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이 점령한 대학, 청년의 패기가 시든다
취업난이 점령한 대학, 청년의 패기가 시든다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5.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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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은 어디에 서 있는가

#1. 2005년 4월 19일 서울 광화문

4월 19일 광화문 열린시민공원.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친일 잔재 청산’, ‘일본 군국주의 부활 규탄’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4·19혁명 45돌 기념식과 반일 집회가 함께 열린 이날, 참석자들은 “45년 전 불의에 항거했던 선배들의 뜻을 이어 일제 잔재 청산에 나서야 한다”며 “청년학생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집회에서 나온 발언의 진지함과는 달리 참석자 수는 예년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적었다. 고려대, 경희대, 중앙대 등 서울 소재의 내로라할 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한 집회인데도 참석자가 100여 명에 그쳤다. 학생들의 시위는 밤늦은 시간 일본 대사관 항의 방문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막아서는 경찰 앞에 역부족인 시위대는 결국 계획했던 일본 대사관 앞 농성천막 설치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2. 2005년 4월 9일 중국 베이징대
이로부터 꼭 열흘 전인 4월 9일, 중국 베이징대에서는 7백여 명의 학생들이 천안문 사태 때 출정식을 가졌던 교내 광장에 모여 반일 구호를 외치며 교문 밖 진출을 준비했다. 학생들이 주도한 반일 시위는 전 시내로 퍼져나갔고 시민들의 동참 속에 점점 대규모로 번졌다. 외신들은 중국의 반일 시위가 대학생들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 ‘제2의 5·4운동’ 혹은 ‘천안문 사태 재현’ 등의 제하로 다뤘다.


AFP 통신은 중국의 반일 시위를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민간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최대 규모의 시위’라고 다루고 이번 반일시위의 한가운데 베이징대 학생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 시위가 발단이 돼 중국에서는 연일 전국 규모의 반일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과, 1960년 4·19혁명 7,80년대의 민주화 투쟁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 발전의 획을 그은 중요한 시기마다 학생들은 역사의 최선두에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학생운동은 조금씩 침체되기 시작했다.

 

각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에서 ‘반(反) 운동권’을 표방하는 후보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아예 후보자가 없어 선거를 치르지 못하는 대학도 생겨났다. 과거 대학 사회에서 진보적인 담론과 토론을 주도하던 사회과학·독서토론 동아리들은 명맥을 잇기 어려울 정도로 ‘신입생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사회적 이슈에 ‘침묵’을 지킨다. 적어도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 청년들의 패기나 열정,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2005년 한국의 대학생들,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청춘’을 보내고 있을까.

 

“취업이 전쟁인 시대, 대학은 예비 전쟁터다”


각 대학의 중간고사 기간인 지난 4월 연세대학교 도서관, 오전 10시가 채 안됐는데도 도서관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 늦잠을 잔 탓에 도서관 자리 잡기에 실패한 강은주(사회학과·1)씨는 교문 밖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점심시간 될 때까지는 자리가 안 날 것 같아서 학원 자습실에 가려고요.”

 

학원이라고? 불과 6~7개월 전에 ‘입시지옥’을 빠져나온 신입생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의외다. 강씨가 다니는 학원은 영어회화나 토플, 토익 등을 가르치는 어학원이다. “요즘 취업하려면 영어회화 기본이잖아요. 친구들도 하나씩은 다 다니는데요?” 강씨는 대학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취업이 전쟁이니까, 대학은 예비 전쟁터쯤 된다고 해두자”며 건물 안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이제 우리 대학에서 취업에 대한 불안감은 더 이상 졸업을 앞둔 고학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3월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이 전국 대학의 신입생 9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취업준비’(24.%)와 ‘학점’(22.5%)이라는 응답이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반면 ‘사회진보를 위한 활동 참여’는 4.6%에 그쳤다. ‘대학에 들어와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에는 ‘영어·컴퓨터공부’(24.3%)가 ‘동아리활동’(22.9%)이나 ‘여행’(16.5%) 등을 앞질렀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취업난 등 사회 환경의 변화로 인해 대학생들의 탈정치화가 빨라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대학은 취업을 위한 기관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식과 정치의식을 함양하는 곳이기도 한데 후자의 기능은 거의 상실하고 있다”며 우려했다.


하지만 취업난과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오히려 학생들의 사회 개혁 활동을 더욱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학내에 설치된 대자보판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관련된 대자보를 읽고 있던 이남경(숭실대 경제학과·3)씨에게 생각을 물었다. “관심은 있어요. 남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요즘 직장인 절반이 비정규직이라잖아요.”


