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시각화로 꿈을 향해 더 가까이 나아간다
꿈의 시각화로 꿈을 향해 더 가까이 나아간다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05.0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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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라는 꿈을 위해 다른 사람의 꿈을 그려준다
“꿈을 위해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려라”
드림페인터 박종신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무슨 CF 카피 문구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사람이 만나자마자 던지는 질문이 이렇다면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아, 내 꿈은 이것 입니다” 혹은 “이것이었습니다”라고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독자들은 이 글을 읽으면서 바로 내 꿈은 이것이라고 답할 수 있는가? 그런데 실제로 이런 질문을 서슴없이 던지는 사람이 있다. 자신을 드림페인터(Dream Painter)라 칭하는 박종신(38) 씨가 바로 그다.

드림페인터는 한마디로 꿈을 그려주는 사람이다. 단순히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꿈을 시각화함으로서 꿈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는 이지성 씨의 <꿈꾸는 다락방>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그 책은 ‘생생하게(VIVID) 꿈을 꾸면(DREAM) 이루어진다(REALIZATION)’는 R=VD 법칙을 통해 꿈은 구체화할수록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박종신 씨는 꿈을 시각화하는데 그림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인물화의 배경으로 그 사람의 꿈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정작 나는 나의 꿈을 좇아 왔었나

그를 만나러 남양주에 위치한 그의 자택이자 작업실을 방문했다. 허름한 연립주택 3층의 출입문 바로 앞 조그만 방이 그가 사람들의 꿈과 교류하는 작업실이다. 작업실에는 그동안 그가 그렸던 작품들과 함께 현재 진행하고 있는 ‘백인몽(百人夢) 프로젝트’를 위한 다양한 신문 스크랩과 책들이 널려 있었다.

그 공간은 언뜻 보기에도 작업실이라고 하기 보다는 그냥 공부방 정도로 허름했다. 그는 그림을 그려주고 돈을 받지 않는다. 그림을 받았을 때 너무나 기뻐하던 상대방의 모습을 보며 기쁨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그는 왜, 아내와 6살짜리 딸을 둔 가장으로서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무일푼의 삶을 시작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에 대해 그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어요. 다만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것(월급, 수입 등)과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을 비교해 봤을 때 어떤 것을 희생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저야 벌어 놓은 것이 조금 있어 괜찮지만 오래 가진 않겠죠?”하고 웃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내 이학선 씨와 충분한 대화를 가졌던 것은 당연하다.

박종신 씨가 이렇게 꿈을 좇게 된 이유는 그 또한 꿈을 좇아 오랜 시간을 돌아왔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화가나 만화가가 되기 위해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원했다. 그러나 당시 예술고등학교를 일명 ‘날라리’ 집합소로 알고 계셨던 부모님의 반대로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때도 정식으로 미술을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틈나는 대로 낙서도 하고 그림을 그려 친구에게 주기도 했던 그는 대학 진학 과정에서 일문과를 선택하게 된다. 이때도 부모님의 권유였다고 하니 그도 어지간히 부모 마음에 상처주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나 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는 “부모님께서 미술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일어를 공부해 나중에 일본 가서 디자인 공부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조언을 하셔서 어린 마음에 그런 것 같기도 해 1991년 경성대 일어일문과에 입학을 했다”고 말했다. 대학 재학 시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를 보기보다는 미술관에서 몇 시간씩 그림 감상을 즐겼던 그는 그림에 대한 욕구를 지우지 못했다.

“나쁜 예이지만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은 머릿속에서 도박판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좋아하는 것이 마음속에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찾아가게 되더라구요.”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교수의 소개로 삽화 작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출판 삽화에 관심을 가졌지만 입사했던 출판사 삽화부에서 선배도 없이 혼자 일하다 헛심만 빼고는 출판사를 그만두게 된다. 컴퓨터 그래픽을 공부하며 컴퓨터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입사했던 웹디자인 회사에서는 공장에서 물건 뽑듯 틀에 박힌 디자인에 지쳐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일단 먹고는 살자는 생각에 여러 직장을 전전했지만 그림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지 않았다.

인생의 전환, 그리고 도전

직장을 전전하던 박종신 씨가 마지막으로 다녔던 직장은 방진복 등을 만들던 회사의 웹디자이너였다. 그렇지만 이 직장에서도 그는 e-비지니스 러닝, 홈페이지 관리 등을 담당하며 그림과는 조금 먼 일을 했다. 그런데 당시 방진복을 구입했던 어떤 회사의 옷에 담당자들의 얼굴을 그려 넣어 전달했는데 마치 어린이들처럼 옷을 입고 좋아하는 그들을 보며 박종신 씨는 작은 감동을 느꼈다.

