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과 ‘외식’의 덫에 빠진 아빠, 당신은 유죄
‘선물’과 ‘외식’의 덫에 빠진 아빠, 당신은 유죄
  • 송종대_ 놀이전문가
  • 승인 200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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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빠’ 환상은 그만,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보자

몇년 전, 모 방송국 기자가 ‘아이들 놀이’에 관한 취재를 하러 왔다. 놀이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짧게 나눈 후 기자는 나에게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줄 구체적 프로그램을 제시해 달라고 했다.


필자는 “아이들이 함께 있으면 프로그램이 생긴다”고 말했지만 그 기자는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정말 중요한 문제의 답을 너무 쉽게 이야기 할 수 없어 끝내 대안을 제시하지 못 했었다.


요리전문가의 요리책이 과거보다 더 다양해지고 더 많이 팔리고는 있지만 이러한 현상이 음식문화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어머니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온 손맛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사회적 현상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놀이’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요구도 행복한 삶을 위한 또 하나의 ‘필요조건’이라기 보단 우리 스스로 놀 수 있었던 ‘놀이자발성’의 상실에 의해 나타나는 사회적 증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즐거움을 전제하는 가벼운 놀이를 이야기하면서 머리 복잡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는 이유는 두통을 해결해 줄 진통약이 아니라 두통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없애가는 최소한의 원칙과 약속의 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9살인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점점 다가오는 ‘아버지’라는 중압감과 두려움에 ‘나는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나와 아버지와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아버지와 손을 잡고 어디를 가 본 추억이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자리가 불편했다.’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서운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하며 그 구체적 목표를 3가지 정했다. 하나는 퇴근을 했을 때 인사만 하고 각자 방으로 가는 부담스러운 아버지가 되지 않기. 또 하나는 아이들 기억 속에 단 한 번이라도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 준 아버지가 되기. 마지막은 서로 부담 없이 안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


나와의 약속과 원칙을 잊어버리지 않고 살아 온 9년, 비록 ‘좋은 아버지’는 못 되었지만 ‘나쁜 아버지’는 아닌 것 같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아버지 되기’가 아니라 ‘나쁜 아버지 되지 않기’다.


지금 우리가 짓고 있는 가장 큰 죄는 돈으로 산 ‘선물’과 돈으로 해결 한 ‘외식’으로 우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착각의 죄’이다. 나쁜 아버지로서의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좋은 아버지의 환상을 좇아가는 어리석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두통의 증상을 해결해 줄 진통약이 아니라 두통의 원인을 찾아보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두통의 원인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습관적으로 약을 찾는 중독증상의 위험을 인식하는 최소한의 자극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


‘시작’의 싹을 틔울 씨앗을 만드는 일,  그 초기의 두통을 인내한 내성을 만들지 못할 때, 우린 약사의 처방만을 기다리는 허약한 아버지로 아이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