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이제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5.05.1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이데이 특집] Ⅱ 다시 '윤상원'이다
인터뷰_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 정재호 소장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 정재호 소장은 들불야학 3기로 윤상원과 함께 야학활동을 하고 ‘투사회보’ 발행에 동참했던 ‘산 증인’이다. 지난해 12월 열사의 생가에서 화재가 발생한 후 복원에 필요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녔지만 여러 가지 벽에 부딪혔다. 지금은 보훈처와 대한주택건설협회, 전남대총동창회 등의 도움을 받아 급한 예산은 충당한 상태다. 5월이 되면 국내외 단체들이 윤상원 생가를 방문하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5월 초까지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 생가 복원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나?


"이번 주에 흙벽을 다 발랐고 마루, 천장 작업도 마무리 됐다.
대략 70~80% 완성된 상태인데 문제는 불타버린 책이나 소품 등 열사의 생전 당시를 증언하고 있는 자료들이 절반 이상 소실됐다는 점이다. 잿더미 속에서 건진 절반의 자료들마저 물에 다 젖어버렸다. 생가가 완공되더라도 남아있는 자료들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문제가 남는다."

 

- 복원이 시작되기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예산도 문제였지만 한사람만 너무 영웅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5·18 때 죽어간 사람의 생명은 모두 똑같이 숭고하다. 하지만 역사를 기억할 때는 사건적 접근뿐만 아니라 인물사적 접근도 중요하다. 갑오농민전쟁에서 이름 없는 민초들이나 전봉준 장군의 죽음은 똑같이 위대하지만 역사의 전개 속에서 민초들이 한 역할과 전봉준 장군의 역할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 윤상원의 역할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그는 끝까지 도청에 남아있었고 시민군 대변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만 중요하다고 고집한 적은 없다. 계엄군이 들어올 것이 확실한 상황이 되자 들불야학 강학(배우고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교사들을 강학이라고 불렀다)들에게 “들불야학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들불야학을 지켜야 하고 또 누군가는 도청을 지켜야 한다. 너희들은 앞의 역할을, 나는 뒤의 역할을 하자”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역할이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죽음을 통해 책임을 다하려고 했다."

 

- 생가 복원 후의 계획은?


"열사 관련 자료들을 모아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작은 기념관을 세우려고 한다. 또, 그간 활발하지 않았던 광주항쟁의 인물사적 접근에도 더 집중해 볼 생각이다. 윤상원 열사뿐 아니라 광주항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에 대한 자료가 너무 없는 실정이다. 상원이 형은 죽음으로써 자기의 역할을 다했다. 이것은 살아남은 나의 역할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