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도 없는데 노점도 못하게 하면 어찌 살라구”
“일자리도 없는데 노점도 못하게 하면 어찌 살라구”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5.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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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노점상’들의 덥고 지치는 여름나기

#. 01 두어 평 노점이 ‘사람 목숨 값’


지난 6월 16일 한 노점상이 한강에 투신자살했다. 99년 교통사고로 장애 6급 판정을 받고 분식 판매 노점으로 생계를 꾸려오던 고 김혜일씨.


김씨의 자살 원인은 계속된 노점단속과 벌금 체납으로 인한 민사소송 등 생활고로 밝혀졌다. 같은 날 불법 노점 때문에 7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된 한 청각 장애인도 돈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 이후 해당 구청장은 김씨의 부인과의 면담에서 노점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김씨의 부인은 “이게 남편의 목숨 값”이라며 허망한 눈으로 하늘만 바라봤다.

 

02 “노점 미화 보도 자제하라”


6월 24일 신문·방송사, 한국프로듀서연합회, 방송작가연합회 등에는 서울시장 명의의 공문이 날아들었다. 내용은 포장마차를 낭만의 상징으로 보도하거나 노점 단속 장면을 편파적으로 보도해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협조를 바란다는 것.


공문은 “불법 노점들이 지하철 역세권 등 다중밀집지역에 난립해 시민들의 보행권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며 “임대료 및 세금납부, 위생검사 등 여러 측면에서 정상영업을 하는 허가업소와 법을 지키는 시민들이 피해를 보는 등 형평성을 훼손하고, 생계형이 아닌 치부용으로 변질한 곳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또 “노점 행위를 명예퇴직 등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재기의 수단으로 미화한 언론 보도가 불법을 조장한다”면서 협조를 당부했다,

 


생존권과 시민의 권리 사이, 깊고 넓은 골


도시 미관·시민의 권리와 노점상의 생존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노점상 문제. 각 시와 지자체들은 시민들의 민원과 노점상의 항의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때로는 모른 척 눈감고 때로는 일제 단속을 벌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고 호소한다.


전국노점상연합회는 전국에서 영업 중인 노점상을 약 250만 명으로 추산한다. 그러나 이는 좌판, 차량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노점이 상당수 빠져 있어 실제로는 300만을 훨씬 넘는 수치라는 설명이다.


노점 단속 건수도 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노점 정비 과태료 및 변상금 부과 건수는 2002년 7804건, 2003년 9980건에 이어 2004년 말에는 1만5000건에 육박했다. 강제정비 및 수거 건수도 2004년에는 2003년(2만6405건)의 두 배를 넘었다.


‘기업형 노점’을 우려하는 정부 추산과는 달리 최근 들어 늘고 있는 노점은 대부분 생계형이다. 한국도시연구소 홍인옥 박사는 “외환위기 직후 노점상의 급증은 경기 침체로 인한 현상이었지만 최근에는 극빈 생계형인 좌판과 한창 일할 나이인 젊은 노점상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정부는 자영업자 비중이 너무 높아 신규진입 규제와 한계 사업 퇴출이 필요하다며 ‘영세 자영업자 종합대책’을 제시했다 채 일주일도 안 돼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오락가락하는 정부 정책 속에서 ‘거리의 상인’들의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좌판에도 ‘상도’가 있다


6월 더위로는 47년 만의 기록을 갱신했다는 지난 25일 영등포 O극장 앞.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바지가 다리에 척척 감긴다. 극장 관람객을 상대로 연신 “아주 찰지다구, 한번 먹어봐요”를 외치는 이예순(48·가명)씨는 이곳에서만 10년 넘게 옥수수를 팔고 있다. 작은 레저용 의자와 합판, 찜통과 큰 양은 대야가 노점의 전부다. 


아스팔트 열기와 옥수수 찜통에서 나오는 김으로 이씨의 얼굴은 땀범벅이다. “아주머니, 이렇게 더운데 옥수수 팔려요? 빙수나, 과일쥬스 그런 게 더 잘 팔릴 것 같은데…” 옥수수 한 개도 안 팔아주면서 괜한 훈수를 두는 게 못마땅한지 이씨는 대꾸도 없이 옥수수만 뒤적인다.


“그것도 맘대로 되는 게 아니오. 리어카에 길바닥에서 장사하지만 우리도 도리라는 게 있지, 여름 됐다고 너도나도 얼음과자 들고 나와 팔면 저기 한 철 벌어 먹고사는 젊은 사람은 어쩌란 말이요.” 리어카에서 참외를 팔고 있던 중년 사내가 대신 말을 받는다.


참외 리어카 옆으로 때밀이부터 효자손까지 없는 게 없는 만물 좌판, 쥐포 장사, 채소 장사, 양말 장사까지 크기도 업종도 다양한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대형 시장 앞인데다 극장과 술집들이 모여 있어 원래 노점이 많은 곳이지만 최근 2~3년간 노점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 이곳 상인들의 말이다.


“4~5년 전만 해도 자리가 없어서 장사 못하는 일은 없었다고. 그런데 요즘엔 새벽밥 먹고 나와 자리를 맡지 않으면 신문지 하나 깔 자리가 없을 정도여” 변변한 의자도 없이 박스를 깔고 앉아 나물을 팔고 있는 김모(58·여)씨의 얘기다.

