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겨울이 오고서야 그들은 하늘로 돌아갔다
다시 겨울이 오고서야 그들은 하늘로 돌아갔다
  • 김관모 기자
  • 승인 2010.01.10 01:58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용산 참사’ 1년, 눈꽃 속 열린 범국민장
“우리를 기억 못하겠지만, 마지막 길이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 9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용산참사'가 발생한지 1여 년만에 철거민 희생자들의 범국민장 영결식이 열렸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1년 만에 열린 장례식이었다. 9일 오전 8시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입관을 마친 용산 참사 철거민 희생자 5명(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이 드디어 차가운 시신안치실에서 나와 세상과 진정 작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슬프고 죄송스럽다” 

낮 12시, 3천여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용산 참사 희생자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 모였다. 시민들은 현장에서 나눠주는 근조 리본을 가슴에 달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눈이 채 녹지 않아 길도 미끄럽고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두 시간 넘게 진행된 영결식을 지켜보며 애도를 표했다.

대학강사를 하고 있다는 박종성(38, 남) 씨는 “법과 돈 많은 사람들이 사람 생명 위에 군림하는 세상에 살아가는 것 같다”며 “착잡하고 슬프고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라고 말했다.

12살 아들과 함께 온 배 모씨(41, 여)도 “용산참사가 벌어지는 것을 보고도 한 번도 이런 집회에 참여한 적이 없어 부끄러웠다”며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자 아이와 함께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학생이라는 최 모씨(22, 여)와 김 모씨(21, 남)도 "언론을 통해 이 일을 접하고 희생자에 대해 무관심한 정부 태도와 사회 불합리에 분개하며 이 자리에 오게 됐다"고 토로했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이날 참석한 많은 수의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 이상림 씨의 부인 전재숙 씨는 “1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잊지 않고 마지막을 함께 해준 것에 감사하다”며 “철거민이 또다시 망루에 오르는 일이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마지막 순서로 이어진 시민들의 분향 및 헌화가 끝나자 유가족과 장례위원들 및 시민들은 노제를 치르기 위해 운구차를 따라 서울 용산구 남일당까지 행진했다. 출발과 함께 내리기 시작한 눈을 맞으며 겨우 2개의 차선만을 경찰에게 허락받은 길고 느린 행렬이었다.

상여 소리와 함께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라는 큰 위패를 십여 명의 상여꾼들이 짊어지고 선두에 섰다. 그 뒤를 희생자들의 영정 그림과 운구차가 뒤따르고, 희생자 5명을 표현한 그림을 짊어진 상여꾼들, 수십 개의 용산 만장, 시민행렬이 순서대로 뒤를 이었다.

▲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들의 범국민장 영결식이 진행되는 도중 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차마 화장할 수 없었다”

1년간 울었으면 이젠 흘릴 눈물이 더 이상 없을 것도 같은데 노제가 진행되는 동안 유가족들은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고 이성수 씨의 아내 권명숙 씨는 “이미 불길로 돌아가신 분들을 도저히 화장을 해 모실 수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또 권명숙 씨는 “불길에 타서 어린 아이처럼 변해버린 남편 시체를 보며 아들이 ‘왜 아빠가 이렇게 작냐’고 하더라”며 “이제 장례가 끝나면 아들은 다시 차가운 감방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흐느껴 주변을 숙연케 했다. 고 이성수 씨의 아들 이충연 씨(용산4구역철거대책위원장)는 구속수감 중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구속 정지된 상태였다.

노제는 한 시간 가량 이어졌다. 송경동 시인의 조시 낭송과 문정현 신부의 조사가 이어졌고 춤패 '출'의 진혼굿이 열렸다. 마지막 순서로 유가족 전원이 무대에 올라 “지금까지 유가족들을 도와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보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열심히 살아가면서 반드시 갚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제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차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유가족을 배웅했고 남일당 참사 건물에는 시민들의 헌화가 밤새 이어졌다.

▲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이 노제를 위해 서울 용산 남일당 참사 현장 앞으로 들어서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절망과 희망, 반쪽짜리 해결, 영원한 숙제

일부 사람들은 이번 장례식을 못내 아쉬워하기도 했다. 정운찬 총리가 사과하고 보상도 받는다지만 검찰이 수사기록 3000페이지를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태로 재판이 진행됐다. 따라서 여전히 희생자들과 용산참사 당시 관계자들이 구속되거나 수배된 현 상황은 결국 ‘반쪽짜리’ 해결일 뿐이라는 것이다.

유가족들도 “이제 이곳 남일당은 부자들의 천국이 될 것”이라며 “우리같은 사람들이 살았는지 기억도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래도 유가족들은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절망과 희망을 함께 이야기한 것이며 앞으로 남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풀어야 할 숙제를 남긴 셈이다.

용산참사는 반미 반정부 테러였다?
9일 열린 용산참사 영결식에서 잠시 불미스런 일이 벌어졌다. 오후 1시경 서울역 광장 근처에서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지부'와 '대한어버이회' 회원들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무리가 이번 용산참사 국민장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이번 국민장은 민간인 희생을 정치선동 기회로 악용하는 것”이라며 “희생자 중 3명이 좌파적 이념과 폭력투쟁으로 악명높은 전국철거민연합소속이기 때문에 좌파적 정치투쟁 성격이 높다”고 강변했다.

또한 “새총으로 화염병을 쏘고, 시너를 부어댄 무차별 폭력 등은 사태를 극단적으로 몰고 이명박 정부 개각과 오바마 대통령 취임 하루 전에 기습점거가 일어나기도 했다”며 “순수한 생존권투쟁이 아닌 반정부 반미투쟁으로 변질된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들과 참가시민들 사이에 고성과 욕지기가 오가고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결식에 참석한 한 시민은 “저기에 모인 노인들은 하루 수당을 받고 모인 사람들”이라며 “돈으로 영혼을 판 파렴치한”들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저항이 거세자 어버이회회원들과 한미우호증진협의회 관계자들이 일찍 철수해 더 이상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