그러나 구조적 문제를 바꾸기 위해 활동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단호했다. “글쎄요. 어차피 그렇게 해서 바뀔 문제도 아니고, 취업준비 열심히 해서 좋은 데 취직하는 게 해결책 아닐까요. 우리들에게 온갖 현실의 짐을 다 지워 놓고 사회문제에 무관심하다고 질타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캠퍼스, 미래에의 불안함은 ‘청년의 패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대학가는 등록금 투쟁 중


대학가에서 그나마 학생운동의 줄기를 잇고 있는 것은 ‘등록금 투쟁’ 등으로 대표되는 학내 사안에 관한 문제제기다. 지난 3월 31일 서울대에서는 1500여 명의 학생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총학생회가 ‘비상총회’ 형식을 빌려 개최한 이 집회의 목적은 등록금 인상분 반환이었다.


사회 문제보다 ‘등록금 투쟁’에 집중하고 있는 학교는 서울대만이 아니다. 지난 3월 23일 중앙대에서는 재학생 1960명이 모여 학생총회를 열었다. 이 학교에서 학생총회가 열린 것은 13년 만의 일로, 그간 학내 문제나 정치·사회적 이슈로 학생총회를 소집했던 적은 종종 있었지만 매번 정족수 미달로 총회가 성사되지 못했다. 취업난과 개인화 속에 뿔뿔이 흩어졌던 학생들을 불러모은 것은 역시 등록금 문제였다. 이날 총회에서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 저지 ▲재단 정상화 ▲학사운영 학생참여 보장 등을 결의했다.


고려대 총학생회도 등록금 동결 및 5% 인상분 반환, 면학장학금 확충, 교육환경개선을 내세우고 있다. 경희대 총학생회는 등록금 동결 및 6.5% 인상분 반환, 전공강의평가 완전공개, 총장직선제를 주장하며 총장실을 점거 했다. 이 밖에 연세대, 한양대, 부산대 등 주요 대학의 학생회도 이른바 ‘교육 투쟁’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고 있다.


서울대 재학생인 이기중씨(인문대·3)는 “정치·사회적 이슈에 지나치게 골몰하는 학생운동에 염증을 느낀 학생들이 실리를 추구하는 등록금 투쟁 쪽으로 치우치는 면이 있다”면서도 “높은 등록금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이 생겨나는 상황에서 등록금 투쟁을 사회·교육의 문제가 아닌 경제적 투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학가 선거의 최대 이슈도 취업난과 등록금


대학생들의 이런 변화는 최근 대학가의 총학생회 선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005년 총학생회장을 뽑는 지난해 선거에서 전국 대학 중 비운동권 후보가 당선된 대학은 77%에 이르고 운동권 후보는 20%대에 그쳤다. 그러나 운동권, 비운동권 여부를 떠나 청년실업문제 해결, 등록금 인상 저지 등 교육환경 개선이 주요 공약을 이룬 것은 큰 차이가 없었다.


2005년도 총학생회장을 뽑는 선거기간, 경원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에서 한 후보측이 취업을 테마로 이색 퍼포먼스를 벌였다.


‘투명한 학생회’를 표방한 ‘파란 청바지’ 선거운동본부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교내에 유리집을 설치해 선거 사무실로 사용하는 한편 이 유리집에 전교생의 이름이 깨알같이 적힌 푸른색 플라스틱 숟가락 8000개를 내걸었다. 김도단(24) 선거대책본부장은 “숟가락은 밥그릇, 일자리를 뜻하는 것으로 청년 실업의 절박한 현실과 이를 외면하는 사회에 저항하는 메시지”라며 “교수들이 제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직접 일자리 창출에 나서라는 압력도 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후보측은 선거운동원들이 얼룩무늬 유니폼을 입고, 유세장에 달마시안, 얼룩소 등을 등장시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선본은 “흑백의 조화는 대학 내에 팽배한 이분법적 논리(운동권-반운동권)를 극복하고 다양한 의견이 존중될 수 있는 학생회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홍익대학교는 총학생회장의 정치적 성향을 둘러싼 논란으로 크게 홍역을 치렀다. 총학생회장의 한총련 의장 출마를 두고 재학생들이 ‘총학생회 탄핵 운동’을 벌이겠다며 반대한 것. 지난해 11월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송효원(국어교육과·4, 현 한총련 의장)씨는 선거 당시 재학생 PDA 지급 등 학내 복지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고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한총련 학생회를 세우고자 출마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 송 회장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의장으로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일부 학생들은 “당선을 목적으로 정치적 성향을 숨겼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사태는 송 회장이 한총련 의장에 당선되더라도 학내 문제에 소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선에서 수습됐지만 학생들의 불신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대학문화마저 사라진다


