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강한’ 팀 만들고 싶다
‘꾸준히 강한’ 팀 만들고 싶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9.12.08 08:53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년 만에 10번 째, 9년 만에 처음 ‘희망’을 쓰다
기아 타이거즈 우승의 숨은 주역 김조호 단장

11월 14일, 좀체 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는 늦가을에 일본 큐슈 나가사키현 빅 N 스타디움에서 한일 양국 프로야구 챔피언이 만났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두 나라 최다 우승팀들인 전통의 강호 기아 타이거즈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맞섰다는 점이다. 일종의 번외경기 성격이었던데다 기아 타이거즈의 경우 외국인 선수들이 모두 빠지고, 부상, 입대 등으로 주축 선수들이 대거 자리를 비워 결과는 요미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이날의 승패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기아 타이거즈 유니폼에 새겨져 있던 ‘K7’이라는 글귀였다. 이 글귀를 본 일본 야구 관계자들은 “기아 타이거즈가 코리언시리즈에서 일곱 번 우승했다는 의미냐”고 물었단다. 하지만 K7은 기아자동차가 야심차게 준비해 11월 말에 선보인 준대형 세단의 이름이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야구는 한일 양국에서 모두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또 영향력이 큰 스포츠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야구단을 운영하는 모기업들의 홍보 첨병 역할도 하고 있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경기에서 선수들이 달고 나온 신상품 광고는 곧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래서 기업이 운영하는 프로 스포츠팀 중 성적에 가장 민감한 것이 야구이기도 하다.

기아 타이거즈는 올해 통산 10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우승을 밥 먹듯 하던 시절을 생각해 본다면 12년만의 우승은 참 오랜 기다림이었고, 팬들의 염원을 해소시켜 준 셈이다. 더구나 기아가 야구단을 인수한 지 9년 만에 처음 맛보는 우승이다.

이 감격적인 우승을 뒷바라지 한 사람이 바로 김조호 단장이다. 김조호 단장은 2007년 10월 야구단 단장으로 부임한 지 두 시즌 만에 우승을 일궈냈다.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인사노무 업무를 담당하던 그가 야구단으로 발령이 난 것은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른다.

김조호 단장의 이름은 ‘비출 조(照)’에 ‘호랑이 호(虎)’ 자를 쓴다. 호랑이를 비추다니, 이보다 더 기아 타이거즈 야구단 단장에 적합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적어도 이름으로만 본다면 말이다.

사실 김조호 단장은 야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잘 알지는 못했다. 호남 출신이다보니 예전부터 타이거즈 시합에 관심을 가지고 보는 편이기는 했지만 그냥 즐기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야구인이 다 됐다.

한 달 가까이 우승 관련 각종 행사들을 치르고 다시 내년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는 기아 타이거즈 야구단 김조호 단장을 만나 그의 야구 이야기, 사람 이야기를 들어봤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김조호, ‘미친’ 나지완을 예견하다

10월 24일, 한국시리즈 7차전이 열린 잠실야구장. 시리즈 전적 3승 3패로 팽팽히 맞서던 기아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의 마지막 대결이 펼쳐졌다. 한 판으로 한해의 성적이 판가름 나는 순간. 5 대 5 동점으로 맞선 9회말 1사 후 타석에 들어선 나지완의 배트가 경쾌하게 돌아갔다.

극적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끝내기 홈런이었다. 하지만 김조호 단장은 이 홈런 순간을 보지 못했다. “기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함성이 터져 나오더군요. 고개를 들어보니 공이 새까맣게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 순간을 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주인공이 나지완일 것이라는 건 맞췄다. “왜 흔히들 큰 경기는 소위 말하는 ‘미친 놈’이 나와야 한다잖아요. 해결사가 필요하다는 거죠.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나지완한테 그랬어요. ‘지완아, 이번 코리언시리즈 때 미쳐보고 싶지 않냐?’ 그랬더니 ‘단장님, 저 미치고 싶습니다’ 그러더군요.”

그래서 9회말이 시작될 때 모기업 임원들이 “누가 홈런 하나 쳐주면 되겠는데…”라고 했을 때 김 단장은 “나지완이 칠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그 극적인 우승 순간 김 단장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정말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눈물도 나고….”

김 단장은 팀이 꼴찌로 떨어지고 부임했다. 주변에서는 “단장님, 좋으시겠어요” 했다. 꼴찌를 했으니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나름의 ‘덕담’이었다. 하지만 어찌 마음 편할 수 있었겠는가.

