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학교’가 항상 옳지는 않다
‘명문학교’가 항상 옳지는 않다
  • 조진표
  • 승인 2009.12.0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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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미래 설계를 위한 방편
고학력,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소질에 맞는 직업목표 가져야
조진표 와이즈멘토 대표이사
교육컨설팅 관련 강연과 방송
진행일간지 교육칼럼 기고

이른바 ‘사교육 1번지’라는 강남구 대치동에서 진로상담 전문기관을 운영하다 보니 학부모들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몇몇 학교의 이름들을 자주 듣게 된다. 이중 인기 상종가를 달리는 곳이 외고, 자사고, 과학고 등으로 학부모들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듯하다.

물론, 아이들이 공부에 소질을 보이고, 공부에 뜻이 있어서 열심히 공부한 결과 소위 말하는 명문고, 명문대를 간다면 기특하고 대견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목적도 모르고,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볼 때, 그들이 이후에 겪게 될 일들을 알고 있는 본인으로서는 걱정이 앞선다.

본인 역시 카이스트, 포항공대, 서울대 등 국내 최고라 칭해지는 3개 대학을 모두 입학해서 학사, 석사, 박사를 공부해 본,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소위 말하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진로를 아주 잘 알기에 더욱 안타까울 때가 많다.

대학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랑스럽고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갈 무렵에는 아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많이 보아왔다. 왜냐하면 대학에 가면 중, 고등학교 때부터 목표를 명확히 하고 대학에 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가 뚜렷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목표를 가지고 대학에 들어온 사람은 1학년 때부터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알아서 착착 준비해 나가지만, 그저 공부만 했을 뿐 미래에 대한 목표를 정하지 않고 공부만 팠던 사람은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대학생활에서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시도만 해볼 뿐 제자리에 머물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뒤처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장기적인 목표가 있는 사람에게 대학은 단순히 그 목표를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만 대학입학 자체가 목적이었던 사람은 목표상실로 인해 방황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 재미난 것은 외고, 과고, 서울대, 카이스트 나와서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화려했던 과거에만 연연하며 방황하는 사람이 제법 많은 반면, 학부모님들이 선을 그어놓은 소위 말하는 ‘비명문 대학’에 진학하였으나 되려 진로선택을 잘하여 본인의 적성에 맞는 분야에서 행복하게 사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왔다.

ⓒ 와이즈멘토

고학력이 경쟁력 못 된다

교육의 목표는 명문대학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성공적인 사회진입을 해서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자립은 성공적인 사회진입의 필수요건이다.

자본주의가 고도화 될수록 개인 경제력의 중요성은 더 커지게 됨에 따라, 쓸데없는 고학력보다는 조금이라도 일찍부터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진로를 설계해야 한다. ‘공부’, ‘공부’ 하다 보니 우리나라는 비효율적인 고학력 사회가 됐다.

예전이면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지금은 대학원 나온 사람들이 하고 있다. 일 자체는 변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학력만 높게 변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 만족도만 떨어뜨리는 꼴이 돼 버렸다.

대학원에 공부하기 위해 간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취업난을 피해서, 남자는 군대를 피해서 가는 곳이 대학원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취업난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가장 호황을 누리는 곳이 대학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요즘 우리사회의 대학원은 고급학위로서의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해외 MBA학위를 취득해도 예전만큼 취직이 용이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대학원 졸업자는 예전의 대학 졸업자와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석사가 기본 학위가 되어가고 대학 다니면서 어학연수 1년은 기본이 되어감에 따라 한국 젊은이들의 사회 진입연령은 점점 늦어지고 있다. 남자의 경우에는 군대까지 포함하면 30세 가까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그때까지 뒷바라지는 누가 하겠는가? 다 부모가 짊어져야 할 짐이다. 부모의 노후를 위해 써야 될 돈이 아무 의미 없는 학위 추가에 쓰이고 있는 셈이다.

10년 후의 유망직종을 찾아라

그렇다면, 자녀 진로지도를 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염두에 두는 것은 어떨까?

자녀가 아주 탁월하게 공부에 소질이 있는 게 아니라면 빨리 사회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공부에는 별 뜻도 없으면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 결국에는 비용만 잔뜩 추가 지출하고 고학력 실업자 대열에 끼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돈은 한 살이라도 일찍부터 벌기 시작하면 나중에 벌기 시작한 사람하고 비교했을 때 불어나는 속도가 다르다. 20대 중반부터 사회생활을 한 사람하고 30대 초반부터 사회생활을 한 사람하고는 경제적 자립의 시기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남학생이라면 군대를 해결하는 시기와 방법을 일찍부터 적극적으로 모색해서, ‘군대 피해서 대학원 간다’는 이공계 명문 대학원생들의 한심한 전철을 밟지 말기 바란다.

아울러, 현재 유행하는 것보다 10년 후 자녀가 사회에 진출할 때 유망한 일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유행하는 것은 보통 자녀가 사회에 나갈 때는 이미 유행이 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이 알고, 나도 알고, 내가 하고, 남도 하는 것은 더 이상 유행이 아니다. 끝물일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는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린 아이들마저도 휴대전화를 들고 다닌다. 앞으로 10~15년이 흘렀을 때는 또 어떤 깜짝 놀랄 기기가 우리를 놀라게 할지 모른다.

아이의 진로지도 역시 그렇다. 늘 현재의 상황보다는 앞으로의 상황을 가정하여 진로지도를 하는 것이 좋다. 10년 전의 대학입시에서는 의대가 가장 높은 학과가 아니었음을 늘 잊지 말기 바란다. 지금 고3이라서 당장 이번에 의대를 간다고 할지라도 의사가 되는 것은 10 ~12년 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성실성이 좌우

마지막으로, 공부 잘하는 학생이면 진로지도를 통해 더욱 더 좋은 기회를 많이 만들 수 있고,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자신의 적성에 맞으면서도 멋진 직업 목표를 갖는 것이 성적 향상에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목표 없이 이리저리 뛰는 것이 1~2점의 성적향상을 가져 온다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진로지도는 아이의 역량을 총동원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에 10점~20점의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공부를 남다르게 잘해서 다르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현재의 공부실력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진로 결정 작용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과 비전,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의지와 성실성이 좌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