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부터 갈린 노사, 면제한도 어떻게 결정될까?
원칙부터 갈린 노사, 면제한도 어떻게 결정될까?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0.05.0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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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못하고 공익위원 결정 수순 밟을 듯
노, 현행 근접한 면제한도 … 사, 시간·인원 함께 제한
[현장] 근로면제심의위원회 논란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해 연말부터 숨가쁘게 이어진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가 결론을 향해 치닫고 있다. 1라운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을 둘러싼 노사정의 논란이었다면, 국회에서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으로 2라운드가 끝났다. 그리고 근로시간면제한도를 둘러싸고 노사정이 3라운드 혈전을 벌이고 있다.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긴장과 갈등의 4라운드가 진행되겠지만, 3라운드가 끝나면 어느 정도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23일, 2달 가까이 진행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이하 근심위) 논의에서 노사가 각각 요구안을 제출했다. 근로시간면제한도를 규정하는 이 요구안은 제도에 대한 노사의 인식만큼이나 커다란 격차를 드러내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만이 요구안을 제출했다. 민주노총은 “전임자 문제는 노사자율로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며, 근로시간면제한도를 몇 시간 더 따내는 것이 아니라 개악된 노조법 자체를 재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에 따라 요구안을 제출하지 않았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의제마다 대립각 세운 노사

노동계와 사용자의 요구안은 우선 원칙에서부터 입장을 달리한다. 노동계는 근로시간면제제도는 유급 노조활동 시간의 총량을 설정하는 것이지 인원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는 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유급 노조활동 시간 외에 설정된 한도를 사용할 인원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유급으로 인정되는 노조활동의 범위 역시 제한적으로만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근로시간면제한도의 설정 기준에 대해서도 노사는 입장을 달리한다. 노동계는 기본적으로 조합원 수를 기준으로 면제한도를 설정한 뒤에 사업장 수, 근무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총량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영계는 조합원 수를 기준으로 하고, 반영되는 특성을 최소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근로시간면제의 대상이 되는 업무의 범위에 대해서도 노동계는 쟁의행위와 상급단체 파견 등 포괄적인 개념에서 노조의 일상활동 모두가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법에서 규정한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업무’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일상활동 모두를 포함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그러나 경영계는 이들 모두를 배제하고 노사의 이해관계가 공통되는 업무에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경영계가 제시한 요구안은 노동관련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섭, 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활동, 사내복지기금 업무와 노조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노동조합 관리업무 중 총회, 대의원회의, 임원선거, 회계감사 업무만을 대상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적용 대상자에 대해서도 노동계는 대의원 등 비전임자에게는 근로시간면제한도가 적용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반면, 경영계는 노사협의 근로자위원, 산업안전위원 등의 활동 역시 포괄적으로 근로시간면제한도에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영계가 요구안에 포함하고 있는 ‘사용계획 제출 의무화’ 조항도 논란거리다. 경영계는 요구안에서 유급 근로시간면제한도 사용계획을 연 단위로 사용개시 3개월 전까지, 구체적인 사용내역과 사용자 명단 및 시간은 월 단위로 사용개시 15일 전까지 제출토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구체적인 노조활동에 대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사전적 개입을 의결하자는 주장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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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안대로라면 면제한도 얼마나 될까?

이와 같은 노사간의 입장 차이는 경영계와 한국노총이 제출한 요구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한국노총은 전임자 1명의 연간 소정실근로시간을 2,100시간으로 보고, 이를 바탕으로 조합원 규모별 면제한도를 제출하고 있다. 여기에 사업장의 특성에 따른 추가 면제한도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한국노총의 요구안은 현재의 전임자 수에서 감소 규모를 최소화한 수치를 시간으로 환산해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노총은 조합원 규모에 따라 300명 미만 1,050~6,300시간(인원으로 환산할 경우, 이하 같음, 0.5~3명), 300명 이상 1,000명 미만 10,500시간(5명), 1,000명 이상 5,000명 미만 27,300시간(13명), 5,000명 이상 10,000명 미만 48,300시간(23명), 10,000명 이상 48,300시간+조합원 1,000명당 2,100시간 추가(23명+조합원 1,000명당 1명 추가)를 기본적인 면제한도로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사업장의 특성에 따라 사업장이 3개 이상이거나 2개 이상의 광역시도에 걸쳐 분포돼 조합원이 분산된 경우 50% 추가 면제한도 부여, 조합원의 50% 이상이 교대제로 근무할 경우 50% 추가 면제한도 부여, 전체 종업원 중 조합원을 제외한 종업원 수에 대해 해당 숫자에 해당하는 기본면제한도의 30% 추가 면제한도 부여를 요구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조합원은 45,146명이고 종업원은 55,984명(이상 2009년 임·단협 찬반투표 총원 및 회사공시자료)이며, 전체 조합원의 절반 이상이 주야맞교대 또는 3교대 근무를 하고 있고, 울산, 전북, 충남에는 생산공장이, 경기도에는 연구소가, 전국의 각 시도에는 대리점 및 정비사업소가 분산돼 있다.

