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뭐라고 불러줄까, 빵꾸똥꾸들아
그러면 뭐라고 불러줄까, 빵꾸똥꾸들아
  • 성지은 기자
  • 승인 2009.12.2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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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꾸똥꾸를 싫어하는 빵꾸똥꾸들

 

▲ 성지은 jesung@laborplus.co.kr

지난 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해리가 극중 어른들에게 폭력적인언행을 사용하는 내용이 필요 이상으로 장기간 반복적으로 묘사돼 '방송법 제100조 1항'을 위반했다며 권고조치했다.

점잖은 어르신들께서는 그 경박스럽고 폭력적인 단어가 공중파 TV프로그램에서 방영되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셨을 게다. 내가 만든 단어는 아니지만 내가 다 민망스럽고 송구한 마음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당연지사, 내 그럴 줄 알았다.

보고 자란 게 있어 그렇다

빵꾸똥꾸는 수시로 방귀를 뀌어대는 할아버지 이순재 옹의 별명인 ‘방구똥꼬’에서 왔다. 참 경박하다.

어린 시절 나는 한시도 몸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 말썽쟁이였는데 일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몸을 치대면 우리 어머니는 내 코를 꼬집으며 “이 똥꼬같은 녀석”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에게 ‘똥꼬’라는 단어는 짜증이 잔뜩 나 있는 상태에서도 항상 빵빵 터지는 100%짜리 유머로 활약했다. 그닥, 고매하지 못했던 정신세계를 갖고 태어난 내 탓이다.

독일의 아동문학가 베르너 홀츠바르트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라는 그림책이 있다. 내용인즉슨, 두더지 한 마리가 자기 머리에 똥 싼 놈을 찾아다니는 건데 연극과 뮤지컬로 공연되기도 했다. 어라, 고매하지 못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또 있는 모양이다. ‘똥’에 빵빵 터지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닌 걸 보니.

어르신들에게 하나 더 고하자면 EBS라는 교육방송이 있는데 10년 째 <방귀대장 뿡뿡이>라는 점잖지 못한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민망스럽게도 생리현상 따위로 아이들에게 ‘교육’이란 걸 하겠다니. 이 역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고 본다.

내, 생각하기에 이런 방구똥을 보고 자라서 본 데 없이 빵꾸똥꾸같은 표현이 이 사회에 성행하는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다. YTN의 한 앵커가 빵꾸똥꾸의 방통위 권고 조치 소식을 전하다가 '빵 터져서' 방송사고를 냈다는데, 빵꾸똥꾸가 점잖은 뉴스 앵커까지 빵빵 터지게 하는, 무서운 마력이 있다니. 이래서 조기교육이 중요하다.

순수한 어르신, 간과한 게 있다

설마, 고매하고 점잖은 어르신들께서 빵꾸똥꾸같은 단어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의도는 없겠지만 빵꾸똥꾸는 지금 검색어 1위에 등극하며 빵꾸똥꾸를 모르던 사람들도 빵꾸똥꾸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권고 조치가 빵꾸똥꾸 같다느니, 막장 드라마가 더 빵꾸똥꾸 같다느니 하며 이야기를 퍼 나르고 있다.

커 나가는 꿈나무들이 올바르게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의 입장에서 참 걱정스러운 일이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김병욱 PD는 이 권고조치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기준을 이해할 수 없다며 빵꾸똥꾸를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불륜녀와의 결혼을 위해 아내를 죽이는 얘기도 버젓이 공중파를 타는 이 마당에 ‘빵꾸똥꾸’가 무슨 문제냐는 건데, 은재는 점은 찍었지만 빵꾸똥꾸는 안했다.

불륜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방귀 뀌는 것이 나온 적이 있던가. 우아한 정신세계를 잘 이해 못하시나본데, 이 양반, 어렸을 때 방귀대장 뿡뿡이 같은 방귀똥 프로그램을 너무 감명 깊게 봤나보다. 참 걱정이다.

‘방귀항문’이라던지 방구동구라던지 뭐, 빵꾸똥꾸를 이야기하는 많은 네티즌들이 여러 가지 대체할 수 있는 단어들을 많이 제시해 준 것 같은데 너무 꽉 막힌 사고방식 아닌가.

마지막으로 감히 한 마디 걱정을 전하자면, 우아하고 점잖다는 거, 이런 거 말고 다른 걸로 보여주시길 바란다. 순수하신 어르신들 덕에 다들 빵꾸똥꾸, 빵꾸똥꾸 하고 있으니 시끄러워서 그런다. 참, 빵꾸똥꾸를 싫어하는 빵꾸똥꾸같은 사람들이 빵꾸똥꾸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너그럽게 넘어가시길.

 

  성지은의 <뚜벅또박>
  뚜벅뚜벅, 걸어가듯 글을 쓰고. 또박또박, 내가 마주한 시간을 되짚으며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