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주워 담는 사람들의 하루
희망을 주워 담는 사람들의 하루
  • 위성수 기자
  • 승인 2005.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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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줍지만 내 마음과 양심은 쓰레기가 아니다”

“평상시에도 월요일에는 쓰레기가 많지만 봄·가을이사철에는 넘쳐나는 게 쓰레기.”
“나도 일하면서 말끔하게 정리한다고 하고 대로변은 나중에 한번 더 가서 치우거든. 그래도 더럽다고 민원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하겠어.”
“젊은 사람들이 어른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힘든 일 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이 시간에 인사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힘들게 하루, 하루 보내는 사람들이지. 잘 사는 사람은 이 시간에 밖에 나오지도 않아.”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는 점에 항상 감사하지.”

 

청년 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최근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환경미화원 선발에 대학 졸업자는 물론, 석사학위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도 공무원 신분의 환경미화원에게 한정된 이야기다. 민간업체에 소속된 환경미화원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이다. 적어도 자치단체 소속 환경미화원들은 ‘신분’이 보장되기 때문에 지원자가 폭주하는 것이다. 용역업체 소속 환경미화원들에게 이른바 ‘청소부’는 여전히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그래서 사람들이 외면하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일이 있어 기쁘다”고 말하며 지저분한 쓰레기봉투를 주워 담는 이들은 오늘도 거리를 누빈다.

 

새벽을 가르는 사람들


경기도 부천의 한 민간업체에서 쓰레기 수거차량을 운전하는 조재일(57)씨. 대부분 사람들이 꿈속을 헤매는 새벽 5시에 길을 나서는 ‘거리의 청소부’다. 아침을 거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조씨는 도시락 하나를 챙겨들고 새벽 공기를 가르며 집을 나섰다. 회사에서 식대가 나오지만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도시락을 먹는다고 한다.


3인 1조로 진행되는 쓰레기 수거는 오후 3시까지 계속된다. 물론 월요일처럼 쓰레기 양이 많은 날이면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끝나기 일쑤지만 말이다. “평상시에도 월요일에는 쓰레기가 많지만 봄·가을 이사철에는 넘쳐나는 게 쓰레기”란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쓰레기가 삶의 밑천이다.


“남들은 불필요하고 더러운 쓰레기라지만 우리에게는 소중한 자산이야. 수거한 양만큼 돈이 되니까 그냥 ‘쓰레기’가 아니지.”


추운 겨울에는 골절상에, 여름에는 무더위와 소낙비 속에서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서도 일을 나온다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상쾌한 거리를 거닐고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기피하는 쓰레기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찾는 조씨의 일상은 보통의 일터와 다름 없다. 하지만 우리들의 비뚤어진 시선이 짐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치워도 치워도…


조씨와 같은 환경미화원들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끊이지 않는 민원이다. 새벽부터 서둘러 나름대로 깨끗하게 쓰레기를 치운다고 주워 담지만 쓰레기가 쌓여 있다거나 집 앞이 더럽다는 민원이 많다는 것이다. 주 1회 하는 사내 교육시간이면 시, 구청에서 접수된 민원이야기에, 청소 마무리 잘 하라는 말이 대부분이다.


“나도 일하면서 말끔하게 정리한다고 하고 대로변은 나중에 한번 더 가서 치우거든. 그래도 더럽다고 민원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하겠어.”


특히 새롭게 조성되는 주택가는 민원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동네이다. ‘잘 사는 동네’일수록 까탈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들의 잘못은 생각하지 못한다. 쓰레기 배출시간이 아침 6시까지로 정해져 있지만 자신들이 ‘편한 시간’에 쓰레기를 내 놓고서는 치우지 않는다고 성화를 부리는 것이다. 절약도 좋지만 쓰레기봉투가 넘치도록 채워 넣고 제대로 묶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길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기라도 하면 주변이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또 주민이나 행인들이 쓰레기봉투가 쌓여있는 곳에 다른 쓰레기들도 봉투에 담지 않은 채 ‘불법 투기’ 하는 경우도 잦다.