이후 영업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얼굴이 들어간 그림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다보니 배경이 너무 밋밋했다. 그때 읽었던 책이 바로 이지성 씨의 <꿈꾸는 다락방>이었고 꿈을 시각화해서 배경에 담아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연인들의 그림에 자신의 꿈인 달나라 여행 배경을 삽입하면서 드림페인터로서의 시작을 알렸다.

“당시 꿈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으셔서 그냥 제 꿈을 그려 넣었어요. 드림페인터로서 첫 작품은 아니었지만 기억에 남네요.”

남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에서 살짝쿵 감동을 받아가던 시간이 점차 흐르자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한 그를 밀쳐냈던 것은 바로 회사 선배였다. 서로의 고민을 흉금 없이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던 선배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정말 간절하게 원한다면 벌써 그것을 했을 거야. 주저하는 것을 보니 정말 간절하지 않은 것 같은데? 삶에 있어서 한번 정도는 모든 것을 놔버리고 진정 원하는 것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텐데 내가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그것을 하겠다.”
박종신 씨는 다음날 사표를 내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작정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단지 그림쟁이가 아닌 꿈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

“꿈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대개 3가지 반응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나의 꿈은 이것’이라고 바로 대답하는 사람, 극히 소수죠. 다음에는 한참 고민하다가 ‘이런 꿈이 있었죠’하는 사람. 그리고 ‘지금 사는 게 좋아요. 다른 꿈은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

박종신 씨는 이들의 태도를 통해 꿈을 향해 준비하는 사람과 꿈이란 단지 추억의 일부분이라고 여기는 사람,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고 여긴다. 반면 이들 모두를 통틀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자신의 꿈도 만들어가면서 상대방의 꿈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드림페인터란 역할을 선택한 것이다. 꿈은, ‘Dreams Come True’는 단지 월드컵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단지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도 자신의 꿈을 다시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소를 찾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지 아니한가.

“어느 공무원과 술자리 기회가 있었는데 꿈에 대해 물어보니 한참 고민하시더니 원래 꿈은 전투기 조종사였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먼 곳을 응시하며 ‘하늘을 날고 싶었다’고 말하며 지금도 민간 비행조종사의 꿈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런데 그 말씀을 하실 때 눈을 보니 너무나 반짝반짝 광채나는 눈빛을 하고 계시더라구요. 그 짧은 상상의 순간만큼 행복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저 또한 기쁘더라구요.”

상대방과 내가 꿈을 공유하고 이를 시각화해 꿈을 향한 발걸음을 한 발 더 내딛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꿈의 동반자(Dream Mate)이며 그 꿈은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을 줄 수 있다고 여기는 그는 기자에게 하나의 그림을 보여줬다. 어떤 어머니가 딸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의뢰한 그림인데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인 딸에게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 노력하라는 의미의 그림이었다.

“어머님 말씀이 딸에게 항상 미안하시다고 하데요. 많은 도움을 못 줘서. 그래서 딸의 꿈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의뢰했다는 그림인데 잘 그렸는지 모르겠어요.”

그림으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림을 통해 서로의 마음에 고마움이 물든다면, 잠깐이나마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는 그의 그림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꿈을 위해 버려라

박종신 씨가 직장을 버리고 꿈을 좇아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기로 한 것처럼 모든 것을 다 싸안고 꿈을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당장 TV부터 끄라고 말한다.

“뇌의 용적량은 한계가 있어요. 빈자리를 만들어줘야 꿈도 자랄 수 있는 공간이 생기죠. 먹고 사는 문제, 욕망 등이 자리를 차지하면 꿈에 대한 생각이 줄 수밖에 없죠. TV시청 시간을 줄여서 가족과 이야기해보세요. 당연히 처음에는 어색하죠.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세요. 또 다른 자신과 또 다른 가족이 만나게 될 거예요.”

현재 그는 자신의 블로그(http://dreampainter.co.kr)에 위인 100명의 꿈을 그리는 ‘백인몽(百人夢)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시대를 앞서 갔던 사람들의 꿈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기 위해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여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 또한 ‘꿈을 향한 노력’이라고 말한다.

꿈을 꿀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아무나 꿈을 행동에 옮기지는 못한다. 항상 머릿속에 꿈을 그리고 꿈을 향해 노력하는 자만이 꿈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웃는 얼굴이 서글서글한 드림페인터 박종진 씨는 꿈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고, 아마도 자신의 꿈에 가장 근접한 인물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