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공익’이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공익’이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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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안 하는, 처음 하는 것만 하면 성공한다
보통 사람의 자연스런 일상 속에 감동이 있다
MBC 예능국장 김영희

 MBC 예능국 김영희 국장은 연예인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PD다. <웃으면 복이 와요>를 연출할 당시 ‘도루묵 여사’ 코너를 진행하던 개그우먼 이경실이 붙여준 별명 ‘쌀집 아저씨’로 유명세를 떨쳤고, 자신이 연출하는 프로그램에 종종 얼굴을 내밀었기 때문에 그 넉넉한 웃음조차도 낯익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부족하다. 한 때 유행처럼 오락 프로그램 PD들이 화면에 얼굴을 드러냈지만 많은 PD들은 방송되던 그때뿐, 곧 잊혀지곤 했다. 김영희 국장처럼 오랜 기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 위해서는 또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이뤄낸 ‘남다른’ 성과 때문일 것이다. 1986년 MBC에 입사한 김영희 국장의 경력은 화려하다. MBC 예능 프로그램 중 우리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상당수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91년부터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 ‘몰래카메라’가 그의 작품이고,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던 <웃으면 복이 와요>를 거쳐 96년 다시 복귀한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는 ‘이경규가 간다’ 코너를 통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정지선 지키기라는 ‘사소한’ 아이템으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첫회에 장애인 부부의 정지선 지키기 장면을 잡아냈고, 이후 신드롬을 일으켰다.


<21세기 위원회>의 한 코너였던 <칭찬합시다>도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독립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고, <전파견문록>에 이어 2001년에 ‘야심작’ <느낌표>를 내놓는다. 당시 느낌표는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하자 하자’ ‘아시아 아시아’ 등 오락과 교양,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2기 <느낌표>를 다시 시작해 각막이식 수술을 주선하는 ‘눈을 떠요’ 남북 어린이들의 퀴즈 경연인 ‘남북 어린이 알아맞히기 경연’ 선행 장면을 모바일로 담아내는 ‘찰칵 찰칵’ 등의 코너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눈을 떠요’의 경우 남매가 모두 시각장애를 겪으면서도 서로를 위하는 아름다운 모습,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다 청각장애까지 있는 어머니와 이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머니를 돕는 대견한 중학생 아들의 모습 등으로 많은 감동과 함께 장기 기증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처럼 탁월한 감각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보여왔던 김영희 PD가 최문순 사장 체제 출범 이후 MBC 예능국을 책임지는 예능국장에 발탁됐다. 마흔 다섯이라는 나이에, 그것도 차장 승진 2주 만에 이뤄진 승진 인사를 놓고 ‘파격 인사’라는 평이 언론을 도배했다. 그러나 그만한 적임자도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국장 취임 후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봄철 프로그램 개편 이후 첫 방송을 눈앞에 두고 정신없이 바쁜 김 국장을 MBC 예능국장실에서 만났다. 그의 방 벽에는 프로그램 편성표가 어지럽게 붙어 있고, 테이블 위에는 갖가지 메모 사항을 적어 놓은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면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얼굴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김 국장의 일 이야기를 열 하나의 채널로 풀어봤다. 채널 11, MBC를 바꾸고 있는 그의 이야기다.


경쟁력 회복이 우선이다


개편방향은 경쟁력 회복에 있다. 특히 주말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프로그램 전반적으로 차별화 전략을 가져가서 특성 있게 만들어 갈 것이다. 특정 MC들의 집중현상에 대해 얘기하는데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주요 MC를 당연히 모아야 한다. 주중엔 새로운 MC를 기용하고, 주말엔 주요 MC를 기용하는 것이 맞는 얘기 아닌가? 이번 개편에서 공교롭게도 토요일, 일요일 주요 시간에 대한 변화만 있었고, 또 그 시간대에 MC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나온 평가 같은데 전체를 보지 못한 평가이다.


