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축구공엔 꿈이 서려 있다
낡은 축구공엔 꿈이 서려 있다
  • 서솔 기자
  • 승인 2010.03.3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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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가 ‘직업’이길 바라는 넥타이 맨 선수들
주경야축(晝耕夜蹴), K3리그 ‘부천FC1995’의 꿈과 희망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칼레의 기적’을 아는가. 1999-2000시즌 프랑스 FA컵은 4부리그 아마추어팀 칼레RUFC가 일으킨 돌풍으로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목수, 배관공, 교사 등의 직장인으로 구성된 칼레RUFC는 쟁쟁한 프로팀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며 결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프랑스 FA컵 82년 역사를 다시 쓰는 순간이었다.

아쉽게도 돌풍은 우승 문턱을 넘지 못했다. 칼레RUFC는 결승전에서 만난 낭트FC에게 경기 종료 직전 통한의 역전골을 내주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꿈을 쟁취하려 했던 그들의 선전을 축구팬들은 ‘칼레의 기적’이라 부르며 기억하고 있다.


한국판 ‘칼레의 기적’을 꿈꾼다

여기, 기적을 꿈꾸는 또 하나의 축구단이 있다. 부천FC1995가 바로 그들이다. 이미 이 축구단의 탄생 자체부터가 기적이라 불릴 만하다. 지난 2005년, 부천을 연고로 하는 K리그 구단인 부천SK가 갑작스럽게 제주로 연고지를 옮긴다.

부천SK의 서포터즈 ‘헤르메스’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결국 자신들의 힘으로 새로운 축구단을 만들고야 만다.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의 힘이 아닌 오직 팬들만의 힘으로 만들어진 축구단은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 대한민국 K3리그(한국 프로축구는 1부리그인 ‘K리그’와 2부리그인 ‘N리그’, 그리고 3부리그인 ‘K3리그’가 있다. 각 리그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프로야구처럼 2군 선수들이 N리그에 출전하는 것이 아니다)의 부천FC1995는 그렇게 탄생했다.

선수들의 ‘직업’은 축구선수가 아닌 경우가 많다. 건축자재업자, 공장직원, 대학원생 등 별도의 본업을 가지고 있거나 공익요원 신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봉은 없다. 출전수당, 훈련수당 등을 받을 뿐이다. 그나마 작년에 비해 올해는 이마저도 조금 깎였다고 한다. 아무도 주목해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금전적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닌 K3리그 선수로 살기란 과연 어떠한 것일까.

지난 3월 25일 저녁 8시. 느닷없이 불어 닥친 한파로 거리엔 행인마저 뜸했지만 부천시 오정공원 내 인조잔디구장엔 부천FC1995 선수들의 기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FA컵 예선2라운드에서 내셔널리그(N리그) 소속의 천안시청을 맞아 막판 5분을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하며 주저앉은 게 바로 며칠 전이었다. 그 바람에 K3리그 소속팀 최초로 FA컵 본선라운드에 진출하게 되는 한국판 칼레의 기적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선수들이 내지르는 힘찬 기합소리와 만면에 띤 밝은 웃음은 그 날의 아쉬움을 훌훌 날려 보내려는 안간힘이었으리라.

▲ 장석근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장석근, MF, 25세
내가 원해서 시작한 축구이기에


부천FC1995 미드필더진의 주축인 장석근은 천안시청과의 경기에서 입은 부상 탓에 이 날 훈련에 참여할 수 없었다.

“마음은 편해요. 당장 이번 주에 경기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조급해 할 필요도 없고요. 이렇게 동료들 훈련하는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리그 홈 개막 경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입은 부상이라 초조해할 법도 한데 짐짓 여유를 부린다. 이 정도 부상으로 팀 내에서의 위상을 걱정할 그가 아니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광주광산FC를 떠나 부천FC1995에 새롭게 둥지를 튼 그는, 친정팀을 상대로 개막전 결승골을 뽑아내며 순식간에 미드필더진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시즌 그의 활약은 에이스급이라 불려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거의 매 경기 선발 출장하는 편이에요. 당연히 팀 내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지요. 단지, K3리그의 다른 팀에 있었더라면 충분히 주전으로 뛸 수 있을만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나 때문에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는 생각에 조금 미안할 뿐이에요.”

