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도 변해야 한다
노동자도 변해야 한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0.06.0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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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업·노동자의 변화가 삼위일체 이뤄야
돈벌이 수단 넘어 일하는 재미 느끼는 노동
Issue in Issue ① 노동자도 변해야 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지난 5월호에서 <참여와혁신>은 ‘강한 중소기업’이 고용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강한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과 당사자인 대기업, 중소기업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정부와 대·중소기업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노동자 역시 바뀌어야 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더라도 노동자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런 정책과 조건도 의미가 반감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노동자의 핵심은 창조적 노동

21세기는 흔히 지식산업사회라고 지칭되고 있다. 그리고 지식산업사회를 이끌어갈 주역은 골든컬러, 혹은 지식노동자라고 일컬어진다. 골든컬러는 원래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전문기술을 가진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부 전문가집단만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미국의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이들 지식노동자들이 생산영역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매우 크다는 점에 주목해, 이들이 지식산업사회를 이끌어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그는 지식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종속된 피고용자로서가 아니라,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기업들과 수평적인 계약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목되는 것은 이런 지식노동자들이 전문지식과 전문기술을 기반으로 창조적인 노동을 한다는 점이다. 창조적인 노동을 한다는 것은 주어진 노동과정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목표에 맞춰 노동과정을 변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비해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자인 블루컬러나 화이트컬러는 주어진 노동과정에 따라가는 형태의 노동에 익숙하다.

꼭 전문분야에서 전문지식과 전문기술을 가진 골든컬러가 아니더라도, 창조적인 노동을 고민하고 자신의 노동과정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블루컬러나 화이트컬러라면 지식노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의미에서 지식노동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 동진쎄미켐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에서 벗어나야

일하는 노동자들이 지식노동자로 변모하는 데에는 그가 참여하고 있는 노동과정을 고민하고 재조직하는 과정이 뒤따른다. 이를 통해 노동과정은 보다 효율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방향으로 끊임없이 개선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모습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노동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고, 가능하면 하지 않고 싶은 것일 뿐이다. 따라서 굳이 노동과정을 재조직해야 할 동기도 없을뿐더러 가능하면 일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노동은 그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단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기업들 역시 지식노동자보다 당장 기계를 돌려줄 노동자가 필요할 뿐이다.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을 재조직하는 과정은 귀찮고 돈이 들어가는 일이므로 달갑지 않다. 주어진 조건에 맞춰 일만 해주면 그만이다.

노동이 이처럼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창조적인 노동은 나와는 상관없는 ‘공자님 말씀’에 불과할 뿐이다.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노동이 아니라 노동을 통해 일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창조적인 노동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 동진쎄미켐
노동과정을 재조직하자

노동자가 일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깨끗하고 안전한 작업환경은 물론 적절한 후생복지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하고, 같은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해야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 작업환경이나 후생복지, 인간관계를 소홀히 한 채 단지 목표로 주어진 결과만을 달성하기 위해 일한다면 결코 일하는 재미를 찾을 수 없다.

다른 한편 주어진 노동과정에 걸맞은 적절한 숙련도를 확보하지 못한 노동자가 일에서 재미를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교육훈련을 통해 숙련을 향상시키고, 그에 알맞은 보상이 뒤따를 때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노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자가 노동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관건이다. 단순히 주어진 일을 처리한다는 의미에서의 참여가 아니라, 노동과정을 구성하고 재조직하는 데에 해당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주어진 노동과정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동과정을 구성하는 것은 그 자체로 창조적인 노동을 하는 지식노동자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이 과정을 통해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노동과정을 구성할 수 있다.

노동자가 이처럼 노동과정에 참여할 수 있으려면 제반 여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노동자 스스로 지식노동자로 변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과 정부의 노력이 뒷받침 될 때 이 같은 변화가 가능하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후생복지를 확충하며, 작업조직을 재구성하는 등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끊임없이 자기계발과 교육훈련을 통해 숙련을 향상시키는 데 따른 적절한 보상도 해야 한다. 모두 시간과 인원, 재원을 투자해야 하는 일들이다.

여력이 있는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투자가 가능할 수 있겠으나, 당장 수익을 내기도 어려운 다수의 중소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투자를 할 만한 여력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재의 상황을 반복하다가는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존재한다.

필요성과 현실 사이의 이 같은 간극을 개별 기업이 극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결국 이와 같은 투자를 뒷받침 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직·간접적인 재원 지원은 물론, 교육훈련 과정을 개설해 운영하거나 작업조직 개선에 대한 전문가의 컨설팅을 지원하는 등 해야 할 역할은 무궁무진하다. 가장 먼저 정책의 중심을 강한 중소기업 육성으로 전환하는 것에서부터 이런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 동진쎄미켐
변화의 시작은 교육훈련 활성화로부터

이런 변화가 이뤄질 때 중소기업이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월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이 늘어날 때 고용문제 역시 해결이 가능하게 된다.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그런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이와 관련된 수많은 의견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수많은 의견들 가운데에는 교육훈련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포함돼 있다. 교육훈련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의 능력을 개발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노동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은 교육훈련을 실시할 여력이 충분치 않다. 이 때문에 교육훈련도 양극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재원이나 인력, 시간에 여유가 있는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교육훈련도 더 많이 실시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교육훈련의 기회마저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고용보험기금으로 지원되는 교육훈련에 참가한 노동자 수는 300인 이상 사업장이 300만6,000명인데 비해 300인 미만 사업장은 194만3,000명에 그치고 있다. 전체 고용보험 피보험자 중 교육훈련에 참가하는 비율은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57%에 이르지만, 3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17%에 불과하다.

교육훈련을 활성화함으로써 지식노동자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교육훈련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변화는 곧 착취의 강화?
한편에서는 노동자들이 지식노동자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동자가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본의 착취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다. 이런 비판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날로 격화되는 경쟁체제 아래서 변화하지 않으면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들도 도태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자본과 노동자 사이에 누가 더 큰 몫을 차지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서 생존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된 것이다. 나아가 분배의 문제에 있어서도 단순기능직보다 전문가가 더욱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노동자의 변화가 고용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킬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현재 지식노동자로 지칭되는 이들이 대부분 ‘프리랜서’라는 점을 강조한다. 프리랜서들이 피고용자의 신분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현재 고용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지식노동자로 변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프리랜서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고용관계에서 노동과정을 재조직함으로써 보다 인간적인 노동을 실현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