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가 되어가는 전태일 정신
‘클리셰’가 되어가는 전태일 정신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0.05.0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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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립
혹시 문선공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지금은 사라진 직업인 문선공(文選工)은 신문사나 인쇄소에서 원고에 따라 활자 하나하나를 골라 뽑는 사람을 말합니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고 인쇄와 출판까지도 모두 전자출판 시스템에 따라 이루어지는 지금의 시대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도 제일 처음 신문을 만들 때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신문사에는 보통 한 개 층 전부에 활자들만 놓여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컴퓨터의 조합 방식이 아니라 글자 하나하나가 완성된 형태여야 하기 때문에 그 수가 방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참여와혁신이라고 하면 ‘참’ ‘여’ ‘와’ ‘혁’ ‘신’이라는 다섯 글자 모두가 있어야 하는 거지요. 이론적으로 한글로 만들 수 있는 한음절 글자 수가 1만1172개이고, 이 글자들이 크기에 따라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10만개 정도의 경우의 수가 생기는 겁니다.

위압감마저 들게 만드는 엄청난 활자들 앞에 서서 원고지에 쓰인 글자에 맞는 활자를 뽑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문선공입니다. 그만큼 숙련도가 필요한 일이었지요.

문선공들로 인해 생긴 단어가 ‘클리셰’입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문선공들은 신문 발행 시간을 줄이기 위해 기자들이 즐겨 쓰는 표현에 대해 미리 활자를 찾아 조합해 놓았고 그것을 클리셰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클리셰가 상투적 표현 정도의 의미로 쓰입니다.

대표적 클리셰 중 하나가 바로 유행가 가사 속의 ‘사랑’일 겁니다. 세상 어느 단어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단어인 사랑이 습관처럼 유행가 가사 속에 쓰이면서 어느 새인가 낡고 진정성 없는 단어로 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노동계에도 절대 클리셰가 되어서는 안 됨에도 클리셰가 되어가는 표현이 있습니다. ‘전태일 정신’이 그것입니다. 노동운동 한다는 사람치고 전태일 정신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전태일 정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 슬픈 현실을 보게 됩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전태일재단에 자동차를 기증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초심’을 이야기했습니다. 정치적 의미니, 득실 계산이니 이런 것들은 모두 버려도 좋은 자리였습니다.

많은 활동가들이 말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름이고 집회 현장에서 먼발치에서 수없이 많이 봤지만 ‘어머니’를 이렇게 가까이서 만나고 또 손을 맞잡은 것은 처음이라며 설레했습니다.

그 설렘이 새로운 힘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다시 습관적인 노동조합 활동으로 돌아갈 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순수한 표정들을 지어보였습니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 40주기입니다. 청년 전태일이 살아있었더라면 회갑을 맞는 해입니다. ‘다 그래’를 뒤집을 수 있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출발점을 기대해 봅니다.

추신 : 권두 칼럼에서 권말 칼럼으로 옮겨오면서 좀더 매섭게 비판하고 세상을 읽기 위해 문체도 바꾸고 ‘독하게’ 글을 쓰고자 했습니다. 그랬는데 참 많은 분들로부터 예전의 글 느낌으로 돌아가 달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 칼럼만큼은 ‘클리셰’를 벗어나지 말아야 할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