지난 해 기아는 야심차게 선수단을 구성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89승을 올린 투수 호세 리마를 비롯해 발데스, 서재응, 최희섭에 이르기까지 메이저리그 출신만 4명이었다. 다른 팀 단장들이 만날 때마다 “메이저리그 군단 단장님 오신다”며 부러움 섞인 인사를 건넸지만 결과는 6위였다.

두 외국인 선수들은 물론 국내파 메이저리그 출신들도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주위의 기대가 컸던 만큼 김 단장의 부담은 더욱 컸고, 결과는 아팠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삼위일체

김 단장은 그 돌파구를 조직 내부의 인적 자원을 활용하는 데서 찾았다. 신뢰에 기반한 인재의 활용이 해법이었다. “나는 초보지만 우리 팀에는 아홉 번이나 우승을 경험한 베테랑 프런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과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2008년 시즌이 끝나고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때 김 단장은 투수 한 명, 타자 한 명을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08 시즌 팀내 최다 홈런 선수가 겨우 12개를 쳤고 팀 홈런은 48개였다. 타선 보강이 절실하다고 생각한 것. 하지만 경험 많은 프런트와 코칭스태프의 생각은 달랐다. 야구는 일단 투수가 안정돼야 기회가 온다는 것.

김 단장은 그 의견을 수렴해서 두 명의 투수 용병을 뽑았다. 올해 기아 타이거즈는 팀타율이 2할6푼7리로 8개팀 중 최하위였다. 하지만 안정된 투수력과 적재적소에 터진 156개의 홈런으로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기아 타이거즈는 2007년 꼴찌를 한 지 2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한국 프로야구 28년 역사상 전무한 일이다. 축구나 농구, 배구처럼 선수단 규모가 크지 않고 게임수가 적은 경우에도 꼴찌로 추락한 팀을 우승시키는 데는 3년 정도 걸린다는 게 통설이다. 야구의 경우는 5년으로 잡고 있다. 그런데 2년 만에 바닥에서 정상으로 치고 올라온 것이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삼위일체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봐야죠. 감독과 코칭스태프 등 지도자, 그리고 선수들, 여기에 지원해주는 프런트가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좋은 용병을 구하고, 김상현이라는 좋은 선수를 트레이드한 것은 프런트의 역할이었고,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리더십을 발휘해서 전력을 극대화시켰습니다. 또 선수들은 열심히 해서 패배의식을 떨쳐낸 것이 우승을 일궈낸 힘입니다.”

김 단장은 전임자들의 공을 거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올해 꽃을 피운 양현종, 곽정철, 손영민 등 젊은 선수들은 전임자들이 뽑았고 그 결실이 올해 나타났다는 것.

김조호 단장이 생각하는 ‘좋은 프런트’라는 건 어떤 것일까. 김 단장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고 정리했다. 묵묵히 선수들이 편안하게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고 부족한 점,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프런트가 과도하게 선수단 운영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럴 경우 현장에서 감독이나 코칭스태프가 아닌 프런트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 현장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서 따라주고, 거기에 대해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이 프런트의 역할이라는 것이 김 단장의 생각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협상의 원칙은 공정하고 동일한 잣대

1984년 기아자동차에 입사한 김조호 단장은 주로 홍보, 인사노무 업무를 맡아 왔다. ‘낯선’ 야구단에 부임했지만 전에 맡았던 인사노무 업무와 닮은 점도 있다고 말한다.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에서는 (인사노무 업무와 야구단 일이) 매우 흡사합니다.”

김 단장은 두 일의 공통점을 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동기부여 해주고, 그 사람을 믿어주고,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해결해주는 점은 같은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업무의 닮은 점은 또 있다. ‘협상’이 주요 업무 중 하나라는 점이다. 인사노무에서 노사 간의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나, 야구단이 시즌이 끝난 후 선수들과 연봉협상을 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업무다. 김 단장이 생각하는 ‘협상의 원칙’은 간단했다. ‘공정하고 동일한 잣대를 가지고 적용한다’는 것. 그리고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윈윈 게임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사실 야구는 ‘통계의 스포츠’라고 할만큼 자료들이 많다. 선수들의 개인 실적이 모두 숫자로 정리된다. 기아 타이거즈만 하더라도 투수 부문의 고과 항목이 무려 119개에 달한다. 타자도 54개 항목별로 평가가 이뤄진다. 당연히 팀 공헌도가 중요한 평가 대상이다.

