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망대] 소버린은 과연 무엇을 남겼나?
[경제 전망대] 소버린은 과연 무엇을 남겼나?
  • 장화식_ 투기자본감시센터 운영위원
  • 승인 2005.08.1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조원 벌어들이고 한국 떠나는 소버린
이 지경 되도록 공정위·시민단체는 뭐 했나
투기자본 규제 가능하도록 법·제도 정비해야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운영위원
소버린이 7월 18일 SK(주) 주식 14.8%(1,902만주)를 매각하여 1조원의 막대한 차익을 거뒀다. 소버린이  SK(주) 주식을 최초로 매집하기 시작한 것이 2003년 3월이니 불과 2년 4개월 만에 경영권 분쟁이라는 선진금융기법(?)을 활용하여 소위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소버린은 1768억원을 투자하여 주식매각 차익 9300억원과 환차익까지 포함하여 약 1조원의 수익을 올렸다.

 

때맞춰 뉴질랜드 경제전문 주간지 내셔널 비지니스 리뷰 최신호에서 소버린의 실질적 주인이라는 챈들러 형제(크리스토퍼 챈들러, 리처드 챈들러) 가 뉴질랜드 최고 갑부의 자리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놀라운 것은 이들 형제가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잡지가 매년 발표하는 갑부명단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인생의 로또’를 한국이 제공한 것이다.


이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참으로 다양하다. 외국 투기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고, 정당하고 합법적인 투자에 대해 배 아파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기회에 외국투자가처럼 선진기법을 배워야 한다는 학습 준비론부터, 우리의 재벌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개조론도 들린다. 소버린 사태의 진실은 무엇이고 무엇을 남겼나?

 

누가 소버린을 아는가?


우리가 소버린 사태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소버린의 실체를 알아야 할 것이다. 조세회피지역 모나코에 근거를 두고 있는 사모펀드 소버린의 공식명칭은 소버린 자산운용이다. 자산운용이라고 해서 금융기관이 아니라 뉴질랜드 출신의 크리스토퍼 챈들러, 리처드 챈들러 형제의 돈을 굴리는 투자회사이다. 그리고 SK(주) 주식을 매집한 주체는 또 다른 조세피난처인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한 ‘크레스트 시큐러티즈’라는 페이퍼컴퍼니이다. 이것이 공식적인 소버린의 정체이다.


그러나 진실로 소버린이 어떤 곳인지 아무도 모른다. 2004년 3월 소버린 자산운용에 의해  SK(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된 김진만 전 한빛은행(현 우리은행) 행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저도 소버린을 잘 모릅니다’라고 답변 했다. SK(주)와 경영권 대립을 하던 작년 3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버린의 소유주인 챈들러 형제는 비밀스러운 형제’이며 ‘투자기업에는 투명성을 요구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베일에 싸여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작년에 리처드 챈들러를 모나코에서 직접 만난 참여연대의 장하성 교수는 ‘그 동안 수천명의 투자자를 만나 봤지만 도무지 소버린의 정체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소버린의 홈페이지에는 ‘소버린은 단기투자가가 아니며 기업지배구조를 바꾸게 하는 투자를 함으로써 정당하게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나아가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오랜 기간에 걸쳐 해 냈을 일을 불과 1년 만에 이뤄 냈다’고  소개하는 글이 올려져있다. 소버린 자신의 평가가 아니라 놀랍게도 참여연대 장하성 교수의 글이다.

 

소버린의 실제 행동 - 투기자본의 전형


불행히도 소버린은 이러한 참여연대의 소박한 소망을 저버렸다. 소버린은 외환은행을 강탈한 론스타, 제일은행을 팔아서 1조1천억원을 남긴 뉴브릿지 캐피탈, 한미은행을 먹어서 7000억원을 남긴 칼라일 펀드, 유상감자 수법의 대명사 BIH펀드, 삼성물산 주가조작의 헤르메스 펀드, 환투기를 일삼는 조지소로스의 퀀텀펀드와 같은 투기자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소버린의 지금까지 행보를 살펴보면 투기자본의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우선, 2003년4월 최소한 4년 정도의 장기투자라고 공언한 것과는 달리 2년4개월 만에 주식을 처분하였다. 이는 2~3년 만에 투자이익을 실현하는 단기 사모펀드(PEF)의 전형이다. 또한 소버린은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경영 확립’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경영권 분쟁을 일으킴으로써 주가를 상승시켰다.

 

그러나 지분을 매각하면서는 ‘투명성의 개선 혹은 실질적 경영책임성의 제고가 없는 상태’라고 선언하였다. 결국 투명경영은 경영권 분쟁을 위한 명분이었고, 주가조작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5%룰 공시제도가 강화되자, ‘단순투자’로 투자목적을 변경하고 주식을 처분하여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유유히 한국을 떠나갔다.

 

소버린의 투기, 법을 준수한 절묘한 투기인가?


