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경중은 다르지 않다
죽음의 경중은 다르지 않다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05.0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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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에 침몰했던 천암함의 함미가 인양되던 날, 전 국민의 눈과 귀는 인양과정에 쏠려 있었고 46명의 미귀환 장병들 중 36구의 시신이 함미에서 발견됨으로서 국민들은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냈어야 했습니다.

이날 회사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갔더니 2호선 신도림역에서 인사사고가 발생해 지하철 운행이 잠시 중단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열차를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은 ‘더 기다려야 하나, 아님 버스를 타야 하나’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이들의 짜증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죽으려면 다른데서 죽던가, 왜 기차에 뛰어들고 난리야.”
“죽으면서까지 이래저래 민폐 끼치고 있네.”


사실 이 사고는 서울메트로 직원이 지하선로 보수 중 역으로 진입하는 열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퇴근시간에 하릴없이 열차만을 기다리는 입장에서야 답답하고 원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사람 목숨을 그렇게까지 이야기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더구나 그날은 36명의 젊은 청년들이 시신이 발견된 날이라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 목숨에 경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천안함에서 희생된 장병들도, 선로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다 사고를 당한 이름 모를 그 사람도 모두 귀중한 목숨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회는 사람 목숨에 경중을 매기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천안함 인양 과정에서 침몰한 금양호의 경우 아직까지 인양도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금양호 유가족들이 오죽 답답했으면 천안함 순직 장병 애도기간에 세종로 청사로 항의방문을 했다고 하니 어찌 목숨의 경중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3월 31일,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앓던 스물 세 살의 박지연 씨도 한 많은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고3 때부터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3년 만에 백혈병으로 쓰러진 고 박지연 씨는 끝내 산재판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죽음으로 삼성반도체에 근무했던 노동자 중 확인된 사람만 8명이 사망했습니다. 공장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이’ 말입니다. 삼성반도체는 재빠르게 트위터를 통해 애도를 표하며 작업 현장 공개까지 했습니다. 기자들에게만 공개됐고, 기자들도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만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람 목숨에 경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나 봅니다. ‘산업 역꾼’이라 칭송되던 노동자의 목숨은 대단히, 대단히 가볍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지방이양을 결정한 대통령 직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의 결정은 이러한 생각에, 씁쓸하게도 힘을 보태주더군요.

46명의 천안함 순직 장병들과 금양호 실종 선원, 고 박지연 씨, 산재로 희생된 이름 모를 노동자들, 업무 중 돌아가신 서울메트로 노동자 분께 삼가 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