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대’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
‘슬픈 열대’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
  • 안형진 기자
  • 승인 2010.03.0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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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전쟁 속 오기와 열정의 작품 ‘아마존의 눈물’
세상에 ‘귀’를 열고 ‘화두’를 던지다
MBC 다큐 ‘아마존의 눈물’ 김진만·김현철 PD
▲ 김진만(왼쪽), 김현철(오른쪽) PD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 1월의 금요일 밤, 온 국민의 관심은 세계의 허파, 지구상 마지막 원시의 땅 ‘아마존’에 집중됐다. 반복되는 천편일률적인 TV 프로그램들에 식상해하던 시청자들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에 열렬히 환호했다.

‘아마존’이라는 미지의 원시세계에 압도당했던 시청자들은 이내 문명의 침입으로 황폐화되고 있는 아마존의 현실을 목도하며 가슴 아파 했다. 그리고 문명화의 미명 아래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개발의 참상을 보며 함께 고민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담아내는 것만으로 수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명품’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것이 아깝지 않다. 이에 시청자들은 ‘시청률’로 화답했다. 과정에서도, 결과에서도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명품다큐라 이름 붙은 ‘아마존의 눈물’이 만들어낸 이 모든 기록들은 미지의 아마존 열대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갔던 김진만·김현철 PD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 개월간 힘든 아마존의 ‘야생’을 온몸으로 경험한 그들은 의외로 불혹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동안(童顔)을 가진 말쑥한 보통 사람들이었다.

생존의 전쟁터에서 나온 오기의 작품

▲ 김현철 PD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김현철 PD는 왼쪽 귓불 아래 생채기가 남아있다. 상처가 아물고 난 뒤 생기는 흉터가 아니라 분명히 ‘현재 진행 중’인 상처였다. 아마존에서 돌아온 지 5개월이 되어가지만 아직까지 후유증에 시달린다. 그는 촬영을 마친 뒤 아직 술을 입에 대지 못하고 있다. 상처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부가 민감해서 그런지 (아마존에서) 벌레 물렸던 자리가 아직 낫지를 않았어요. 보통 1년씩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 김현철 PD

촬영이 진행됐던 5개월 동안 제작진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것은 벌레였다. TV와 각종 매체를 통해 많이 알려진 흡혈곤충 ‘삐융’의 습격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기’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고 한다. 많은 취재진들이 위축됐고 촬영을 포기하려는 순간 물때를 놓쳐 다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배수진이었던 셈이다.

“나중엔 다리 절단 이야기까지 나오고 하니까 제작진 모두 많이 위축됐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지 무슨 일이 생겼다면 평생의 짐이 됐을 것 같습니다. 벌레에 물려 진물이 나고 가려워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엔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숙소에서 나와 이야기하면서 동트기만을 기다렸어요. 해가 뜨면 벌레가 덜해지거든요. 그래도 촬영 시작하면 일단 하루가 가니까. 다들 그렇게 버텼지요.” ● 김진만 PD

벌레에 잠을 설친 취재진들의 주식은 ‘라면’이었다. 현지의 요리사들을 데리고 갔지만 입맛에 맞지 않았고, 원주민들의 음식은 더욱 그랬다.

“과일은 맛있죠. 그런데 그 외 음식은 대부분 현지 동물들을 삶고, 구워 먹는데 정말 입맛에 맞지 않지만 부족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먹었습니다. 그들에게 자존심 상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존심 상하면 촬영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정말 살기 위해 먹은 겁니다.” ● 김진만 PD

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고 그 와중에도 촬영은 계속 됐다. 그렇게 ‘생고생’을 하며 수집한 촬영분량은 60분 테이프으로 400개를 온전히 채워냈다. 좋은 화면을 만들어내겠다는 열정과 어떻게든 아마존에서 ‘살아서’ 나가야 한다는 오기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사람’을 통해 전해진 ‘진실’의 메시지

아마존의 눈물을 성공으로 이끌어낸 일등공신은 문명을 거부한 채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조에족’이었다. 턱에 구멍을 뚫어 그들의 장신구인 ‘뽀뚜루’를 착용하고 맨몸으로 밀림을 활보하는 그들의 원시 그대로의 삶은 방송 초반 시청자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아냈다.

