼 있던데.


"중학교 시절부터 2년 전까지 꼬박꼬박 일기를 썼다. 지금은 스케줄표에 여러 가지 기록을 한다."

 

- 그렇게 기록하면 좋은 점이 뭔가.


"사람들이 흔히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고들 하는데. 나는 과거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한다. 과거를 소중하게 생각하면 미래 비전이 있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나온 기사는 모두 다 스크랩돼 있다. 나의 소중한 재산이다. 기록을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답이 나온다. 정말 잘 늙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그런 기록이 바탕이 돼서 이제는 대학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이디어 발상법’이라고 들었다. 아이디어는 어떻게 만들어 내는 건가.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내는 방법을 모른다. 간단한 훈련부터 해나가기 시작하면 습관이 된다. 각도를 달리 보면 된다. 그런 훈련이 습관적으로 잘 돼 있는 사람이 전유성씨다. 그러나 아이디어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역시 공부다.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 아이디어 발상법이라는 과목이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웠다. 아이디어는, 나올 때까지 ‘불독 정신’을 가지면 반드시 나온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내놓더라도 무시하면 안 된다. 그것이 플러스 알파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홍렬쇼> 때는 오프닝 하나만 가지고 6~7시간씩 아이디어회의를 한 적도 있다."

 

 

4막 가족 - 아이들에게 ‘신용’과 ‘책임감’을 가르친다


- 직업상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할 텐데 아빠 역할은 어떻게 하나.


"애들이 열여덟, 열여섯인데 그 또래가 대화하기가 힘들다. 지금도 아이들한테 장난 걸거나 하는 걸 좋아하는데 잘 안 되더라. 아이들한테는 끊임없이 자기를 얼마나 버텨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눈 뜨는 것부터 자신과의 싸움이다. 약속이기도 하고 신용이기도 하고 책임감이기도 하다. 자기하고의 싸움,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 모든 것이다. 어머님이 주신 우리 집 가훈이 신용, 책임감이다. 그런 걸 애들한테 심어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 남들은 다 외국으로 내보내는데 아이들을 귀국시킨 것에 대해 항의하지는 않던가. (이홍렬씨는 자신과 아내가 모두 공부를 마치자 4년 만에 아이들을 귀국시켰다.)


"주입을 시켰다. 나는 끝나고 들어왔고, ‘엄마가 2년 8개월을 더 공부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그 기간동안 더 있는 거다. 엄마가 졸업하자마자 너희들 와야 한다’고 주입했기 때문에 별 다른 문제가 없었다. 주입이 중요하다. (웃음) 좋은 것도 세뇌할 필요가 있다. 요즘 세뇌하는 것은 ‘넌 아빠가 용돈 언제까지 준다고 했지?’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그 이후는 어떻게 해야 돼?’ ‘내가 벌어야 돼’ ‘공부는 언제까지 시키지?’ ‘하고 싶을 때까지’ ‘아빠한테 물려받을 유산 있어?’ ‘없어’ 자동이다. 주입, 세뇌를 시킨다."

 

5막 희망 - 무대에 서면서 후배들을 키우고 싶다


- 개그 프로그램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나라고 왜 그런 무대에서 코미디를 안 하고 싶겠나. 그런 무대에 대한 갈증 때문에 연극 ‘돌아온 귀곡산장’을 만든 것이다. 강성범 나이 또래만 해도 터가 있는데, 그 나이도 서서히 밀려나오는 추세다. 내가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면 이상하지 않나. 그럼 우리를 위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쉽지 않다. 우선 시청률 걱정도 있고 일주일 내내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임하룡, 전유성, 김병조, 강석 등 우리 또래가 다 모여서 일주일 내내 우리한테 맞는 꽁트, 작품을 만들어 나갈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 개그콘서트, 웃찾사가 수명이 긴 이유는 코너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 전문 MC들보다 훨씬 출연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고 얘기를 잘 들어주면 상대방은 마음을 닫지 않고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다. 유능한 MC는 질문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잘 들어주는 거다.


토크쇼를 오래 하고 싶다. 개그맨들의 마지막 꿈은 자기 이름을 건 토크쇼다. 난 다행히 그걸 아주 젊어서나 아주 나이 들어서도 아니고 40대에 했다. 이제는 후배들을 키워야겠다,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경험을 전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학교도 3년째 나가고 있다. 내가 키운 후배가 자기 이름을 건 토크쇼를 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 매니지먼트사를 열었는데 어떤가.


