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대지 말고 남 탓 하지 마라
핑계 대지 말고 남 탓 하지 마라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0.05.0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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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싶은 중소기업, 경제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기술개발·인력육성·작업장혁신에 투자하라
Issue in Issue 강한 중소기업이 고용의 핵심이다 ④ 변해야 산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일자리 문제를 풀기 위해서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의 역량을 키워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중소기업이 튼튼해야 경제의 허리가 튼튼하다는 주장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동안 대기업 위주로 경제규모를 키워왔다면 이제는 규모에 걸맞은 튼튼한 체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 함께 변해야 한다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드는 과정은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과 맞물려 있다. 이 과정이 말로 하는 것처럼 쉽지만은 않다. 수십 년 동안 이어져왔던 경제구조를 전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끌어내는 데만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는 대기업을 중심에 두고 모든 정책과 방향을 결정해 왔다. 경제구조 역시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수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업체 또는 부품업체로 경제구조에 편입돼 있다.

이런 경제정책과 구조 아래서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대기업이 하지 않는 일을 고유의 사업영역으로 가지고 있거나,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이 아닌 이상,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대등한 위치에 서기는 쉽지 않다. 이런 구조가 유지되는 한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고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중소기업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적용하는 것은 대다수 중소기업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 당장 그에 필요한 재원부터 마련하기 쉽지 않을 뿐더러, 어렵사리 변화를 시도할 여건을 만들어도 온갖 장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만의 노력으로 이런 장벽들을 넘어서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각 경제주체 모두가 변화의 방향에 동의하고 함께 노력할 때 비로소 변화를 위한 첫 걸음을 뗄 수 있다.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들기 위해 각 경제주체들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 참여와혁신 포토DB

정부, 중소기업을 정책의 중심으로

이 변화는 경제의 정책과 방향의 수정을 필요로 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과 방향을 중소기업 육성으로 전환하고 나면, 그에 따른 제도를 마련하고 실제로 정책이 시행될 수 있게 추진하는 일은 정부의 몫이다.

우선 대기업 중심의 경제를 보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중소기업 관련 정책을 전체 경제정책의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한정된 자원을 소수의 대기업에 집중 지원해 왔으며, 그 결과로 대기업은 고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

이런 대기업 중심의 성장이 경제 전체의 성장을 이끌던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 지난해 소수의 대기업은 사상최대의 실적을 올리며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지속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경제는 여전히 위기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외형적으로 보이는 경제지표는 개선되고 있지만, 경제회복은 경제지표가 개선되는 만큼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대기업을 중심의 경제정책만으로는 경제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경제정책의 중심에 중소기업을 두고, 고용과 성장, 경쟁력 등 주요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도 중소기업에 대한 고려가 우선시돼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이 통합돼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을 주요하게 추진하는 중소기업청이 있지만, 각 부처별로 중소기업 정책이 산재돼 있다. 고용과 금융, 재정, 산업, 복지 등 각종 정책이 중소기업에 영향을 미치지만, 이들 정책은 주관하는 부처에 따라 중소기업에 대한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따라서 중소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부처별로 혼선을 빚거나 중복되기도 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각종 정책이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조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중소기업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와 관련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에 편중된 인력과 기술, 자본 등 자원을 다시 배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에 자원이 부족하게 투입됨으로써 중소기업은 낮은 생산성과 낮은 이윤, 그에 따른 저투자와 자원의 투입의 부족이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고용과 기술, 성장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자원배분의 격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각종 자금지원이나 제도적 지원, 고용지원서비스 강화 등을 통해 인력과 기술 등 자원이 균형적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종업원 규모가 300명을 넘어서는 순간, 기업은 지원대상에서 규제대상으로 바뀐다”는 중소기업들의 항변에 대해서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심지어“ 중소기업으로서의 지원혜택을 잃지 않기 위해 신규인력이 필요하지만 채용을 미루고 있다”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기준을 현실적으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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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공정거래 정착시켜야

지난 4월 14일, 중소기업중앙회 회의실에서는 중소기업 관계자들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간담회가 열렸다.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고 정책결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간담회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려면 공정한 거래관행이 정착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대기업에 납품하는 많은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이 납품단가 인하 압력을 중단해야 한다고 호소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은 그런 압력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제조업의 경우 중소기업은 독자적인 기술력이나 설계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단순 가공에 머무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에서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납품단가를 인하하는 것이 원가절감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중소기업의 체력약화로 귀결된다. 중소기업의 체력이 약화되면 대기업은 모든 작업을 직접 담당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된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따라서 대기업은 비밀 보호가 필요한 핵심기능과 업무가 아닌 이상 중소기업에 기술을 전수하고, 납품단가 등을 통해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는 단기적인 실적의 척도로는 수익성이 낮아지는 결과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통한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성장을 위한 투자인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담당하는 것이 적절한 업종에 대해서는 진출을 자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지식경제위 간담회에서는 “대기업 계열의 유통회사들이 SSM(기업형 슈퍼마켓)을 통해 골목상권까지 장악하려 한다”는 비판과 함께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이와 관련 이문호 노동혁신연구소장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에 진출하는 것은 날로 불확실해지는 경영환경에서 검증된 사업영역으로 투자를 확대하려는 시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새로운 영역과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요컨대 위험요인이 있더라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기업가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고유업종으로 인식됐던 분야에 대기업이 진출하는 것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중소기업의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자제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개척하는 데 역량을 투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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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스스로 변해야

중소기업 역시 변화의 당사자인 만큼 적극적으로 변화를 주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중소기업이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다는 점은 무수히 많이 이야기됐다. 하지만 그런 열악한 조건이 역으로 중소기업에게 핑계거리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중소기업이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에 대해, 대다수 중소기업은 정부의 미흡한 지원과 대기업 위주로 경제구조를 탓하기 바빴다. 물론 정부의 지원이 미흡했고 경제구조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구축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소기업들 중에는 이른바 ‘가젤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초원을 박차고 높이 뛰어오르는 가젤처럼,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 고성장을 이루고 있는 기업들이 가젤기업들이다.

가젤기업이라고 해서 특별히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똑같이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다. 그들이 고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환경을 탓하고 경제구조를 탓하는 데서 벗어나 미흡한 자원을 쪼개 쓰려는 노력이 놓여 있다.

모든 중소기업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만 중소기업 스스로도 모든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고 남을 탓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현재 있는 조건에서 가능한 일을 시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와 노력이 바탕이 되고, 앞서 이야기했던 정부와 대기업의 변화가 더해졌을 때 비로소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정된 자원이라도 해서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다면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가젤기업들은 각각 분야는 다르지만 끊임없는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이 투자를 통해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개발했을 때, 정부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울러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자금지원 등을 활용해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적정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근로조건이 열악하고 적정한 수준의 임금 등 보상이 미흡하면 인력을 확보할 수 없다. 많은 중소기업들에서 이직률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런 요인에서 기인한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근로조건 등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인력기술연구실장은 여기에 더해 ‘인력육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술과 함께 이를 구현할 기술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고성장 기업들의 핵심 성장요인”이지만 “현실에서는 투자여력이 부족하고, 인력을 육성해도 이직해버리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인력육성을 기피한다”고 진단했다. 백필규 실장은 “인력육성에 대한 투자를 통해 기술력을 축적하고 종업원에게 비전을 주는 중소기업을 ‘인력육성형 중소기업’으로 지정해 정책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만큼 구성원들의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앞서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의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개별 구성원들의 노력이 없다면 정책과 제도, 환경의 변화로 이룰 수 있는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는 만큼 이런 변화에 맞춘 구성원들이 변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