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대화는 다르다’
‘소통과 대화는 다르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10.05.0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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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위한 3원칙 되새겨야
상대방과 다름을 인정하라

 

기업체도, 노동조합도, 심지어 대통령까지 ‘소통’이 문제라고 한다. 모든 문제는 결국 ‘소통 부재’로 귀결된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소통’이라는 단어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닐까? 정작 소통의 구체적 현실화는 외면한 채 당위적으로만 소통을 주장했을지 모른다. 이에 <참여와혁신>은 이번 호부터 소통문제 전문가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신인아 박사의 ‘소통이야기’를 통해 ‘소통’을 다시 돌아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신인아 박사
1959년 생
독일 괴팅엔대학교 사회학 박사
이화여대 학술원 평화학연구센터 전임연구원
현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이사

요즘 우리 사회 최고의 화두는 ‘소통’이다. 소통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조직의 리더가 갖는 생각이 구성원들과 공유되지 않거나 또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조직이나 단체가 합의점을 끌어내지 못해도 소통이 문제라고 한다. 서로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이혼으로 가는 부부의 사례가 증가하고 있고, 자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소통교육을 받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통(疏通)의 한자는 ‘막힌 것을 뚫는다’는 뜻을 갖고 있다. 흔히 우리는 차들이 막혀서 앞으로 나가질 못하면 소통이 잘 안 된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도 잘 풀리지 않으면 우리는 소통이 잘 안 된다고 한다.

요즘 우리 사회 최고의 화두는 ‘소통’이다. 소통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조직의 리더가 갖는 생각이 구성원들과 공유되지 않거나 또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조직이나 단체가 합의점을 끌어내지 못해도 소통이 문제라고 한다. 서로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이혼으로 가는 부부의 사례가 증가하고 있고, 자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소통교육을 받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통(疏通)의 한자는 ‘막힌 것을 뚫는다’는 뜻을 갖고 있다. 흔히 우리는 차들이 막혀서 앞으로 나가질 못하면 소통이 잘 안 된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도 잘 풀리지 않으면 우리는 소통이 잘 안 된다고 한다.

소통과 대화의 차이 이해해야

일반적으로 소통을 대화(對話)와 동일어로도 많이 사용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인즉 대화는 말 그대로 서로 마주보면서 말을 주고받는 것을 표현하지만, 소통은 대화를 넘어 말을 통해서 서로 막힌 것을 뚫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소통을 잘 하려면 단순히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지금까지 이 부분에서 많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대화를 하려고 해도 상대방이 응해주지 않는데 무슨 소통이 되겠는가”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알고 보면 소통과 대화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소통이 잘 되려면 단순한 대화를 넘어 먼저 알아야 할 소통의 원리가 있다.

소통 원리 1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라

소통을 잘 하려면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을 보아야 한다.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한다는 것이다. 온통 나의 주장을 어떻게 상대방에게 전달할 것인가에만 관심이 집중되어있다. 그래서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런데 자기 것을 강조할수록 서로의 차이만 점점 더 부각되고, 그 결과 두 사람 사이의 거리만 더 생긴다. 분명히 소통을 잘 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명백하게 주장했을 뿐인데, 정작 소통의 벽만 두꺼워지는 것을 느낄 뿐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소통은 말을 하는 사람(화자:話者)과 말을 듣는 사람(청자: 聽者)이 있을 때 일어난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화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청자의 귀를 통해서 전달된다. 화자가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갖고 말을 했을지라도 그 말의 의미는 청자가 어떻게 들었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진짜 소통을 잘 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보다,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듣느냐에 더 관심을 가진다.

소통 원리 2 똑같은 말이라도 이해하는 것은 제각각이다

소통의 수단은 말이다. 말은 빙산과 같다. 빙산에는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빙산을 과소평가하다가 크게 다친 배들의 이야기가 많다. 즉 보이는 것만 지나치게 확신하다가 큰 낭패를 당한 경우다. 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한 말인데 상대방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또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이야기를 하게 될까 말하는 것이 두려워진다. 그래서 말을 칼 또는 비수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왜 말이 상처가 되는 것일까? 10명에게 집이라는 단어를 주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한 개의 집이 아니라 10개의 집이 나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즉 집이라는 단어가 매우 분명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경험, 성격, 가치관, 문화에 따라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바는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인에게 집은 아파트지만, 독일인에게는 단독 주택이 집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기가 경험한 집만이 집이고,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은 집이 아니라고 확신에 차서 말한다면 이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람들마다 각자 보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내 위치에서는 잘 보이는 것이지만, 상대방의 위치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한다. 그래서 설득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소통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소통원리 3 다름을 인정하자

소통은 다른 것들과의 만남이다. 언제 소통이 잘 되느냐고 질문하면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랑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소통이 잘 된다.”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인터넷 동호회가 활발한 것도 바로 서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소통문제가 덜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피곤하게, 또는 비효율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인 소통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동양의 음양철학에 의하면 모든 것들은 서로 상극 또는 다른 것들이 조화를 이룰 때 생명력을 갖게 된다. 소통이 잘 되면 우리는 힘을 느낀다. 그런데 그 힘은 바로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제각기 제 잘 낫다고 우기지 않고,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서 나갈 때 나오는 것이다. 만일 비슷한 것들과의 만남만을 고집한다면 이는 바로 소통의 힘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소통의 원리는 막힌 관계를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소통의 원리는 자기보다 상대방을, 말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같은 것보다는 다른 것을 볼 수 있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소통이 잘 된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