결국 환경미화원들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생각이 부족한 것이다. 물론 이들이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업무이긴 하지만 좀더 편리하게 합리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주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직업의 귀천이 사라졌다고 얘기하지만 아직도 뿌리 깊은 직업 천시가 남아 있다. 거리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을 단지 ‘그들만의 일’로 취급해 버리는 것이다.


프랑스 환경미화원 파업 때, 프랑스의 각급 학교에서는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에 보도되는 지저분한 거리풍경 장면을 놓고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환경미화원들이 청소를 하지 않음으로 해서 거리가 얼마나 지저분해지는지에 대해 교육하면서 이들의 업무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쓰레기 속에 양심마저 함께 담아 버리는 우리 현실을 되돌아볼 때이다.

 

평생 쓰레기나 치우고 살라고?


그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환경미화원인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행동이다. 좁은 골목에 수거 차량을 몰고 들어가다 보면 차량 소통을 막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럴 때면 이해하고 기다려 주는 사람도 있지만 가끔 젊은 사람들이 욕하고 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들보다 젊은 사람들이 “평생 쓰레기나 치우고 살라”며 손가락질하고 지나가는 날이면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환경미화원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아직까지 차갑기만 한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어른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힘든 일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의 인심도 많이 박해졌다고 한다. 명절 때면 동네 사람들이 작은 선물 하나씩 건네주곤 했는데 쓰레기 종량제가 시작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지금 이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양말 한 켤레’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이다.


아버지의 청소 손수레를 함께 밀며 환한 웃음을 짓는 환경미화원 부자의 모습은 광고 속 박제된 모습일 뿐이었다. 현실은 그들을 저 밑바닥으로 분류해 놓고 손잡지 않으려는 것이다.


과부가 홀애비 마음 알지


그래도 조씨는 “고생한다”며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다시 한번 기운을 차려본다. 10여년 청소차를 몰다보면 비슷한 시간대에 만나는 익숙한 얼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새벽에 파지를 줍는 노인들, 뜬 눈으로 날을 새운 경비들, 아침 장사를 준비하는 식당 종업원 등은 작은 정을 나누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이 시간에 인사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힘들게 하루, 하루 보내는 사람들이지. 잘 사는 사람은 이 시간에 밖에 나오지도 않아.”


가끔 식당 종업원들이 커피를 타서 건네주는 날이면 쑥스럽기도 하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개인적으로는 남들이 건네주는 음료를 반기지 않는 조씨지만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심정 안다고, 커피 한 잔의 고마움에 빙그레 웃음이 흘러나온다.
“과부가 홀애비 심정 안다고 하지 않나.”

 

내 마음과 양심은 쓰레기가 아니다


쓰레기 수거 차량을 몰고 좁은 골목길 돌기를 1시간 30여분 만에 차량 안에 쓰레기가 꽉 찼다. 월요일 아침, 주말에 밀린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보통 땐 3번 정도 소각장에 들어가지만 월요일에는 5~6번은 날라야 한다.


좁은 골목을 누비고 다니다 보니 하루가 끝나면 녹초가 되는 일상이지만 조씨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는 점에 항상 감사”하고 하루를 보낸다.


그는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남들이 보기에 좋은 일자리는 아니지만 몸만 건강하다면 불황기에도 쓰레기는 줄지 않기에 ‘짤릴 걱정’하지 않는 좋은 직종이라고 추천했다. 50대 후반의 나이에 연봉 2400만원이 많지 않은 돈이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소중한 돈이다. 자신의 일을 갖고 생활하는 것이 기쁘기 때문이다.


“비록 쓰레기를 줍지만 내 마음과 양심은 쓰레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대우를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다시 핸들을 잡는 조씨의 한마디가 오래도록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