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금융자본을 키워야 한다
토종 금융자본을 키워야 한다
  • 승인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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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들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운전자금 부족액은 지난 1/4분기 15조7000억원으로 지난 2000년 1/4분기 16조2000억원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은행들이 주택, 상가 등 비교적 안정적인 담보를 제공하는 가계와 서비스업에 대한 대출은 크게 늘린 반면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근거로 돈을 빌리는 제조업체에 대한 대출은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기관 총 대출금 중 기업에 대한 시설 자금 대출의 비중이 외환위기 이전 15% 수준에서 2003년에는 10% 밑으로까지 떨어졌다. 이들이 단기 이익을 쫓는 가운데 국내 기업의 설비 투자는 외환위기 이전의 60%에 머물고 있다. 결국 국민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토종 금융자본을 육성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만나면

외국자본을 견제하고 기업과 금융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내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외국 자본이 국내은행의 경영권을 인수한 경우 기업대출 업무를 크게 줄이는 등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은행의 경우 뉴브리지캐피탈이 1999년 경영권을 인수한 후 기업대출금 비중이 인수 당시 68%에서 2003년말 30%로 대폭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대기업을 중심으로 현금보유비중이 40조원을 넘는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위원은 “외국자본을 견제하고 기업과 금융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내자본의 은행지분 소유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근 사모투자전문회사(PEF) 활성화 방안으로 산업자본이 10% 미만의 지분비율로 참여할 때 은행 인수를 허용하겠다는 움직임도 산업자본 참여를 통한 토종자본 육성의 한 방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사모펀드란 소수의 특정인을 대상으로 주식이나 채권 등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일반펀드가 갖는 동일 종목 투자한도 등이 없어 기업인수합병에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산업 자본이 금융산업까지 장악하면 독점이 심화되고 시장이 왜곡되어 경제 안정성이 붕괴될 수 있다며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다. 특히 오랜 기간 정경유착을 통해 성장해 오면서 지배권을 장악한 대기업에게 또 다시 금융지배권을 줬을 경우 재벌개혁, 금융개혁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삼성카드, LG카드 부실 문제는 대기업의 금융기관 경영능력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산업과 금융 사이의 벽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지적한다.
일부에서는 소유구조에 집착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는 제기도 있다. 대형 금융사가 거의 외국계 자본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우리금융이 우리나라 자본에 넘어간다 해도 단기 이익에 집착하는 주주자본주의 성격을 벗어날 수 있겠냐는 의문이다.


금융경제연구소 하익준 연구원은 “소유권 문제가 아닌 노동조합의 경영참가와 감시를 통한 투명경영이 강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 많은 연기금, 공공성 위한 활용 논란

또 다른 대안으로 제기되는 것이 올해 국가 예산과 맞먹는 117조원의 연기금 활용이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기금관리기본법을 개정, 각종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전면 허용하기로 했다. 국내 증시가 외풍에 시달리는 건 안정적인 장기투자를 하는 국내 자본이 없어 국내 수요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것.


외국인 중심의 시장주도에 따른 위험과 단기투기성 위험을 낮추기 위해 연기금의 기관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자금은 현재 연기금밖에 없기 때문에 이같은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각종 연기금은 국민들의 노후보장을 위한 마지막 보루로 위험도가 큰 주식시장에 맡기는 것은 재정안정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내 증시가 외국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상황에서 연기금을 투입하는 것은 도리어 투기 대상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증시활성화, 경제살리기는 고수익을 통한 재원확충이라는 본래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어질 수 있는 부차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유구조 다양화 통한 국내 금융 보호

소유구조의 다양화를 통해 금융산업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 기업의 소유를 30% 이하로 제한함으로써 외국자본을 경계하고 국내자본도 혼자서 금융업을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유럽의 경우처럼 은행간 상호출자를 통한 지배권 확보방안도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독일의 알리안츠생명과 도이치방크는 상호 지분을 7~8% 소유하면서 상호간 최대 주주로 등록되어 있다. 유럽은 이러한 상호지분 보유가 보편화되어 있다.

 

금융의 공공성이 선행돼야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금융의 사회적 공공성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금융의 공익성은 일반 기업과는 달라 국내 산업의 발전과 맥을 같이한다는 차원의 공공성이다. 은행의 수익이 다른 산업의 발전과 이에 따른 수익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익성을 유지하면서도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실제로 외국 자본의 금융권 장악이 늘어나면서 중소기업은 신용평가에서 조금만 점수가 낮아도 지원이 끊긴다”고 지적했다. 5년, 10년 장기적 발전 계획 속에서 개선해 갈 수 있는데도 그럴 기회조차도 박탈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산업이 금융자본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아 노동자들의 일자리 불안과 노동조건 저하로 귀결된다.
금융권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례로는 미국의 지역재투자법(CRA)을 꼽을 수 있다. 지역재투자법은 금융기관이 지역에서 끌어 모은 자금의 일정부분을 지역에 재투자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인천대 이찬근 교수는 “이러한 국가 개입은 관치금융이 아니다. 중소기업의 의무대출 비율은 기업에서도 요구하는 것으로 정부가 지분을 가지면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향후 금융산업은 국가 산업발전 방향과 함께 고민돼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