 

 

단속 피해 리어카에서 좌판으로


최근 들어서는 생계형 노점에 대한 단속은 좀 줄어든 편이지만 이들에게는 여전히 단속이 가장 무서운 존재다. 박스를 아무렇게나 뜯어 <몽땅 1000원>이라는 가격표를 붙여 놓은  ‘거리 만물상’ 정수철(38·가명)씨는 단속 때문에 포장마차에서 좌판으로 ‘전업’을 한 경우다. “일단 단속반이 떴다 하면 1분 안에 다 챙겨서 차에 실을 수 있도록 이렇게 박스마다 물건을 담아 다녀요. 빨리 짐 챙기는 것도 다 노하우지. 처음에는 몇 번 잡히기도 했는데 요즘엔 뭐 1분도 안 걸려요.”


좌판으로 나서기 전 정씨는 신촌에서 닭꼬치를 파는 포장마차를 운영했다. 이때는 그런대로 수입이 괜찮았다. 하루 매출이 15만원 선, 재료비 등을 빼고 한 달 순이익만 200만원쯤 됐다. 하지만 계속되는 단속으로 날아드는 벌금 딱지에 아예 포장마차를 압수당하는 일도 몇 번 있었다. “조리 도구하고 리어카, 천막 등을 구입하는데 보통 2~3백씩 들거든요. 작년부터는 단속 벌금도 3백만원으로 뛰고, 어떨 때는 한 달이 멀다하고 단속에 걸리는데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고육지책으로 좌판을 편 정씨의 한 달 수입은 100만원을 간신히 넘긴다. 하지만 좌판이라고 해서 ‘월세’가 없는 건 아니다. 정씨처럼 상점 앞에 자리를 편 상인들은 ‘자릿세’ 개념으로 한 달에 10만원 남짓의 돈을 상점 주인에게 내는 게 보통이다. 이렇게 저렇게 다 떼고 정씨의 손에 들어오는 돈은 80만원. 두 아이와 가정을 꾸려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신참부터 전문가까지, 업종만큼 다양한 인간군상


정씨 옆에서 생과일쥬스를 팔고 있는 윤모(27)씨는 길거리 노점 중 보기 드물게 젊은 축에 속한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2~3년 일자리를 구하다 실패하고 고민 끝에 지난 5월부터 노점을 시작한 ‘새내기’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는 없죠. 요즘에도 틈틈이 이력서 넣고, 구직사이트에 등록도 하고 그래요. 경험이다 생각하지만, 글쎄요. 경험이 될지 직업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죠.”


넥타이와 머리핀이 즐비한 옆 리어카 김씨가 윤씨에게 키위쥬스 하나를 주문한다. 돈을 안 받겠다는데도 굳이 천원을 주면서 “원가는 받아야지. 이 사람아. 체면 차리면서 어디 세상 살아지나. 빨리 빨리 취직해서 여기 그만 나오라고. 취직되면 내가 제일 멋진 넥타이루다가 골라서 한 놈 줄테니께.”


김씨는 아들뻘 되는 윤씨를 보면 항상 안타깝다며 “나도 처음에는 이 짓을 오래 하려고 한 게 아닌데, 갈수록 이것 말고는 길이 안 보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IMF 이후 운영하던 작은 식당 문을 닫고 노점으로 나섰다. 기반을 잡아서 다시 식당을 시작해 보려던 게 벌써 9년째다. 이제는 노점에도 노하우가 붙어 동네별로 계절별로 어떤 품목이 잘 팔리는지를 쭉 꿰고 있다. 노점을 알아보려고 몇 달 동안 영등포 시장을 전전하던 윤씨에게 과일쥬스 장사를 권한 것도 김씨다.

 
“자식들 다 키워 놓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어떻게 꾸려 가면 되지만 젊은 청년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얻게 해줘야죠. 일자리는 없는데 노점마저 못하게 하고, 젊은 사람들 앞날 망치는 일이지….”

 

거리의 삶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 노점상들은 강남을 중심으로 권리금에 종업원까지 둔 기업형 포장마차가 성업 중이라는 말이 돌면서 가끔 ‘월수입이 몇 백쯤 되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선 자신들에게 그런 말은 ‘남의 나라 얘기’라는 것.


마지막 상영 프로가 끝나고 극장 앞 노점들도 주섬주섬 ‘거리의 삶터’를 정돈한다. ‘옥수수 아줌마’ 이씨는 세상 물정 모르고 ‘업종 변경’을 권하던 철없는 기자에게 팔다 남은 옥수수를 건넨다. “어차피 쉬어서 낼은 못 파니까 가져가 먹어요” 지갑을 열어 천원짜리를 꺼내려는데 본 척도 안하고 돌아서던 이씨가 한마디 툭 뱉는다.


“기사나 잘 써줘요. 여기 사람들 나라에 먹여 살려 달라고, 뭐 해달라고 안 해요. 세금도 내고, 아들놈들 군대도 보내고, 그저 정직하게 하루하루 벌어먹는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