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기업에는 날개가 없더라
추락하는 기업에는 날개가 없더라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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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혁신·교육훈련·노사 인식 전환이 성공의 날개

 ‘타산지석’ 무엇을 다뤘나


▶ 닛산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자동차산업은 제조업이 아니다
        박준식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 피아트 자동차의 최근 동향과 시사점
    ─피아트 자동차 왕국은 어떻게 몰락의 길로 들어섰나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미국 철강업체 뉴코어사의 성공 사례
    ─상식 뛰어넘는 경영혁신으로 신화 만들다
        곽강수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미국 자동차산업 노사관계의 조정과 혁신
    ─흔들리는 빅3, 노사가 함께 혁신을 꿈꾼다
        권순원 <코넬대 노사관계학과 교수>

 

▶ 독일 슈투트가르트 지역경제의 혁신모델
    ─노조가 혁신에 나서 지역을 살렸다
        곽상신 <한국노동혁신연구소 연구위원>

 

▶ ‘아우토 5000×5000’ 사회통합적 공장혁신 프로젝트 중간 점검
    ─참여와 혁신의 엔진 달다
        이문호 <한국노동혁신연구소장>

 

▶ 이탈리아 노사의 섬유산업 공동화 대응전략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
    ─노사가 함께 산업정책을 요구하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소니의 교훈
    ─‘배 나온’ 중년의 소니, ‘젊은 피’가 필요하다
        존 슈레이더 <경영전략 컨설턴트>

 

▶ 무너져 내리는 미쓰비시 자동차
    ─소비자 불신에 기업 내부 언로 차단, 위기의식 실종
        구본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로버의 교훈
    ─영국에서 자동차회사가 ‘멸종’된 까닭은
        장하준 <캐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비록 ‘다른 산의 돌이라도’(他山之石) ‘이로써 옥을 갈 수 있기에’(可以攻玉) 우리는 그것이 성공의 단 열매이든 실패의 쓴 아픔이든 거기서 배우고자 한다.


<참여와혁신>은 많은 사례 속에서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경험치들을 찾아내기 위해 지난해 10월호부터 ‘타선지석’이라는 코너를 만들었다. 그리고 외국의 사례들을 통해 우리가 ‘타신지석’으로 삼을만한 이야기들을 담아왔다.

 

창간 1주년을 맞아 그간의 ‘타산지석’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자 한다.

그간 ‘타산지석’에는 모두 10가지 사례가 소개됐다. 성공, 실패 사례는 물론 기업 단위, 업종 단위, 지역 단위의 사례들을 망라했다.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은 경우는 ‘이탈리아 피아트 자동차’(2004년 11월호), ‘미국 자동차산업’(2005년 1월호), ‘일본 소니’(2005년 4월호),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2005년 5월호), ‘영국 로버 자동차’(2005년 6월호) 등이 있었다.


또 성공사례는 ‘일본 닛산 자동차’(2004년 10월호), ‘미국 철강사 뉴코어’(2004년 12월호), ‘독일 슈투트가르트 지역’(2005년 2월호), ‘이탈리아 섬유산업’(2005년 3월호), ‘독일 폴크스바겐 자동차’(2005년 3월호) 등이 소개됐다.


자동차산업 사례가 특히 많은 것은 산업 자체의 역동성과 함께 현재 우리나라 산업의 중추 역할을 하면서 노사관계가 주목받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경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각각의 사례들이 우리의 실정과 다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문제의 발생이나 해결과정 등에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무리한 구조조정은 불난 집에 기름 붓기


우리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무리한 구조조정의 폐해를 여실히 경험했다. 당시 국내 기업의 구조조정은 급격한 인원 삭감 중심으로 이루어져 노사 모두에게 치유되지 못하는 큰 상처를 남겼다. 갈등과 대립, 투쟁의 끝에 남은 것은 불신 뿐이었다. 이 상처는 외환위기 극복 이후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몰락의 길을 걸은 피아트 자동차도 1만2천 명 규모의 인력감축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회사, 정부의 입장과 고용감축, 공장폐쇄에 반대하는 노조의 입장이 정면충돌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위기의 증폭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닛산 자동차의 구조조정 방식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닛산은 노사를 포함한 이해 당사자들 간의 긴밀하고 성실한 사전 협의를 통한 고용조정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증명한다.

 

닛산의 구조조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점진적인 방식으로, 고용조정 당사자들과의 충분한 협의를 거치면서 진행됐다.


닛산의 ‘부활 신화’는 국내에 핵심 기술과 고용 기반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철저히 지켜졌다는 점에서 가능했다. 닛산은 구조조정을 위해 중복되는 차종을 통폐합하고, 경쟁력을 상실한 모델들을 과감히 도태시키는 모델 조정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조정은 국내의 생산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식보다는 핵심 생산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기술개발 없는 혁신은 공염불


미쓰비시 자동차는 2000년에 승용차의 결함을 고의로 은폐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2800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2002년 1월에 요코하마에서 미쓰비시 자동차가 만든 트럭에서 타이어가 빠져 사람이 사망하고, 10월 야마구치현에서 클러치 파열로 운전자가 사망한 사고가 터졌다.


회사는 그 원인이 자동차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정비 불량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4년 3월과 5월, 이 두 건 모두 트럭의 결함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소비자들의 불만은 폭발했고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품질에 대한 불신은 기업의 위기로 직결됐다.


