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고용, 함께 갈 순 없을까?
성장과 고용, 함께 갈 순 없을까?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0.04.0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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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 일자리 정책 … 단기처방에 그쳐
이대로는 불안정 일자리만 늘릴 뿐
Issue in Issue 고용 문제, 이대로는 안 된다 ① 역대 정부의 일자리 정책 비교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사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일자리’가 꼽힌다. 일은 하고 싶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알바’를 전전하는 청년실업자들부터,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대통령의 언급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가 일자리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전 사회적인 관심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의 터널을 막 벗어난 2003년에는 경제가 3.1% 성장하는 동안 일자리가 3만 개나 줄어들었다.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와 소득이 늘어난다’는 통념이 허물어졌다.

그 이후 이런 현상은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대세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던 지난해를 제외하면 2003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는 꾸준히 성장을 지속했지만 일자리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심각한 일자리 문제로 인해 지난 참여정부 이후 ‘연간 일자리 쭚쭚개 창출’이 정부의 공식적인 국정목표로 등장했다. 올해는 ‘25만 개+α’가 목표다. 하지만 정부의 일자리 창출 목표에도 불구하고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흐름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일자리 문제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는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을까? 각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일자리 정책과 그 정책이 제시되던 당시의 경제상황을 개괄적으로 살펴본다. 또 연도별 취업자 수 통계를 통해 각 정부의 일자리 정책의 결과를 비교해본다.

김대중 정부, 실업 해소

국민의 정부라 불렸던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던 1998년은 온 나라가 1997년 11월 발생한 외환위기로 인해 휘청거리던 때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연쇄부도가 이어졌으며, 심지어 위기를 감당할 수 없는 금융기관까지 나타났다. 기업들의 연쇄부도로 실업률은 급상승했다. 당시 금융기관의 일자리는 15만여 개에 달했으나, 퇴출과 합병 등 구조조정이 진행된 후 5만여 개의 일자리가 줄어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던 1998년의 실업률은 6.8%를 기록했고, 1997년에 비해 취업자는 5.3%가 줄었다. 경제활동인구는 1997년에 2,166만 명에서 1998년 2,143만 명으로 감소했고, 경제활동 참가율은 62.5%에서 60.6%로 떨어졌다. 이처럼 경제활동인구 자체가 줄어든 것은 경제가 어려워져 시장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지 않고 비경제활동인구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당시 시급했던 외환위기의 극복을 위해 기업, 노사, 금융, 공공부문에 대한 수술을 단행해 경쟁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성장정책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발생한 대량실업은 기업의 연쇄부도로 인한 실업에 더해 실업률을 급격하게 높이는 한 요인이 됐다.

김대중 정부는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업대책을 추진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곧 높아진 실업률을 이전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는 앞선 정부들이 경제가 성장하면 고용이 늘어난다는 기조에 따라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펴기보다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하던 것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 개입하는 정책을 폈다.

1998년 2월 실업률이 5.9%에 이르고 실업자 수도 123만5천 명을 기록했으며, 실업급여 신청 건수는 1997년 11월 196건에서 1998년 3월에는 1,655건으로 폭증했다. 이런 추세라면 1998년 실업자 수는 15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한 해 동안 모두 5조3,263억 원의 예산을 종합실업대책에 투입했다. 이 대책은 고용유지 지원, 새로운 일자리 창출, 직업훈련 및 취업알선, 실업자 생활안정 지원을 기본구조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1999년 들어서도 실업자는 계속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실업대책의 기본방향을 일자리 창출 및 유지, 취업능력 제고, 사회안전망 확충, 실업대책의 전달체계 확충으로 수정했다. 수정된 방향에 따라 1999년 집행된 예산은 모두 7조4,536억 원이었다.

1999년 2월 8.6%를 정점으로 실업률은 점차 낮아지기 시작했다. 2000년 들어 초기에 5%대를 기록하던 실업률은 이 해 봄을 지나면서 3%대로 낮아졌고, 실업자 수는 80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이에 정부는 사회안전망 확충을 통한 실직자 생계지원, 고용구조의 개선, 인력수급 불균형의 해소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2000년 5조237억 원의 예산을 집행했다.

2001년 초 실업자 수가 다시 10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4월 이후 실업률이 3%대로 안정되면서 외환위기 이전의 수준을 회복했다. 이후 정부의 정책방향은 단기적인 실업극복에서 청소년, 고령자, 중소기업 등 대상별 고용안정으로 전환됐다.

이 시기 특징적인 사업으로 1999년에 시작된 공공근로사업을 들 수 있다. 공공근로사업은 1999년에만 1조5천억 원이 투입돼 144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정부는 직접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만들어 제공함으로써 실업률을 낮추고 실직자의 생활안정을 지원하고자 했다. 공공근로사업은 그 이후 실업률이 낮아지면서 그 규모가 축소됐다.