참여연대 김상조 교수는 7월 19일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소버린이 불법을 하거나 사기를 친 것이 아니라 4년 정도의 장기투자를 생각했지만 SK(주)와의 두 차례 주총에서 패배하여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이 없어져 철수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투자자는 목소리를 내서 회사를 바꾸든지, 아니면 회사를 떠나든지 두 가지 전략을 택하는데 소버린은 떠난 것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소버린의 행동은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와서 대박을 터트린 케이스이며, 오히려 그런 기회를 포착 못 한 국내 기관투자가가 반성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소버린은 과연 불법을 하지 않았을까? 


소버린은 외국인이 국내기업 지분의 10% 이상을 취득할 때 반드시 사전 신고해야 한다는 ‘외국인 투자촉진법’을 위반하였다. 그리고 산업자원부가 이를 고발했지만 검찰은 ‘국내법을 몰랐다고 해명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반면 당시 5%규정을 어긴 KCC는 당국에 의해 고발당하고 주식처분명령까지 받았다. 또한 소버린은 2003년 12월 ‘크레스트 시큐러티즈’가 보유하고 있던 SK(주) 지분 14.99%를 5개의 페이퍼컴퍼니에 분산하여 최대한 의결권을 행사하였다.


그 이유는 현행 상법 409조에서 3% 이상의 주주는 감사위원인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초과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버린은 SK(주) 지분을 매입할 때 14.99%를 매입함으로써 공정거래법상의 기업결합심사 규정을 무력화시켰다. 즉, 15% 이상의 지분을 매입하면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를 받아야 하고, 이 경우 자금 출처를 밝혀야 하고, 자신들의 기존투자 내역을 보고하여야 하는데 이를 교묘하게 회피한 것이었다.

 

심지어 2004년 3월 장하성 교수는 ‘모나코에서 챈들러 형제에게 최태원을 몰아내려면 SK(주) 지분을 30%까지 사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소버린은 돈은 충분히 있지만 15% 이상은 보유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이야기 하였다.


이렇게 소버린은 국내법에 정통한데도 검찰은 국내법을 몰랐다는 소버린의 말에 순진하게 속아(?) 넘어갔다. 그 내막은 법망을 피하는 방법도 해명하는 방법도 모두가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맡아서 해 주었던 것이다.

 

소버린의 투기는 환상적 투기인가?


소버린의 본질은 경영권 분쟁을 빌미로 한 주가조작이며, 투기이다. 삼성물산의 주가조작으로 검찰에 고발된 헤르메스와 다른 점은 헤르메스는 불과 몇 개월에 걸쳐 주가조작을 했지만 소버린은 2년4개월에 걸쳐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영권 도전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성공하면 M&A, 실패해도 주가상승이니 이보다 더 좋은 놀이터는 없을 것이다.


또한 국내 기관투자가가 못 한 기회를 활용해서 대박을 얻은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400%의 수익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약이나 밀수, 매춘, 탈세 등 지하거래에서만 가능한 수익률이다.


이것이 자본주의는 아니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공기업 민영화과정에서 발생한 불로소득에 대해 횡재세(windfall tax)를 매기는 실정이다.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투기와 금융투기로 평범한 사람들도 몇 억을 버는 사회현상이 외국투기자본 따라하기와 투기의 일상화를 넘어 시민단체 지도자들의 가치관의 왜곡까지 불러오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투기자본이 한국경제에 기여했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은 7월 18일 제주도에서 ‘(소버린에 대해서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기업의 투명경영이나 소유구조가 불안할 경우 언제라도 당할 수 있는 교훈을 안겨주었으므로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재벌 경영진에게는 그렇다고 치자. 그럼 사회적 부를 생산하기 위해 땀흘려 일한 노동자와 서민들은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 800만명의 비정규직과 저임금, 70만원의 최저임금, 360만의 신용불량자, 청년실업, 만성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투기자본에게 이것을 감사해야 하는가?


투기자본이 한국경제에 기여했다면 일본 제국주의도 그 만큼은 기여했을 것이다. 철도를 놓고, 공장을 짓고, 지하자원을 개발하고, 토지측량을 하여 근대화를 시켰는가?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몰아 전쟁의 참담함을 느끼게 한 것인가? 힘이 없다면 식민지가 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주었기에 한국은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투기자본이 한국 경제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일제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헛소리와 다름 아니다.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와 통제 없으면 잔치는 계속될 것


투기자본의 놀이터에 대한 토양은 한국 금융당국의 법적, 제도적 미비와 재벌체제 그 자체가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변호사와 검찰 등 법조계와 회계사 등 한국의 엘리트들이 길잡이를 해 주었다. 그래서 소버린의 대박을 참여연대나 공정위가 제공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적어도 정체불명의 외국 투기자본을 활용해서 재벌개혁을 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인지 이번 사태는 보여 주었던 것이다.


또한 주식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가 없다면 부동산거래에서 복덕방 비용만 내는 격과 무엇이 다른가? 소버린 사태는 투기자본의 폐해, 재벌의 문제, 주주 자본주의의 모순, 규제 완화와 시장만능주의가 부른 재앙인 것이다. 투기자본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는다면, 금융당국과 국민들이 이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한다면, 또 노동자와 시민단체의 힘으로 투기자본을 통제하고 재벌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외국 투기자본의 잔치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