팀을 승리하도록 하는 투구이닝, 승수, 평균자책 등이 점수로 매겨진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들까지 신경 쓰고 있다. 한 경기를 치르다보면 몇 차례의 위기를 맞게 되고, 그 때마다 불펜 투수들은 몸을 푼다. ‘불을 끄기 위해’ 등판하는 경우도 있지만, 몸만 풀다가 다시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몸을 풀면서 대기하는 경우도 모두 수치로 계량화돼 선수들의 고과에 반영된다.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대기하는 선수들에 대한 평가 점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과 산정에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1등의 꿈을 공유하다

김조호 단장에게 이번 우승에 대해 기아자동차 구성원들이 자긍심을 많이 가지더라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기아차 구성원들에게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김 단장은 조심스러워했다. 우승 한 번 했다고 나서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경솔한 것이라고 몸을 낮췄다.

하지만 그런 그도 기아 타이거즈의 선전이 영업활동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에는 즐거워했다. “기아가 야구를 잘 하니까 영업 사원들이 판촉을 할 때 야구 얘기로 풀어나갈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밝게 웃었다. 그도 천상 기아맨이었다.

기아 타이거즈가 우승을 확정짓고 축승회를 하는 자리에 참석한 정의선 부회장이 “정말 타이거즈가 큰일을 했다. 기아자동차가 시장에서 한 번도 1위를 못해봤는데 기아 타이거즈가 우승했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 그래서 기아차도 1위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관성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실제 기아자동차는 최근 ‘경사’가 있었다. 그간 단 한 차례도 없었던 판매 1위를, 비록 일부 영업소 기준이지만 달성한 것이다. 기아차 관계자에 따르면 제주, 광주 등 일부 영업소에서 아성으로 여겨지던 현대차를 넘어서 1위로 올라섰다.

흔히 프로야구팀 감독에 대해 대한민국에 남자로 태어나서 꼭 한 번 가져볼만한 직업으로 꼽는다. 단 8명 밖에 없다는 희소성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프로야구팀 단장도 해볼만한 직업일 것이다. 하지만 김 단장은 별로 좋은 자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 때문이다.

프로야구팀 감독과 단장은 대표적으로 단명하는 직업군으로 알려져 있다. 워낙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김 단장도 야구팀으로 발령받고 난 후 10년 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시합을 보고 있으면 담배를 피워 물지 않을 수 없단다.

1년 133경기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경우 그보다 더 많은 경기를 모두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자면 웬만한 강심장으로는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는 스트레스 해소법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고 말한다. 운동으로 푸는 게 제일 좋다고는 하는데 6개월 간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치러지는 경기, 그리고 나머지 6개월간 이어지는 연봉협상과 훈련 등을 감안하면 도저히 시간을 못 낸단다. 그나마 사우나에 가는 걸로 피로를 풀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팀 리빌딩이 중요한 시점

김조호 단장은 독실한 크리스찬이다. 그래서 미신 같은 것은 아예 믿지도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체육인들이 그러하듯이 그도 징크스에 시달린다. 김 단장은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의 예를 들었다. 김 감독은 숙소에서 경기장까지 걸어서 이동하는데 경기에서 이기면 다음날도 똑같은 코스를 걷는다는 것. 하지만 지는 날에는 이동 코스를 바꾼다.

김조호 단장도 다르지 않다. 그는 가족과 떨어져 광주 숙소에서 생활한다. 경기에서 이긴 날은 전날 자신이 주차했던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방향으로 차를 댄다. 지는 날에는 절대 그 자리에 대지 않고 다른 곳을 찾아서 차를 댄다. 식당도 마찬가지다. 경기장 주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그곳에서 식사한 날 이기면 다음날도 같은 곳에서 같은 메뉴를 주문하지만 지기라도 하면 절대 그 식당을 찾지 않는다. 심지어 승리한 날 입었던 속옷은 며칠씩 빨지 않고 다시 입기도 한다. 혹시라도 빨게 되면 같은 색깔 속옷을 입는다. 그만큼 승리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뜻이다.

우승하고 싶지 않은 야구팀 단장은 없을 것이다. 그도 역시 내년 시즌 2연패를 꿈꾼다. 하지만 그는 우승이라는 건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팀 리빌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내년에 우승을 못하게 되더라도 우승을 계기로 세대교체를 이뤄내고 이를 토대로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것이 김 단장의 목표다. 바닥일 때가 아니라 잘 나갈 때 팀을 강하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호랑이를 비추는’ 김조호 단장의 2010 시즌은 ‘조용히’ 벌써 시작됐다. 그의 스토브 리그가 말 그대로 ‘스토브’처럼 따끈할 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그의 꿈이 새로운 ‘기아 왕조’의 건설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