하지만 두 PD는 단순한 ‘원시의 삶’을 시청자에게 소개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문명화의 진행으로 변화하고 사라져가는 부족민들과 생태계를 차례로 보여주며 ‘문명화’와 ‘개발’에 대한 가슴 저린 메시지를 던졌다.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아마존의 열대 밀림이 공급하고 있는 산소의 양과 아마존이 파괴됐을 때 나타날 기후, 환경의 재앙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이들은 그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맨 처음 촬영할 때는 2009년 지구상 마지막 원시의 땅이라 불리고 있는, 접근조차 용이하지 않은 아마존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지켜보자는 의도였습니다. 현지의 생태계 파괴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중점으로 다루려 했지요. 하지만 다녀와 놓고 다시 보니 결국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그 역풍은 반드시 인간에게 다시 온다는 메시지가 남더라구요.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교훈을 주거나 계몽적으로 담는 것이 아니라 실상 그대로를 보여드리면서 알리고 싶었습니다.” ● 김현철 PD
▲ 김진만 PD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저희도 현장에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과거엔 강제로 부족민을 쓰러뜨리며 문명화가 이뤄졌는데 그들은 현재 행복하지 못합니다. 어쨌든 부족민의 미래는 부족민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원시의 삶이 행복한 것인지 문명의 삶이 행복한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그들에게 제공해야하는 의무는 있다고 봅니다.” ● 김진만 PD

“나는 ‘백인’과 살 수 없어요”

하지만 취재진 역시 ‘문명인’으로서의 굴레를 벗어 던질 수는 없었다. 잠시 도시로 나와 촬영을 쉬는 동안 그들은 괴로웠다. 다시 원주민 부족 마을로 돌아가 촬영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한 원주민 마을에서 촬영을 마친 뒤 보트를 타고 도시로 나와 처음 본 불빛은 취재진에게 반가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선사했다. 보트에서 내려 마시는 시원한 콜라 한 모금과 에어컨이 가동되는 숙소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촬영하면서 느꼈던 부족함,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 이런 것들이 아니라 콜라 한 모금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는 것에 환희를 느끼고 행복해 한다는 것이 한심하기도 하지만 문명인인 저는 이것을 떠날 수 없습니다. 부족민들도 마찬가지에요. 문명화가 이뤄지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어요.” ● 김진만 PD

하지만 문명화가 아마존 원주민들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두 PD는 ‘아마존의 눈물’을 통해 소개된 원주민 고아소녀 ‘릴리아니’나 금광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이 황폐화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며 이를 증명했다.

“조에 부족 사람들도 현재는 문명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도 외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그들 중에는 도시에 대한 동경을 가진 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몰래 자기만 빠져 나올 수도 있겠죠. 그런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부족민의 선택이지요. 하지만 지금 삶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그런 악수를 두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 김진만 PD

특히 제작진의 촬영에 많은 도움을 준 고아소녀 ‘릴리아니’는 유독 기억에 남는다. 아홉 살의 여자아이가 아마존에서 하루를 고단하게 살아내는 모습은 제작진의 마음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릴리아니에게 나중엔 물어봤죠. ‘혹시 마을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니?’ 그랬더니 자기도 도시에 나가고 싶다고 하는거에요. 그렇지만 당신들 따라 나가고 싶지는 않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백인과는 살 수 없다고. 그 부족 자체가 백인에게 많은 부족민이 살해당하고,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도 그들에겐 똑같은 ‘백인’이었던 거죠” ● 김진만 PD

너무 예뻤던, 작은 꼬마아이의 고단한 삶을 지켜보면서도 그대로 그곳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무력함에 대한 아쉬움이 마음으로 전해졌다.

