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 위기와 노동운동 위기는 닮은 꼴”
“시민운동 위기와 노동운동 위기는 닮은 꼴”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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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탓하기보다 구성원 관심사에 한발 다가가야
한국노총 외부 회계감사 하승수 변호사

지난 7월 18일 한국노총은 세 명의 외부회계감사를 임명했다. 대의원대회에서 통과된 혁신안 중 재정 투명성 확보를 위한 실천에 본격적으로 들어간 셈이다. 


‘비영리 공익단체에서 추천하는 공인회계사를 포함해 회계감사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개정 규약에 따라 함께하는시민행동,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하승수(시민자치정책센터 운영위원)·윤종훈(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실행위원)·이종석(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공인회계사가 외부회계감사위원에 위촉됐다.


모두 공인된 단체의 추천을 받은 인물들이지만 이 중에서도 하승수 변호사는 가장 주목을 받는 사람 중 하나다. 

 

“투명성·민주성은 동전의 양면”


그는 지난 5월 한국노총 비리사건 직후 열린 여러 토론회에 참석해 “회계의 투명성 자체로는 비리를 예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조직 운영 전반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며 거침없는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던 인물이다.

 

위촉 직후 한국노총에서 만난 하 변호사는 부위원장실에 ‘임시 감사캠프’를 차리고 수북한 서류들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감사에 앞서 재정자립도나 그간의 회계 운영 방식을 먼저 훑어보고 있는 중.

 

이번 사태가 한 개인의 비리로 표출된 문제일 뿐 조직운영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투명성·민주성·책임성은 원래 맞물려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조합원이 정보공개 청구권을 갖는 것은 투명성 확보에도 도움이 되지만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역할도 하는 거죠. 제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은 투명성을 조금 높이는 것이고, 나머지는 노총과 조합원의 몫입니다.”

 

“숨길 게 없으면 비리도 없어져”


스스로도 ‘티는 안 나고 골치는 많이 아픈 일’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실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일에 ‘집도의’가 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노동운동이 우리사회의 민주화와 발전에 해온 기여만큼은 부정할 수 없고, 또 그런 순기능을 살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노동운동이 혁신을 통해서 내·외부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기도 했고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자는 마음이었어요.”


재정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한국노총이 총연맹은 물론 시도본부의 재정운용 프로그램 제시를 공언한 만큼 갈 길이 멀다.


일단은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정확하고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행부나 사무총국이 이끌어가는 투명성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의 참여와 비판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투명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 원칙은 숨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기업과 정부의 예산감시 활동을 펴면서 숨기려는 시도에서부터 부정이나 비리가 싹튼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뿌리부터 살리는 것이 운동의 과제


하승수 변호사는 스스로 ‘시민운동가’ 칭호를 듣기에는 아직도 모자라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사실 시민운동에서 잔뼈가 굵었다.


공인 회계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96년부터 쭉 참여연대에서 활동해 왔고 지난 2월에는 부안 핵폐기장 건립 주민투표관리위원회 사무처장을 맡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을 그만두고 시민자치정책센터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공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회계감사 자리만 해도 20여 개. 지난해 4월에는 노동조합과 소액주주 추천으로는 최초로 현대증권의 사외이사를 맡아 화제가 됐다.


그 중에서도 그가 최근 열중하고 있는 것은 지역시민운동 분야다. 중앙집권적 국가의 특성상 시민운동도 중앙에 집중을 하다 보니 결국에는 운동의 주체여야 할 ‘시민’들과의 거리가 멀어졌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최근 들어 시민운동의 고민도 노동운동의 고민과 별로 다르지 않다. 주도하는 사람과 따라오는 사람, 상층과 하층의 의사소통이 단절되고, 자꾸만 거리감이 생기고 있는 것.


“일상적 활동보다는 제도개혁이나 이슈파이팅에만 너무 집중해온 것이 오히려 시민들의 참여를 제한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시민운동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사람으로서 최근의 개인주의화나 물질화 경향도 시민운동이 반성할 부분이 많다고 봐요.”


그래서 그는 조직에 무관심한 구성원들의 ‘개인주의’를 탓할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삶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의식이나 문화, 행동양식을 바꾸려면 결국 사람들의 삶에 밀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조언이다.

 

시민운동가로서의 꿈


지역시민운동을 하면서 ‘위로부터의 개혁’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지역단위의 작은 움직임이 모여 전체를 바꾸는 ‘아래로부터의 네트워크’ 형성을 목표이자 꿈으로 삼고 있다.
그러면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같은 곳을 바라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가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예를 들어서 울산을 보면 현대자동차 노동자는 현대자동차노조의 조합원이기도 하지만 울산의 지역 주민이기도 하잖아요. 요즘 노동조합 활동이 너무 경제적 이익에만 빠져 있다는 지적이 높은데, 노동자들이 지역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지역사회에 참여한다면 노동운동도 한 단계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맡고 있는 직책, 참여하고 있는 영역이 많아도 여전히 시민운동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 속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다는 하승수 변호사. 노동운동 혁신을 위한 걸음에 과감히 손을 내민 젊은 시민운동가의 눈빛이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