‘공익 PD’라는 평가가 부담스럽지는 않다. 오락적인 것은 철저히 오락적으로, 쇼이벤트는 철저히 볼거리 위주로 갈 것이다. 프로그램별로 차별화하겠다. 시청자들에게 폭넓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 공익이다. 흔히 말하는 사회적인 이슈에 관한 것만이 공익적으로 비춰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공익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인데. TV를 켜서 시청자들이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을 한 시간 보면서 그 시간 동안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을 편히 할 수 있으면 공익적인 역할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방송


예능국장으로서는 차별화에 주안점을 두겠다. MBC의 예능이 다른 방송사와 다르게 보이는 방향으로 만들어 나가겠다. ‘아 이게 MBC구나’ 하고 알 수 있게 시도를 하는 차별화 전략을 쓸 것이다. 다양화시켜야 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여야 선택권도 넓어지고, 시청자에게 진정한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유행을 따라가는 것은 안 좋다.


그렇다면 MBC의 색깔은 무엇인가. 예능국 정책발표 때 얘기했던 것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방송을 하겠다는 것이다. 적어도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하겠다. 코미디에서 약자를 희화한다든지, 무심코 외국인 노동자를 비하한다든지, 그런 것만이라도 피하겠다.


그리고 젊은이들만을 타깃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TV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교육적인 것을 고려하고 온 가족이 모여서 손잡고 볼 수 있는 오락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이다. 최근 들어 공중파가 위성이나 케이블, 인터넷에 잠식당하고 있는 상태인데, 이를 극복하려면 방송도 변화해야 하고 예능프로도 방향전환을 가져와야 한다. 프로그램의 질로 승부해야 한다.


머리 좋은 사람보단 성실한 사람이 좋다


PD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면서 갖게 된 원칙은 일을 잘하는 것보다 성실한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건성으로 해도 머리가 좋고 능력이 좋아서 일을 잘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렇게 잘하기보다, 밤잠 안자고 성실하게 했는데 못 하는 게 오히려 낫다.


리더십은 책임에서 나온다


과정을 우선시한다 해도 시청률이라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적 괴리는 ‘책임’으로 메운다. 리더십은 결국 책임을 지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나 혼자 지면 된다. 성실하게만 일하게 만들면 그 결과에 대한 것은 내가 책임진다. 반대로 결과가 잘되면 ‘니들이 잘해서 성공한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리더십이고, 그럴 때 사람들이 따라온다. 내 방침이 이렇기 때문에 이렇게 간다고 했으니까 실패하면 내가 방향제시를 잘못한 것이니 내가 잘못한 것이다. 설사 그들이 잘못해도 그들의 잘못으로 돌리면 안 되는 것이다.


현장이 기본이다


이상적 리더 스타일을 꼽으라면 알렉산더 스타일을 꼽겠다. 알렉산더가 제국을 건설한 것은 그 스스로가 직접 현장에서 피 튀기고 부상당하면서 같이 싸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니까 병사들이, 국민들이 따라왔다. 현장에 같이 있을 때 리더십이 나온다. 지금도 일주일에 반 이상을 현장에서 밤을 샌다.


남이 안 한 걸 하라


프로그램 아이디어가 뛰어나다고 얘기하는데 사실 그거 쉬운 일이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런 건지 쉬워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지만, 남이 한 것만 안하면 된다. 어디서 한 것 같으면 안 하면 된다. 처음 하는 것만 하면 된다.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또다시 새로운 거 찾으면 된다.


자녀교육도 정보관리가 필요하다


아이들, 아내와 있는 시간이 굉장히 부족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정말 열심히 같이 놀아주고, 이야기하고, 무언가를 한다. 같이 어울리는 것이다. 일주일에 반은 회사에서 자고, 집에 들어가도 너무 늦게 들어가고 일찍 나온다. 엊그제 밤 열 시에 들어갔는데 두달 만에 가장 일찍 들어간 거였다. 그 시간에 들어가서 밥 먹으면서 아이들과 이야기 나눈다.


자녀들과 얘기할 거리가 없다, 어떻게 놀아줄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부모들이 노력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이야기하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힘들다.


아이의 사생활을 알아야 한다. 어떤 친구 사귀는지, 누구 싫어하고, 누구 좋아하는지, 뭐 하고 놀기 좋아하는지, 무슨 과목 좋아하는지, 다 알아야 한다. 아내에게도 물어보고 아이들에게도 물어보면서 ‘정보’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오랜만에 만나도 이야기 거리가 많다.