하지만 그런 그도 늘 실력을 인정받아온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현재 뛰고 있는 무대가 우리나라 최하부리그인 K3리그란 점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사실 한 단계 상위리그인 N리그의 팀과 접촉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입단에 성공하지는 못했단다. 그는 K3리그 선수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초등학교 3학년 때 그저 공 차는 게 좋아서 시작한 게 축구예요. 말 그대로 내가 원해서 시작한 거죠. 축구 자체를 즐기려고 늘 생각하기 때문에 K3리그에서 뛰고 있다고 해서 위축되거나 창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게다가 그냥 적당히 하자, 라는 생각이 들만큼 이 곳이 만만한 곳도 아니에요.”

물론 그도 K3리그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을 만날 때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일에 마음을 쓰지 않기로 했다. 본인이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저변이 넓지 않은 우리나라 축구환경이 그러한 것인데 내가 왜 또 그런 문제 때문에 좌절해야하나’하는 생각을 할 만큼 그는 성숙한 축구선수다.

그렇다면 K3리그 선수들과 상위리그 선수들의 실력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내 생각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아요. 단지 체력적인 부분에서 실력차이가 판가름 난다고 봐야죠. 가지고 있는 실력도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충분히 발휘할 수 없어요. 그런데 우리 팀의 경우만 보더라도 일주일에 겨우 이틀 훈련하거든요. 상위리그의 팀들과 절대적인 운동량에서 차이가 나다보니 그게 실력차이로 나타나는 거죠.”

‘지금, 여기’라는 꿈을 쫓다

상당수가 본업을 가지고 있는 부천FC1995 선수들은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다가 월요일, 목요일 오후 8시가 되면 훈련장으로 모여든다. 하루에 2시간씩 총 4시간. 이 짧은 시간을 통해 그들은 생업전선의 한 구석으로 제쳐둘 수밖에 없었던 선수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곤 한다. 허락된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만큼 그것은 늘 미완으로, 아쉬움으로, 혹은 꿈과 희망으로 남는다. 현재 뚜렷한 본업을 갖고 있지 않은 장석근도 부천FC1995의 다른 선수들처럼 축구 외에 다른 일을 찾아볼까 고민하기도 했단다.

“무작정 놀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용돈을 벌 생각으로 문구회사라든지 잉크 공장에서 대략 1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런데 내가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운동 외에 다른 일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한 때, 운동이 과연 나의 전부가 될 수 있나 하는 생각도 가끔 하긴 했지만 훌륭한 축구선수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봐요.”

그의 꿈은 의외로 K리그 선수가 되는 것도,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도 아니다. 현재에 충실하자는 신조를 갖고 있는 그는, 직장인들의 평범한 생활이 부럽지 않다. 거창한 꿈도 일단은 사양하겠단다.

“남들은 꿈을 크게 갖는 게 좋다고 하지만 나는 조금 생각이 달라요. 그저 오늘보다는 내일이 낫고 내일보다는 모레가 나은 선수가 되는 게 제 목표예요. 그렇게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제 모습을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 오경은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오경은, GK, 38세
회사도 책임지고, 골문도 책임진다


그는 CEO다. 한 벽돌납품회사를 책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두 번은 소속 축구팀의 골문도 책임진다. 부천FC1995의 수문장 오경은의 이야기다.

“건축자재영업을 시작한지 10년째고, 올해부터 오너가 됐어요. 직원이었을 때는 마음 편히 훈련하러 왔는데, 내 사업이 생기다보니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그래서 입단 후에도 팀을 나갈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동생 같은 팀 동료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사라지는 거예요. 나를 형이라고 부르면서 잘 따르는 녀석들이거든요. 결국 와이프와 상의한 끝에 당분간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죠.”

사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현 국가대표 골키퍼인 이운재(수원 삼성)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던 선수였다. 그러나 그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선수영입 과정에서 발생한 석연찮은 문제로 인해 그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축구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여전히 말하기 꺼려지는 그 일로 인해 그는 결국 대학교 2학년 때 축구를 그만둔다.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 기영옥 감독(전 금오고)은 그 즈음 출범한 중국C리그 진출을 적극 권유했지만 이마저도 아내의 반대로 무산되고 만다.

“나보다 뒤쳐져 있던 선수들이 지금도 프로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아쉬움이 많이 남죠. 왜 내가 그 때 그만뒀을까하고 후회가 돼요. 내 사주팔자에 스물세 살 이후에 이름을 떨칠 거라고 나와 있다네요. 내가 축구를 그만 둔 게 스물두 살 때입니다. 아내가 축구를 싫어해서 그 당시 추진하려 했던 중국리그 진출을 포기했어요. 그래서겠죠. 이제 아내는 내가 일 끝내고 축구하는 것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해요. 그 때 중국행을 반대했던 일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는 거지요.”