대학생들의 변화는 ‘대학 문화의 꽃’으로 불리는 축제나 동아리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고려대학교 동아리연합회장 김모씨는 “최근 동아리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은 영어공부 동아리나 여행 등 취미활동을 하는 곳”이라며 “수십 년 전통을 자랑하는 독서토론이나 사회과학 동아리들은 사회봉사 등으로 활동영역을 바꾸거나 아예 간판을 내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지난달 초 한양대 서울캠퍼스에 ‘동아리 해체 선언문’이 나붙었다. 1990년대 초 결성된 이 동아리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고 실천에 나선다’는 창립 이념을 가진 사회과학 동아리였다. 이들은 벽보에서 “비판과 고민을 담아야 할 사회과학 세미나가 형식적인 모임으로 그치고 있어 동아리 해체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청년 특유의 창의성과 저항정신이 한데 어우러졌던 대학 축제는 어떨까. “연예인을 부르지 않으면 사람 모으기 힘들죠.” 지난해 서강대 부총학생회장을 지낸 류이현(22)씨는 “축제 때마다 연예인 초청에 들어가는 비용 충당을 위해 대기업에 스폰서를 요청하는 학생회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가수 정태춘씨는 “요즘 대학 축제를 보면 비판정신, 저항정신은 사라지고 TV프로와 똑같은 오락성과 상업성만이 지배한다”며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가장 비판적이고 창조적이어야 할 청년들이 오히려 더 시류에 편승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현실주의자”


이처럼 곳곳에서 ‘대학=진보’의 공식은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와 연세대 사회학과 한준 교수 등이 대학생 2000여 명을 대상으로 3년째 실시해 오고 있는 ‘대학생 생활과 의식’조사는 대학의 이념적 변화를 뚜렷이 보여준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묻는 질문에서 2002년 25.5%였던 ‘중도’는 지난해 36.5%, 2004년에는 40.3%로 늘었다. 반면 진보는 ‘매우 진보(6.2%)’와 ‘다소 진보(56.7%)’를 합쳐 2002년 62.9%였던 것이 2년 만에 44.6%로 떨어졌다. 그 사이 보수 성향은 11.6%(2002년)에서 15%(2004년)로 약진했다.


조사를 이끌고 있는 전북대 설동훈 교수는 대학생들의 변화를 산업구조와 정치사회적 변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일단은 산업구조가 변했죠. 대학생들에게 ‘취업 특권’은 옛말이 됐어요. 성장을 해도 고용창출이 안 되니까 미래가 불안해요. 그러다 보니 취업 말고는 다른 고민을 할 여유를 잃어가는 겁니다. 정치지형 변화도 한 몫했어요. 요즘 세대에게 정치적 민주주의는 쟁취 대상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이죠. 한마디로 요즘 대학생들은 현실주의자라고 보면 됩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사회 일각에서는 사회 발전의 주역이 점점 패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4·19혁명 45돌을 맞은 올해, 당시 혁명의 주역이었던 원로들도 학생운동의 현실이 안타깝기는 마찬가지. ‘4월 혁명회’ 상임의장 황 건 선생은 “학생들에게마저 4·19 정신이 잊혀지는 것이 슬프다”면서 “젊은 학생들은 우리사회의 청량제와 같은 존재로 사회 부조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학생들의 역할도 멈춰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91학번 학생운동가들로 이뤄진 ‘시민사회청년활동가모임’은 ‘대학생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가슴이 미어지고 숨이 막히던 ‘그 시절’을 알고 있냐”는 질문으로 말문을 뗀 편지에서 이들은 “취업난과 개인화 속 힘든 현실은 이해하지만 앞으로 여러분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우리 사회의 변화의 한복판에 서게 되고, 그 변화를 추동하는 주역이 되기 때문에 비판적 시각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오늘 우리 역사는 ‘역사의 고비마다 용기 있게 자신을 내던졌던 청년학생들이 사회발전과 민주화의 주역’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훗날의 역사는 오늘날의 학생운동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그것은 어쩌면 학생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 취업난과 개인화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들과 우리가 함께 대답해야 할 몫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