"회사 연 지 1년 5개월 됐는데 아직 적자 상태고 늘 어렵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적으로 하고 싶다. 후배가 벌어오는 돈은 후배에게 쓰자고 생각한다. 작년에는 김학도를 위한 콘서트를 열었으니까 올해는 강성범을 위한 무대를 마련하자고 기획했다. 〈리센〉 만든 거 후회 없다. 큰 돈 벌 욕심이 있는 건 아니니까. 후배를 위해서 돈을 벌지, 후배를 이용해서 돈을 벌지 않겠다는 생각만 있으면 된다."

 

- 최근 개그맨과 개그맨 출신이 만든 매니지먼트사 간의 심한 분쟁이 있었는데.


"둘 다 문제다. 선배는 후배에 대한 애정을 갖고, 후배는 선배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면 문제가 일어날 리가 없다. 나는 계약서를 쓸 때 한 장 한 장을 넘겨 가면서 각 항마다 함께 읽었다. 내가 엔터테인먼트사에 불리한 계약을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은 강압이 아니라 배려라고 생각한다."

 

-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은.


"우선 앓는 소리 안 해도 될만큼 회사가 자리 잡는 거고, 그 다음에는 후배들 양성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 나도 언젠가는 방송을 못하게 될 것이다. 모양새 좋게 나이 들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싶고, 나중에 방송과 내 인생이 같이 끝났으면 좋겠다."

 

강성범, 그리고 돌아온 귀곡산장

지금 대학로에선 이홍렬과 강성범이 함께 호흡을 맞추는 연극 ‘돌아온 귀곡산장’이 상연 중이다. 강성범은 이홍렬과 20년차가 나는 후배다. 물론 이홍렬은 자신이 87학번이고 강성범이 93학번이기 때문에 6년차 선후배라고 주장하지만.

아무래도 강성범으로서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그런데 편안하단다. “어떨 땐 내가 너무 편하게 대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된다”고 할 정도다. 강성범은 그 비결로 선배 이홍렬의 배려를 들었다. 작은 것 하나까지 챙겨주려는 배려 속에 함께 무대에 서면서 가까워졌단다.

사실 인터뷰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홍렬은 ‘옵션’을 걸었다. 후배 강성범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 강성범의 소속사 대표이고, 또 연극을 공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분히 ‘끼워 팔기’(?) 의혹이 생길만도 하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홍렬은 ‘재능 있는 후배’ 강성범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다. 그의 후배 칭찬은 끊이지 않는다.

“함께 무대에 서 보니까 참 열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친구예요. 무엇보다 흐뭇한 건 ‘웃길 줄 안다’는 거죠. 개그맨더러 웃길 줄 안다는 게 웃기는 얘긴데 (웃음) 제대로 웃길 줄 아는 사람이 드물어요. 호흡도 알아야 되고, 관객들과 밀고 당길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런 내면을 갖고 있어요.”

이홍렬은 아예 처음부터 강성범을 생각하고 대본을 썼다. 지난해 김학도를 위해 콘서트를 마련했던 것처럼, 올해는 강성범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것.

강성범은 이홍렬에 대해 “굉장히 정력적이고 또 꼼꼼하다”고 평한다. 그래서 20년 후 자신의 역할 모델이란다.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가고, 또 그러면서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닮고 싶단다.

연극 ‘돌아온 귀곡산장’은 93년 MBC 코미디 프로그램 ‘오늘은 좋은 날’의 한 코너였던 ‘귀곡산장’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홍렬과 강성범이 계속 여러 캐릭터를 변주해 가면서 시원한 웃음을 선사한다.
‘젊은 층에게 구식이라는 소리 듣지 않고, 나이 든 사람들도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20대 관객부터 60대 노부부까지 같은 장면에서 폭소를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이홍렬의 연륜과 강성범의 재치가 어우러진 유쾌한 코미디극이다. 부부가 함께, 혹은 직장 동료들과 가기에도 부담이 없다. 공연은 서울 대학로 상상나눔시어터에서 8월 28일까지 계속된다. 화~목 오후 7:30, 금~토 4:30, 7:30 일 4:30 공연이다. 문의는 (02)744-0300 www.gwigok.com

참, 강성범은 9월부터 TV를 통해 다시 만날 수 있단다. 수다맨, 연변총각에 이은 새로운 변화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