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행정예고 고시, 무엇이 문제인가
노동부 행정예고 고시, 무엇이 문제인가
  • 권석정 기자
  • 승인 2009.12.2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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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논의 중인데 행정예고?…'월권적 행위' 지적
신규노조, 산별노조 교섭권 원천적 봉쇄…노동계 강하게 반발

노동부가 28일,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대한 고시와 이에 따른 부당노동행위 업무처리 규정 예규를 행정 예고하자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부는 이날 “오는 31일까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개정이 되지 않을 시 노동부장관이 그 방법 및 절차 사항을 강구할 의무가 있다는 조항에 따라 ‘노동조합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등에 관한 규정안’을 공고한다”고 밝혔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규정의 문제점

이번 행정 예고안에 따르면 교섭창구 단일화에 해당하는 노동조합은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2개 이상의 병존하는 노조로 여기에는 초기업 단위인 산별노조도 포함된다.

노조가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할 시 사용자는 공고를 통해 교섭창구 단일화를 노조에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 노조는 공고일로부터 10일 이내에 자율적으로 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

만일 노사자율로 교섭대표노조를 정하지 못하게 되면 자동으로 모든 노조 조합원 수의 과반수를 점하고 있는 노조가 공동교섭노조가 된다. 한편 사업장에 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 제 노조가 공동교섭대표단을 구성하고 사용자와 교섭해야 한다.

이러한 행정 예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복수노조 허용 시 창구단일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항은 현재 국회 환노위에서 여야 간에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사항으로 입법부가 법안 심의를 진행하고 있는 와중에 행정부가 그에 따른 행정예고를 고시한다는 것은 국회의 권위를 무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교섭창구 단일화 대상에 초기업단위 노조(산별노조)가 포함되는 것도 문제다. 산별교섭은 사업장 단위가 초기업단위로 진행되고, 사업장 단위에서는 보충교섭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업장 단위에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한 조항은 산별교섭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겠다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과 사용자측은 교섭단위를 초기업노조까지 허용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과 민주노총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허용하려면 산별교섭이 창구단일화와 별도로 분리돼 법으로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10일 간의 자율적인 창구단일화 기간 또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복수노조가 병존한다는 것은 이미 얽히고설킨 노노관계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를 단지 10일 이내에 단일화하라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주장이다.

부당노동행위 업무처리 규정의 문제점

‘노동조합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등에 관한 규정안’에 따르면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 신규노조가 설립되는 경우, 사용자는 기존 노조와의 단협 유효기간 동안 신규노조의 교섭요구를 거부・해태해도 부당노동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규정했다.

또한 기존 노조와의 단협 유효기간 만료시점에 신규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경우 사용자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요구하며 창구 단일화 전까지 노조의 단체교섭을 거부할 수 있다.

여기에 사용자는 기존 단협 만료시점이 도래할 경우 창구 단일화 대신 개별노조에 대해 순차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데, 사용자가 기존 노조와 교섭 시 교섭이 종료될 때까지 신규노조의 교섭을 거부해도 부당노동행위로 보지 않는다.

이는 무노조 사업장에서 2개 이상의 신규노조가 설립될 경우에도 해당된다. 예고안대로라면 신규노조는 사용자가 맘만 먹으면 교섭 테이블에 앉지도 못하게 할 수도 있게 된다.

신규노조가 설립이 임박할 상황에 기존 노조와 단협을 체결하면 단협 기간동안 신규 노조는 교섭의 ‘교’자도 꺼내지 못하고, 기존 단협기간 만료가 됐어도 사용자가 창구단일화를 요구하거나 기존 노조와의 교섭을 이유로 신규노조와의 교섭을 해태하거나 거부해도 이젠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여기에 더욱 심각한 것은 유노조 사업장이나 무노조 사업장이나 사용자 측의 지지를 받고 있는 노조가 있다면 이를 반대하는 노조에 대해서는 교섭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순차교섭을 요구하고는 사용자 측에 유리한 노조와 교섭기간을 최대한 연장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용자 측에 유리한 노조를 설득해 창구단일화를 방해하거나 과반수 노조가 아닐 경우에도 조합원 지위에 대한 소송 등을 진행하면서 시간 끌기를 하면 된다.

이틀 주고 의견 수렴?

더 황당한 것은 노동부가 행정예고를 하면서 의견 개진 시한을 오는 30일로 정했다는 것이다. 단지 이틀을 주고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부가 행정예고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의 충분한 의견 개진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노동부는 내년 1월 1일부로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이 시행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국회에서 노조법 개정안 논의가 있었기 때문에 참았다가 이제야 행정예고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철저한 준비가 없었던 것에 대한 변명으로는 구차하기까지 하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노동부의 이날 행정예고는 ‘정치적인 압박 수단’ 정도로 치부되는 것이다.

한편 이날 발표한 노동부의 행정예고에 대해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노총 이수봉 대변인은 <참여와혁신>과의 통화에서 “이번 행정예고는 명백한 월권행위인 만큼 위헌 소송을 통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 화학노동조합연맹(위원장 한광호) 심재호 정책국장은 “논평할 가치도 없다”며 “복수노조 법 시행에 대해 노동부에서 지침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원칙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법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어 합리적인 차별은 정당하다는 예시로 문건에 나온 ‘규모가 큰 노조에 한해 조합사무실을 제공’한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노조의 권리는 조합원 수로 정할 사항이 아니”라며 “조합의 규모를 기준으로 조합을 차별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