한때 산업혁명의 발상지로 제조업 발전의 상징이었던 영국이 자동차 회사 하나 없는 나라로 전락하게 된 것 또한 마찬가지다. 영국은 주식시장이 일찍부터 발달해 주주자본주의 논리가 강하다 보니, 어느 선진국보다도 배당률이 높고 단기 실적주의가 강했다. 이는 장기적인 투자, 특히 기술투자를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또 이공계를 경시하는 풍조 속에서 공학의 수준이 낮았고, 체계적인 기술자 교육에 소홀했다. 그 결과 마지막 남은 자동차 회사인 로버가 파산절차를 밟기에 이르렀다.


반면 미국의 철강업체 뉴코어는 기술혁신을 통해 철강산업의 역사를 새로 썼다. 뉴코어는 고철을 녹여서 바로 슬라브와 판재류를 생산하는 신기술을 도입해 월등한 원가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미국 시장을 장악한다.

 

교육훈련 통한 지식노동자 양성이 경쟁력의 기본


폴크스바겐 성공의 바탕에는 지속적인 숙련교육이 자리잡고 있다. 소정의 훈련과정을 거치면 상공회의소가 발행하는 자격증을 받도록 했고, 이 자격증을 가지면 어디에서나 전문가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노동과 학습이 결합되면서 생산직에서도 지식경영이 발전한다. 과거 또는 다른 공장에서처럼 시키는 대로만 하는 단순조립공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공장합리화의 주체가 된다. 또 이들의 직업 생활은 이전보다 훨씬 안정될 것이다.


한때 치솟는 실업률로 인해 위기에 빠졌던 독일 슈투트가르트 지역을 살린 것은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역할이었다. 슈투트가르트 지역 금속노조가 요구했던 것 중 하나는 노동 및 작업구조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재교육이었다. 글로벌 시대의 신제품 개발과 생산과정은 여러 지식이 결합돼야 하는 복잡한 체계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을 통해 단체협상에서 임금문제보다 노동 및 생산조직, 교육 및 연구 개발 분야 등을 주요한 의제로 상정했고, 현재 슈투트가르트 지역은 가장 성공적인 사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지 못하면 눈 뜬 장님


피아트 몰락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는 것 중의 하나가 세계 시장의 흐름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피아트는 전통적으로 ‘이중특화전략’, 즉 내수시장과 소형차종 중심의 생산-판매 전략을 고수해 왔다. 경쟁업체들이 1990년대에 들어 차종다원화 전략을 새롭게 추구했던 것과는 달리, 피아트 경영진은 기존의 소형차종 모델 개발-판매만 고집함으로써 시장수요의 다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국내시장에서뿐 아니라 전체 유럽시장에서도 크게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피아트그룹 차원의 사업다각화 전략도 문제였다. 피아트그룹의 경영진은 1990년대 하반기에 들어 자동차사업의 위축을 고려해 보험이나 전력에너지 그리고 중장비기계사업부문의 신규 진출 또는 인수를 위한 투자를 통해 그룹차원의 사업영역 다변화를 모색했다. 이른바 ‘문어발’ 경영이다. 그런데 피아트그룹의 이런 사업다각화전략은 자동차사업 부문에서의 신규차종 연구개발투자를 크게 제한해 피아트 자동차의 경쟁력을 상당히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미쓰비시는 ‘거대한 미쓰비시그룹, 미쓰비시 자동차에 속해 있으면 회사가 망하는 일은 없다, 주어진 할당량을 충족시키면 내 책임은 다한 것이며, 그것은 회사가 평생을 보장해준다’는 생각으로 위기의식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브랜드 파워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었다.


로버도 대규모 자본투자, 지속적인 연구개발, 체계적인 기술교육 등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흐름에 기업문화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에 반해 닛산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통해 물건이 아닌 문화와 생활양식을 판매하는 고도의 문화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고, 이는 화려한 부활로 이어졌다.

 

‘노’도 ‘사’도 변해야 산다


뉴코어를 강력한 철강회사로 만든 아이버슨은 회장직에 오른 다음 네 가지 경영철학을 철저히 지켰다.


첫째, 경영층은 종업원들의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결정·관리한다. 둘째, 종업원들은 해고의 위험 없이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도록 한다. 셋째, 종업원들은 정당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 넷째, 종업원들은 자신이 부당하게 대우받았다고 생각되면 언제라도 청원권을 행사한다. 이런 종업원 중심의 시스템은 뉴코어 경쟁력의 원천이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지역 금속노조는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주도자로 나섰다. 노조는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대신, 개혁의 방향을 문제 삼았다. 경쟁력 강화를 노동비용의 절감을 통해 해결하려는 기업 측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노사간 합의를 통한 개혁이 비용절감에 더욱 효과적이라는 관점을 제기했고, 노조의 이 같은 관점은 사회적으로 동의를 얻게 되었다.


이탈리아 섬유산업 노사는 산업정책의 문제까지 관심 영역을 넓혔다. 노사는 공동으로 정부와 유럽연합에 실제로 실현가능한 구체적 정책 제안과 요구를 제시하면서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독일 폴크스바겐 노사의 선택은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독일 사회가 10%대의 높은 실업률로 신음하고 있을 때 매월 5000마르크(360만원)를 받는 5000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아우토 5000×5000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경쟁력, 생산성, 좋은 일자리를 노사가 함께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좋은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 노조는 노동시간을 기존의 주 28시간에서 35시간으로 늘렸다. 특히 노사가 합의한 자동차 대수를 생산했는지 여부에 따라 노동시간이 규정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계획한 생산대수나 품질에 착오가 생길 경우 규정 근무시간을 넘겨서라도 이를 보충해야 하는데, 그것이 기업에 의해 발생된 것이라면 그 잔업은 정규노동시간으로 간주되지만, 작업자들의 잘못일 경우 임금을 지불할 의무가 없는 시스템이다. 이른바 ‘강성’으로 분류되는 독일 금속노조가 이같은 선택을 한 것은 생산성이 임금과 고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