또 아이들을 진짜로 귀여워해야 한다. 피곤한 것을 잊을 정도로 애들을 좋아해야 한다. 애들이 놀아달라고 할 때 ‘잠자고 나중에 하자’ 하면 자격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 피곤함이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없어지고 힘을 내서 놀아줄 수 있는 정도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쉴 때는 모든 것을 잊어라


PD는 특성이 프로그램 2년 정도 하고 나면 6개월 정도 쉰다. 이 기간 동안 여행을 떠나거나 하면서 재충전하고 다음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동안 가졌던 생각을 지워버리는 데 주안점을 둔다. 여행 같은 걸 가서 프로그램 생각을 많이 해왔다고 하는 것은 바보다. 처음에는 정말 방송의 방자도 생각하지 말고, TV도 안 보고 오로지 철저하게 휴식한다. 그 다음에 새롭게 시작할 때 몰입을 해야 한다. 아내가 나한테 ‘당신의 목표가 뭐냐’고 물으면 마음껏 노는 게 목표라고 한다. (웃음) 우리가 일에 매달려 열심히 일하는 건 놀기 위해서다.


사람이 경쟁력이다


내가 주로 만들어온 프로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꾸며지지 않은 자연스런 이야기다. 처음 PD가 됐을 때 ‘연출’이라는 것에 대해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연출을 하지 않은 연출이 가장 훌륭한 연출이라는 걸 느꼈다.


전문 연예인과 일할 때도 우리의 목적지가 어디고, 가야할 길은 어디라고 얘기해주면 그게 끝이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얘기하도록 내버려두는 것, 그 자연스러움 속에서 얘기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연예인은 정말 잘 짜여진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면 감동주기가 힘들다. 꾸며낸 것은 감동을 줄 수가 없다.


갈등은 대화로 풀어라


많은 사람이 일하는 조직을 이끌다보면 갈등이 잦을 수밖에 없다. 갈등이 일어나면 의견을 들어야 한다. 양측으로 나누어지는데 이쪽 이야기를 듣고 저쪽 이야기를 듣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선의를 가지고 대화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면 분명 해결책이 나온다.


내가 해결 방법을 모르더라도 만나보게 하고, 그게 해결이 되는 일이면 해결되는 것이고 안 되는 것이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내가 결정을 하면 되는 것이다.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재미있는 다큐멘터리 만들겠다


예능국장으로서의 욕심은, 지금 우리 예능국에 PD가 60여 명 되는데, 이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내가 PD였을 때 선배 말 안 듣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내 뜻대로 ‘난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고집 부렸는데, 지금 PD들에게도 그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실패해도 감싸주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후회하지 않도록 하고 싶다.


PD로서의 욕심은, 국장을 얼마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국장이 끝나면 빨리 다시 현업으로 복귀하고 싶다. 지금 꼭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 다큐멘터리다. 하나의 주제로 이루어진 20부작 정도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 주제는 아시아, 황하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 정보와 사실에 입각한 다큐멘터리도 재미있게 만들고 싶다. 그래서 시청률 20%가 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

 

"이경규, 신동엽은 프로가 무엇인지 안다"
"지금 연예인들 중 MC를 보고 있는 사람 중에서 손꼽히는 사람들이 진짜 프로다. 그들이 손꼽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경규. 신동엽, 김용만, 유재석 같은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이경규, 신동엽 이런 사람도 정말 프로그램 하기 싫어하는 때가 있다. 그렇지만 녹화 직전까지 피곤할지라도 카메라가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말 열심히 한다. 삼십분 하자고 했던 것이 두세 시간, 끝까지 한다"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이다. 프로가 실은 돈인데, 그렇게 해야 자기 인기가 떨어지지 않고 유지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카메라 돌아가기 전까지는 괴로워해도 카메라 받으면 그런 모습 보이지 않으면서 활기차게 해야 오래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

"자신이 어떻게 할 거라는 준비를 해 온다. 동작 하나하나에서 준비한 티가 다 난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것이 바로 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