서른여덟.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골키퍼라는 포지션의 특수성을 생각해도 그렇다. 그도 인정한다. 이제 자신이 조기축구회에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하지만 올 시즌까지는 이곳에 남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단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시야가 넓어지고 노련미도 늘었다며 아직까지는 괜찮은 선수로 스스로를 인정하기로 했단다.

“후보로 있을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이곳에 오지도 않았겠지요. 그런데 요즘은 꼭 경기에 뛰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축구 잘해서 프로 갈 나이도 아니고. 내 표정이 지금 꽤 밝지요? 운동을 하니까 스트레스가 다 풀려요. 젊었을 때는 경쟁심리가 대단했는데 이제 마음이 꽤 넉넉해진 거 같아요. 젊은이들이랑 함께 운동해서인지 나이에 비해서 젊어 보인다는 소리도 자주 듣고요. 조기축구회에 가끔 지도도 할 겸 나가곤 하는데 나보다 연배가 낮은 사람이 나를 어리게 보고 하대할 때가 있을 정도랍니다.”

자영업자이기도 축구선수이기도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는 사업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믿음 역시 강해보였다. 그의 축구이야기는 곧 축구를 통한 사업이야기였다.

“축구로 스트레스를 풀다보니 자연히 술을 마시지 않게 돼서 다행입니다. 내가 영업을 하고 있지만 술은 절대 안 해요. 접대에 의존하는 영업도 한계가 있고요. 술 접대로 2차까지 가면 보통 이, 삼백만원 깨져요. 근데 더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 있어요. 고객은 ‘벽돌 팔아서 얼마나 남기기에 이런 식의 접대를 하는가’하고 의심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내 나름의 영업방식을 개발했지요. 고객은 무조건 점심에만 만나는 쪽으로 유도하죠. 물론 내가 다 대접하는 조건으로요. 고객들도 다들 좋아하세요. 내가 믿음을 준 거죠.”

사업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그에게 물었다. 인터넷 회원가입 웹페이지에서 그는 자신을 어떤 직종 종사자라고 선택하는지.

“자영업이라고 해요. 일단 처자식 먹여 살리는 일이 내 사업이니까. 그런데 축구선수라는 선택항은 없던데요. 만약 있다면 축구선수라고 해보고도 싶은데…. 스스로를 뭐라고 생각하든, 양 쪽 모두에 열심인 현재 내 모습에 만족하죠.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운동 당일 날 붕 떠서 일을 열심히 못했어요. 넥타이도 안 매고 대충 시간 때우다 운동하러 가자,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올해부터 내 사업을 갖게 되다보니 일단 복장부터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넥타이 딱 매고 말이지. 당연히 일도 열심히 해요. 아내는 여전히 성에 안찰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올해로 결혼 14년째를 맞는 그는 아내와 사이가 좋아 모든 게 잘되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아내와 사이가 좋은 까닭에 가정이 행복해졌고, 또 그러다보니 사업도 잘 되는 것 같다고 싱글벙글 이다. 이제는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젊음을 불사를만한 가치가 있는 구단을 바라며

한 때 그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축구가 이제 그의 새로운 삶을 생기 있게 유지시켜 주고 있다. 바로 그렇기에 부천FC1995는 그에게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함께 빛내고 있는 어린 동료들과 그들을 전폭적으로 후원하는 서포터즈 ‘헤르메스’가 그는 한없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은퇴 후엔 ‘헤르메스’의 일원이 되기로 마음도 먹었다.

“우리 팀은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이 열정적으로 만든 팀입니다. 그 어느 팀도 갖지 못한 열광적인 서포터즈가 우리 뒤에 있어요. 너무 고마운 일이죠. 다만, 팀 운영상 어려움이 많이 있다고 들었어요. 이번에 천안시청과 경기하면서 보니, 그 팀은 이온음료를 마시더라구요. 생수를 마시면서 괜히 신경이 쓰이던데요. 앞으로 구단 사정이 나아져서 선수들에게 많은 보상이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동료들을 한없이 따뜻한 눈빛으로 응시하며 그는 말을 이었다.

“젊음을 불살라도 전혀 아깝지 않고, 더 큰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도약대로 삼기에도 좋은 그런 멋진 구단으로 우리 부천FC1995가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