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드라마에 ‘달동네’가 안 나올까
왜 드라마에 ‘달동네’가 안 나올까
  • 이현우_ TV 평론가
  • 승인 200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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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도 양극화 심화…스타 편중 극복해야

한 때 한국 드라마의 주무대는 ‘달동네’였다. 지금은 영화계를 쥐락펴락하는 스타가 된 한석규, 최민식, 백윤식 등이 주연한 ‘서울의 달’도 달동네의 삶을 그려냈고, 똑순이 김민희의 앙증맞은 연기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드라마는 제목 자체가 ‘달동네’였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달동네는 드라마에서 보이지 않는다. 올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종영한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무대는 대형 레스토랑이고 남자 주인공은 재벌가의 아들이다. 이에 뒤질세라 새롭게 시작하는 ‘루루공주’는 아예 대놓고 재벌의 얘기를 다룬다. 여자 주인공은 재벌가의 손녀딸이고 남자 주인공 역시 만만찮은 재력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지난해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파리의 연인’ 또한 마찬가지다. 남자 주인공이 자동차 회사 경영자였다. 적어도 주인공 중 한쪽은 재벌인 드라마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PPL의 연인


그렇다면 왜 달동네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재벌이 대체하고 있을까. 비현실적이더라도 시청자들의 대리만족이 가능하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답은 이제는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닌 PPL에 있다. PPL(Product placement)은 간접 광고를 의미한다. 드라마에 제품이나 장소를 등장시켜 광고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PPL의 연인’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드라마 ‘파리의연인’일 것이다. 남자 주인공 기주(박신양)는 자동차 회사 GD의 사장이다. 이 드라마를 후원했던 GM대우 자동차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처음에는 타이어 회사, 건설 회사 등의 사장으로 기획되다가 협찬사 때문에 자동차 회사로 바뀌었다. 여자 주인공 태영(김정은)이 일하는 극장의 이름은 협찬사 CGV와 비슷한 CSV다. 기주의 누나 기혜(정애리)는 재벌가의 외동딸로 나옴에도 불구하고 옷가게 주인이었다. 이 역시 협찬사의 요구 때문이다. 물론 등장인물들이 주고 받는 선물들도 대부분 협찬사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드라마 ‘신입사원’의 주인공 강호(에릭)는 상금 100만원이 걸린 뷰티샵 이름 공모에 도전한다. 무려 3분간이나 방송된 이 장면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된 이름은 ‘해피 크레딧’이다. 여자 주인공 미옥역의 한가인이 광고모델인 소망화장품의 ‘뷰티 크레딧’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드라마에서 피자를 즐겨 먹거나, 휴대전화의 기능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 들어가는 이유도 다 PPL과 관련이 있다.


전지현이 출연했던 영화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는 PPL의 결정판이었다. 영화 속에는 CF여왕 자리를 지키던 전지현이 광고하던 제품들이 무더기로 등장한다. ‘엘라스틴’으로 머리를 감고, ‘지오다노’를 입고는 ‘비요뜨’ 요구르트를 먹는 식이다.


정준호, 김정은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 ‘루루공주’는 웅진코웨이와 5억원에 PPL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웅진코웨이에서 생산하는 비데의 이름이 ‘룰루’인 것과 이 드라마의 제목이 ‘루루공주’인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주연 배우 출연료가 제작비 절반?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왜 달동네가 사라진 걸까. 대답은 간단하다. 가난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에서는 광고에 등장시킬 수 있는 제품이 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려한 옷차림에 고급 자동차, 온갖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재벌쯤 되어야 광고효과를 노릴 수 있다. 

 
드라마들이 앞다퉈서 PPL에 열을 올리는 것은 수익구조와 관련이 깊다. 최근 ‘스타 권력화’ 논쟁 중에 드라마 제작비 구조가 공개된 바 있다.


주말 연속극의 경우 지난 2000년에 비해 올해 총 제작비가 77% 늘었지만 주연 배우 2명의 출연료는 261%가 올랐다. 일부 드라마의 경우 주연 배우의 출연료가 전체 제작비의 절반에 가까운 경우도 생긴다. 결과적으로 제작진의 인건비는 소폭 느는데 그치고, 단역 배우들은 오히려 32%나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주말 드라마 기준으로 2000년 남녀 주연 2명의 회당 출연료는 360만원이었으나 2002년 510만원으로 올랐고 올해에는 1300만원이었다. 반면 단역 등 하위 10인 평균 출연료는 2000년 21만원, 2002년 22만6000원, 2005년 14만3000원으로 나타났다.


요즘은 방송국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드라마보다 외주제작사에서 만들어 방송사에 납품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방송사에서 제작사에 지불하는 금액은 한정돼 있고 주연 배우들의 출연료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단역 배우들의 출연료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타산을 맞출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PPL을 통한 수익구조를 만들려고 하게 된다.


정확한 금액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봄날’에 출연한 고현정,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 김정은 등은 회당 2000만원의 출연료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태왕사신기’에 출연하는 배용준은 적게는 3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설까지 나오고 있다. 드라마로 인기를 끈 한 스타 가수는 첫 영화 출연에 7억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수익구조 다변화 필요


얼마 전 ‘서동요’를 제작중인 이병훈PD는 출연료 때문에 주인공 섭외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허준’ ‘대장금’ 등 이른바 ‘국민 드라마’를 만든 이병훈PD가 어려움을 겪을 정도라면 ‘몸값 인플레’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익구조의 다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최근 거센 한류열풍으로 다양한 수익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 시청률이 크게 높지 않더라도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의 경우 매니아층의 형성으로 DVD 판매 등을 통한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


‘스타’들을 내세운 대형 매니지먼트사들도 터무니없이 높은 출연료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사후 수익 분배 등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 조연이나 단역, 제작 스탭이 없는 드라마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청자들도 ‘사람 냄새 나는’ 드라마를 볼 권리가 있다. 발음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혀짧은 소리를 내고, 연기를 하는 건지 학예회에서 재롱잔치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스타’들의 ‘광고’는 이제 지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