“아마존 다음은 뭘해야 하지?”

두 PD의 입장에서는 ‘자식’과도 같은 ‘아마존의 눈물’이다. 그들은 많은 시청자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호응해 주었다는 것에 대해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과정을 뒤돌아보면 당시 해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진한 아쉬움도 남게 마련이다.
▲ 김현철 PD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생존이 우선시 되는 극한 환경에 가 있으니까 여유가 없었어요. 부족같은 경우도 그들의 관혼상제나 출산 등 생활 전반의 여러 가지 것을 차분히 관찰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죠. 하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았으니 그런 면에서 참 아쉽습니다.” ● 김현철 PD

“좀 더 치열하게, 깊이 들어가 사람들 이야기도 많이 듣고 했어야 했지만 당시에는 아마존에서의 생활이 너무 힘들어 ‘이 정도 찍었으면 됐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운 부분이죠. 건강하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좀 더 전진해야 할 때 망설였던 거죠.” ● 김진만 PD

김진만 PD는 올 4월 남극으로 향한다. 총 4편으로 기획된 지구의 눈물 시리즈의 마지막이 바로 ‘남극’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눈물 시리즈의 첫 번째는 지난해 방송됐던 ‘북극의 눈물’이며 앞으로 ‘아프리카’, ‘남극’이 남아있다.

연속해서 ‘사지’로 들어가야 하는 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의 위로를 건네자 “그래도 상황은 아마존 보다 나을 것”이라며 “남극에 벌레는 없지 않겠느냐”는 역시 농담 반 진담 반의 대답이 돌아왔다. 고개 숙여 웃는 그의 모습에는 부담감이 녹아 있었다.

“아마존의 눈물이 너무 잘 나오다 보니 그보다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많이 잃었어요. 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어떤 것을 전해야 하나. 그 고민도 큰 문제죠.” ● 김진만 PD

사람의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

▲ 김진만 PD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새 작품에 대한 부담감은 크지만 그들이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방향은 뚜렷했다. 또한 그 방향은 ‘사람’이라는 단어 아래로 뭉쳐졌다. 이들의 따뜻한 시선은 ‘아마존의 눈물’에서도 십분 발휘됐다. 변화하는 현실 속에 놓인 아마존 부족 개인의 삶에 친근하게 접근했고,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과 감동을 얻어냈다.

“어쨌든 ‘사람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사람이야기를 좋아하고요. 조에족의 삶을 보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듯이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보편적 정서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만한 이야기도 없지요. 앞으로도 계속 사람의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전할 겁니다.” ● 김진만 PD

“진만이 형(김진만 PD는 김현철 PD의 1년 선배다)이 사람이야기 했지만, 주위에서 고생하는 소방관의 이야기나 군대에 가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징병제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든지, 단순한 ‘흥미거리’의 다큐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화두를 던지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 김현철 PD

‘아마존의 눈물’의 성공을 두고 ‘문명인들의 자기 우월주의가 느껴진다’, ‘지나친 상업성으로 포장돼 있다’는 등 몇몇 비난에 가까운 의견들도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은 그들이 아마존과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과 이를 위해 극악의 현장에서 수개월의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는 것,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하세요’ 하고 모두 들어줄 수 있다는 것. 또 그 반대편 입장이 있다면 반대편 입장도 듣고요. 시사교양국 PD의 가장 큰 매력이죠.” ● 김현철 PD

“일반인들이 갖기 힘든 시선으로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이를 통해 사회에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지고 변화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게 PD의 가장 큰 매력이죠. 제가 언제 아마존을 가고, 남극을 가볼 수 있겠어요?” ● 김진만 PD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오직 ‘시청률’이 방송을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로 굳어져 버린 현실 속에서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 낼 이야기들이 ‘아마존’에서의 이야기보다 좋은 반응을 얻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청자로서 이들이 만든 방송을 앞으로 더욱 즐겁게 시청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세상을 향해 귀를 열어 현장에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