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역량 강화만이 미스매치 문제 해결 방안
중소기업 역량 강화만이 미스매치 문제 해결 방안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0.05.0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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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미루면 변화 비용만 커질 뿐
생산성 향상·노동의 인간화 함께 가야
Issue in Issue 강한 중소기업이 고용의 핵심이다 ②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 만들기
ⓒ 참여와혁신 포토DB

지난 3월 7일 현대경제연구원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취업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취업을 앞둔 3,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생 중 71%는 대기업에 취업을 희망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2008년을 기준으로 신규 고용보험 취득자 중 대기업 취업자는 13%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은 더하고 임금은 적게 받고

이 설문조사에서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는 대기업(71.3%), 중견기업(24.1%), 중소기업(4.6%)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학생들은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원인으로 ‘일자리가 없어서’(19.3%)보다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없어서’(75.6%)를 더 많이 지적했다.

일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임금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들 중 79.8%는 희망연봉으로 2,500만 원 이상을 제시했고, 특히 서울소재 대학생 중 34.6%는 3,500만 원 이상을 받고 싶다고 답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희망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08년에 새로 고용보험을 취득한 사람, 즉 신규취업자 중 대기업 취득자는 14만 명 수준으로 전체의 12.9%에 그쳤다. 나머지는 대부분 중소기업(77.1%)에서 고용보험을 취득했다. 중소기업의 일자리가 대기업 일자리보다 6배가량 많다는 뜻이다.

전국경제인총연합이 2008년 말 조사한 대졸신입사원의 평균연봉 2,440만 원도 대학생들의 희망과는 차이가 있었다.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임금이 평균 6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중소기업의 평균연봉은 대학생들의 희망연봉과 큰 격차를 보일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이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나듯이 구직자의 희망과 현실은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구직자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대기업에 취업해서 높은 연봉을 받기를 원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희망에 부합하는 일자리는 한정돼 있고, 대부분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중소기업의 일자리는 구직자들의 희망보다 낮은 수준이다.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인력기술연구실장은 이와 관련 “구직자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중소기업을 선택하는 사람보다 대기업에 취업하겠다는 이가 많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그런 희망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눈높이를 낮춰서 중소기업을 선택하는 구직자가 예전보다 많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구직자들은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을 선호할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임금이 낮고, 근로조건이 열악하며, 비전이 불확실하다는 점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통계청이 조사한 매월노동통계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은 300명 이상 대기업보다 더 오랜 시간 일하면서도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있고, 월 평균 근로시간도 대기업보다 길다. 더구나 1993년과 2007년을 비교하면 2007년에 격차가 더욱 커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비전 역시 불안정하다. 현재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대부분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협력업체인 상황에서 독자적인 기술이나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대한 납품이 중단되거나, 커다란 기술적 변동에 따라 기존의 기술이 경쟁력을 잃게 되면 당장 생존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지난해 쌍용자동차 협력업체들이 겪었던 어려움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쌍용자동차가 휘청거리자 여기에 납품하던 중소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졌다. 쌍용자동차로부터 대금을 결제 받지 못한 대부분의 협력업체들은 속절없이 쓰러졌다. 그나마 부품을 자체적으로 설계해 생산할 능력이 있거나, 납품선을 다변화했던 협력업체들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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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자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특히 청년실업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중소기업이 일자리의 대안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중소기업의 고용흡수 능력이 대기업보다 더 크다는 점에서 이는 타당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빈 일자리를 구직자와 연결해 잡 미스매칭을 해소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중소기업의 인력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중소기업의 일자리의 질이 개선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고용지원서비스를 통해 그 자리를 새로운 인력으로 채운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 불확실한 비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자리의 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대·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를 줄이고,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며, 미래의 비전을 확실하게 제시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의 역량을 강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백필규 실장은 이와 관련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지금 당장 대기업의 60%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임금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대신 비전 있는 중소기업을 발굴해 구직자와 연결함으로써 열악한 근로조건을 보상하는, 이른바 생애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비전 있는 중소기업을 발굴하는 것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이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는 중소기업이 최대한 성장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작업환경에서부터 작업방식, 노동자의 참여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과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대기업 위주로 구축돼 있는 산업구조 전반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이런 변화의 과정이 단기간에, 그리고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거치지 않고는 현재의 상태가 더욱 고착화될 뿐이다. 지난 수년 동안 대기업을 중심으로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수직계열화 된 산업구조가 정착됐고, 이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더욱 확대됐다.

소수의 ‘강소기업’을 제외하면 중소기업은 취업의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스스로 선택하는 일자리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일자리였다. 지금 이런 고리를 끊어내지 않는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의 과정은 더욱 큰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노동

중소기업이 이처럼 체질을 개선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성원 모두가 변화의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ERP(전사적 자원관리), 6시그마 같은 혁신활동 프로그램을 도입해 시행했다.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기업들도 있지만, 많은 기업들에서는 혁신활동이 또 하나의 업무로 인식되면서 중단되거나 유명무실해졌다.

대다수 기업들에서는 전담부서를 만드는 등 의욕적으로 혁신활동 프로그램을 시행했지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기업들은 혁신활동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기업들에서는 구성원들이 혁신활동의 필요성에 공감하기보다 기존 업무에 혁신활동이라는 또 하나의 업무가 더해졌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구성원이 참여하지 않는 혁신이나 변화는 성공하기도 어렵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다.

구성원의 참여와 함께 중요한 것이 변화의 방향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변화, 다시 말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변화가 아니면 굳이 변화해야 할 필요가 없을 수 있다. 반면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생산성 향상이 무조건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면 참여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변화는 생산성을 끌어올려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업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 과정은 또한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변화과정을 주도하면서, 안전하고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노동생활의 질을 높이고, 동시에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이 이 같은 변화에 성공한다면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선택하는 일자리가 될 것이다.

이런 중소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관계 당사자 모두가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정부는 제도적으로 중소기업의 변화를 뒷받침하고 이런 사례를 발굴해 공유할 수 있도록 충실하게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이 과정은 대·중소기업 간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중소기업 노동자들 역시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하에서는 이 같은 변화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고, 각 주체들에게 필요한 점은 무엇인지 살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