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누군가
내 인생의 누군가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0.06.0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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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승립
1년 열두 달 중 행사 많기로는 5월이 최고봉입니다. 첫날 메이데이로 시작해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과 같은 필히 챙겨야 할 기념일들, 게다가 광주민중항쟁 기념일, 석가탄신일까지 이어집니다. 여기에 더해 오월의 신랑, 신부가 되고픈 이들의 결혼식까지 중간중간 있으니 무슨 날들만 챙기다 한 달이 다 간 기분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올해 5.18 때는 광주에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윤상원 열사 생가에 들러 윤석동 아버님을 뵙고 문안도 드리고 해야지 계획했는데 몇 달 후에나 가능할 듯 싶습니다. 다녀 온 후배 기자의 전언에 따르면 아버님은 다행히 건강하시다고 하네요.

전태일 열사 40주기 준비로 마음이 많이 쓰이실 이소선 어머님은 요즘 병치레가 잦으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울산에서도, 메이데이 행사장에서도 힘에 부쳐 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이 두 어르신이 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호부터 <참여와혁신>은 전태일재단과 공동기획으로 ‘내 인생의 전태일’이라는 꼭지를 연재합니다. 명사는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자신의 인생에 전태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들어보고 이를 공유하는 기획입니다.

이 기획을 준비하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내 인생의 누군가’는 과연 누구인지 말입니다. 나의 인생에 영향을 줬던 누군가가 대체 누구인지 한참을 생각했는데 바로 이 사람이다 하고 딱 떠오르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물론 저도 빛바랜 낡은 책 속에서 전태일 열사의 일기를 읽으면서 전태일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고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윤상원 열사 생가에 보관돼 있던 일기를 읽으면서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내 인생을 바꿔놓은 누군가는 대체 누구였던 것일까요. 며칠을 그 문제로 고민하다가 답을 찾아냈습니다. 내 인생을 바꿔놓은, 혹은 규정하고 있는 누군가는 한 번에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누구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수많은 누구들이라는 것을요.

뭣 모르던 시절 ‘가투’가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집에서 뒤풀이를 할 때, 그 낮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듯 싸움을 하던 노동자에게 물었더랬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싸우느냐고. “당신은 돌아갈 학교가 있지만 난 여기서 밀리면 돌아갈 곳이 없다”던 그가 어쩌면 내 인생의 누군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그저 꿈만으로 살아가던 그 시절의 어느 추운 겨울날, 밤을 새워 회의 하고 다음날 아침 다른 도시로 옮겨가야 할 때, 슬쩍 옆에 붙어 “아, 춥다” 하고는 내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던 후배가 손을 흔들고 떠난 후에 그 호주머니 속에서는 꼬깃꼬깃 접힌 만 원 짜리 한 장이 나왔더랬습니다. 어쩌면 그가 내 인생의 누군가이겠지요.

자, 지금. 당신 인생의 누군가는 누구인가요? 그 누군가로부터 받은 기운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나요? 어쩌면 나 또한 누군가의 인생의 누군가였겠지요. 그의 누군가가 되어도 좋을만큼 살아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