이 경우, 기본 면제한도는 10,000명에 해당하는 48,300시간과 35,146명에 대한 73,500시간을 합한 121,800시간(인원 환산 시 58명)이 된다. 또 조합원이 전국에 분산돼 있으므로 50% 추가 면제한도가 적용돼 60,900시간(29명)이 추가되며, 교대근무에 따라 60,900시간(29명)이 추가된다. 마지막으로 전체 종업원 중 조합원이 아닌 10,838명에 대해 기본 면제한도인 50,400시간의 30%인 15,120시간(7.2명)이 추가된다. 이를 모두 합하면 연간 258,720시간(123.2명)이 근로시간면제한도가 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이에 비해 경영계는 시간과 인원을 동시에 제한하는 요구안을 제출하고 있다. 경영계는 조합원 수를 기준으로 50명 미만 200시간(인원 환산 시 0.1명), 50명 이상 100명 미만 300시간(0.14명), 100명 이상 200명 미만 500시간(0.23명), 200명 이상 300명 미만 600시간(0.29명), 300명 이상 1,000명 미만 1,000시간(0.48명), 1,000명 이상 5,000명 미만 2,000시간(0.95명), 5,000명 이상 6,000시간(2.86명)을 연간 근로시간면제한도로 제시했다. 여기에 면제한도를 사용할 인원을 200명 미만 5명, 200명 이상 1,000명 미만 10명, 1,000명 이상 2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앞서 예로 든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5,000명 이상 사업장이므로 연간 6,000시간의 근로시간면제한도를 가지게 된다. 인원으로 환산하면 2.86명이며, 이 6,000시간을 20명 이내의 인원에게 1년 동안 배분해 사용해야 한다. 나아가 경영계가 요구한 사용계획서 제출 의무에 따라 매년 9월 말까지 다음해 전체 사용계획을, 매월 15일까지 다음달 구체적인 사용내역과 인원 및 시간을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이 사용계획서에는 교섭, 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사내복지기금, 총회, 대의원회의, 임원선거, 회계감사 외의 업무는 포함될 수 없다.

▲ 노동계 및 경영계 근로시간면제한도 요구안 비교

현장 혼란은 피하자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이처럼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월 5일자 <한국경제신문>에는 이와 관련된 의미 있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타임오프제 시행되면 대기업 전임자 최대 50% 줄 것’ 제하의 기사는 이 신문과 한국노사관계학회가 전국의 노사관계 당사자 812명을 대상으로 공동 실시한 ‘전임자 및 복수노조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싣고 있다.

이 신문은 “종업원 1,000명 이상인 큰 기업일수록 노조전임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며 “(조사 대상) 기업의 노사관계자 48.2%(300명 25.3%, 500명 22.9%)가 조합원 300~500명당 1명이 적당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20.5%는 조합원 200명당 1명을, 14.5%는 1,000명당 1명을, 13.3%는 100명당 1명을 적정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 박석모 기자 smpark@laborplus.co.kr

특히 이 기사는 “사용자 측 조사 대상자의 10명 중 6명(62.2%) 이상이 조합원 500~1,000명당(37.8%는 500명, 24.4%는 1,000명) 1명이 적정하다고 대답했다”는 점도 밝혔다. 300명(20.0%), 200명(8.9%), 100명(6.7%)이 그 뒤를 이었다.

노조 규모에 따른 적정 전임자 수는 300명 미만 사업장의 경우 100명당 1명(47.2%), 200명(20.3%), 300명(14.4%) 순이었으며, 300명 이상 1,000명 미만 사업장은 200명(39.2%), 100명(33.3%), 300명(15.7%), 500명(9.8%) 순이었다.

주목되는 것은 다수의 노사관계 당사자들이 종업원 1,000명 이상 대기업의 경우에도 300~500명당 1명의 전임자를 적정 수준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현재의 전임자 수를 줄이되 대기업일수록 더 많이 줄여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급격한 감소로 인한 현장의 혼란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워낙 현격하게 갈리는 만큼 합의에 의해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근심위 운영규정에 따르면 표결로 처리할 수 있지만, 격한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표결처리를 강행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결국 이 문제는 공익위원들이 국회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 안팎은 지금 3라운드의 결론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4라운드의 양상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