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대정부 투쟁 나선 한국노총, 부상할 듯
대통령의 ‘파워’는 노사관계 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참여와혁신>이 창간 1주년을 맞아 노·사·정·학의 노사관계 전문가 87명을 대상으로 한국 노사관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개인이나 집단을 꼽아달라고 주문한 결과 노무현 대통령이 42명의 지명을 받아 노사관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모두 36명이 지목했고, 그 뒤를 바로 이어 민주노총이라는 대답이 35명이었다. 4위는 김대환 노동부 장관(25), 5위는 언론(21), 6위는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19), 7위는 한국노총(15), 8위는 경총(10), 9위는 여론(9), 10위는 노동부(6)의 순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발언이 정책에 반영되기 때문
대통령이 노사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경우에는 대부분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이 가지는 전반의 영향력을 그 근거로 들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실제로는 노정관계의 성격이 강하므로” “대통령의 노사관계에 대한 발언들이 바로 노동정책에 반영되기 때문” “노동정책의 결정권자이므로” 등의 의견이 제시됐다.
따라서 하반기 비정규직 법안, 노사관계 로드맵 등을 둘러싼 노사·노정관계는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상당히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대기업 노동조합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출한 바 있다.
또 지난 6월 24일 노사협력 유공자 초청 오찬에서는 “옛날에는 노동자들이 제 도움을 필요로 했으나, 지금은 대통령 타도, 정권 타도를 공공연하게 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많이 커버려, 도와줄래야 도와줄 방법이 없게 됐다” “타협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투쟁의 역량을 보유하는 것이지, 밤낮없이 밑도 끝도 없이 싸움만 하고 끝장 보자는 것이 투쟁은 아니다” 등의 발언으로 노동운동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향후 노사관계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대환 장관 4위, 언론 5위 ‘눈길’
2, 3위는 이수호 위원장과 민주노총이 나란히 선정됐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한국사회 노사관계를 좌우하는 것이 민주노총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재계의 응답자 전원이 노사관계 영향력 항목에서 민주노총(10)이나 이수호 위원장(7)을 꼽았다는 점이다. “개별 기업 노조 활동에 영향력이 크기 때문” “파워 있는 집단으로 정치세력화까지 이뤘으므로” “파업, 분쟁이 출발하는 곳” 등의 이유를 들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대답도 있었다.
이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이수호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정책과 방향에 대한 이해와 기대가 집약적으로 나타났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강력한 사회적 대화 의지를 가진 집행부와 그에 맞서는 반대파 간의 갈등이 상존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총과 이수호 위원장의 향후 행보는 노사관계의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4위 등극은 다소 의외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중심의 사회 분위기로 해당 부처 장관은 한 발짝 물러난 것으로 인식돼 왔던 것에 비추어 볼 때 상당한 약진인 셈이다. 이같은 결과는 김대환 장관이 노동계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비정규직 법안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등 노사관계의 전면에 나섰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운 시각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어가고 있다”(재계 응답자) “너무 막 나간다”(노동계 응답자)는 극단적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는 김대환 장관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주목된다.
향후 ‘여론전’ 주요 변수 될 듯
언론과 여론이 각각 5위와 9위에 오른 것도 눈에 띈다. 최근 잇따른 노동계 비리 사건, 임단협 과정 등에서 언론과 여론의 향배가 주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동계에서는 ‘보수 언론’의 여론몰이라는 불만이 높지만 향후 노사관계가 ‘여론전’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용득 위원장과 한국노총은 각각 6, 7위에 랭크됐다. 이용득 위원장은 개혁 이미지와 함께 강력한 리더십으로 민주노총과의 연대, 투자 유치 활동 등 적극적 행보를 펼쳤지만 최근 노정관계 악화와 노사정 대화 교착 등이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도 비리 사건을 털고 얼마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반기에는 한국노총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경총이 순위에 포함된 것도 이채롭다. 그간 경영자단체의 경우 개별 기업에 비해 노사관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것으로 비춰져왔는데 최근 경총의 보폭이 넓어진 것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사용자 최초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단체” “앞으로 역할이 커질 것” 등의 의견이 있었다.
기타 의견으로 대기업 노조(5), 정부(5), 조합원(5), 개별 노조(3) 등이 있었다. 한편 비정규 노동자(1), 민주노총 내 급진세력(1), 노동운동가 중 중도파(1), 관료(1) 등을 꼽은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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