김대중 정부는 이처럼 노동시장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외환위기 이후 높아졌던 실업률을 낮추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이에 따라 김대중 정부 초기 급격하게 높아졌던 실업률은 낮출 수 있었지만, 한시적이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늘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노무현 정부, 사회적 일자리

김대중 정부는 한편으로는 4대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강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실업대책을 통해 일자리의 질보다는 양에 치중하는 정책을 폈다. 이 과정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높아졌으나 고용의 안정성은 악화됐다. 이 여파는 노무현 정부 시기 ‘양극화’라는 문제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 집권기간 내내 양극화는 사회적인 화두가 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 소득의 양극화뿐만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가 깊어졌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던 김수현 전 환경부차관은 <참여정부 경제 5년>이라는 책자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은 선진국처럼 기술투자나 인적자원의 혁신을 통해 경쟁력과 이윤을 확보하기보다는, 하청기업을 쥐어짜거나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교체하는 형태로 환경변화에 대응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김 전 차관에 따르면 대기업의 이런 행태에 따라 부담은 그대로 중소기업에게 전가됐고, 일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비정규직이 되거나 영세자영업자가 됨으로써 소득격차가 확대됐다. 이런 소득의 양극화는 다시 자산과 교육의 양극화로 이어져 양극화가 확대되는 악순환 구조에 빠졌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대졸자가 늘어나면서 노동력이 고급화되고 일자리에 대한 기대수준은 상승했지만,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일자리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로조건이 열악했고, 청년실업 증가 등 구직난 속에서도 인력난을 겪었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일자리 창출 종합대책으로 묶어 2004년 2월 발표했다. 이 대책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성장을 추구하되, 동시에 개인의 직업안정성보다 고용가능성을 높여 사회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비전을 담고 있다. 또 김대중 정부 시절의 실업대책과 고용안정대책을 한 단계 끌어올려 국가 차원의 고용전략으로 추진하며, 일자리 창출에는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중요하므로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도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는 일자리 창출의 주체는 결국 기업이므로 협력적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노동시장을 안정화시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봤다. 이를 위한 주요 과제로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등을 통한 일자리 창출동력 확충,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 창출 등 추가적 일자리 발굴, 노동시장 인프라 확충 및 인력양성 기능 강화를 통한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제시했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 중 특징적인 점은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추진이다. 노무현 정부는 우리나라가 급속하게 고령화되고 소득수준이 증가했으며 전통적인 가족구조가 변화하면서 간병·가사 지원, 보육, 의료, 방과 후 교육 등 사회서비스의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 부문 취업비중은 2003년 기준 12.6%에 불과했다. OECD 국가들의 평균이 21.7%인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2004년의 경우 OECD 국가들의 소득수준이나 인구부양비를 고려해 회귀분석 한 결과,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 부문 취업비중은 16.7%가 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12.7%에 불과했다. 이 격차를 일자리로 환산하면 90만 개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태다. 노무현 정부는 사회서비스 부문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복지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는 부문이라고 봤다.

노무현 정부는 사회서비스 부문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회적 일자리 사업을 2003년부터 추진하는 한편, 사회서비스 부문에 대한 민간시장도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정부는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 동안 5,643억 원의 예산을 들여 23만3천여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나아가 사회적 일자리 사업을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육성할 수 있도록 ‘사회적 기업 육성법’을 제정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일자리 창출 종합대책에서 제시했던 일자리 창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는 매년 40만 개씩 일자리를 발굴해 2008년까지 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이었으나,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 동안 129만4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그쳤다. 2005년에 목표치를 연 40만 개에서 연 30만 개로 낮췄지만 2004년을 제외하면 그 목표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SOC 투자

일자리 창출 목표를 제시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매년 60만 개씩 집권 기간 동안 3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 등으로 오히려 고용이 축소되면서 이 공약은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됐다.

이명박 정부는 올해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25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고용률을 증가세로 반전시키는 한편 실업률을 3%대 초반으로 안정시키겠다는 ‘2010 고용회복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를 위해 취업애로계층의 구직 DB와 중소기업의 빈 일자리에 대한 구직 DB를 확충하고, 구인-구직 중개에 기업과 취업애로계층이 적극 참여하도록 2011년 상반기까지 세제·재정상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고졸이하 미취업자를 전문기능인력으로 양성하기 위한 전문인턴제 도입, 기업의 고용유인을 높이기 위한 고용투자세액공제제도 도입, 고용창출 100대 기업 선정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매년 고용률을 0.1%p씩 높여 2015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고용수준을 회복하고, 향후 10년 이내에 고용률 6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세웠다.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두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첫째 청년인턴제, 희망근로사업 등 고용위기 극복을 위한 단기적·직접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에 치중하고 있다. 이는 김대중 정부 당시 공공근로사업과 유사하다. 두 번째는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SOC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꾀하고 있다. 여기에 사회적 일자리를 확충하기 위한 사업은 노무현 정부 이래 이명박 정부에서도 꾸준히 진행되는 사업이다.

올해 정부가 목표한 대로 25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면 지난 3년간 일자리는 32만3천 개가 증가한 셈이다. 연 평균 10만8천 개 수준이다. 이에 비해 김대중 정부 5년간 증가한 취업자 수는 95만5천 명으로 연간 19만1천 명씩 늘었고, 노무현 정부 5년간 증가한 취업자 수는 126만4천 명으로 연간 25만3천 명씩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