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위’와 ‘단상 아래’의 장벽
‘단상 위’와 ‘단상 아래’의 장벽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5.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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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공연, 똑같은 연설 “노동자는 지쳤다”
소통과 참여가 사라지는 집회

“생동감을 느낄 수가 없어요. 매년 비슷비슷한 가수, 문화행사 일색의 전야제에, 본대회 때는 무슨 놈의 ‘사’가 그렇게 많은지, 아스팔트 위에 앉아 투쟁사, 대회사, 연대사를 다 듣고 나면 진이 빠져버려요.”


“그나마 요즘엔 투쟁 사업장 소식이나 서로 다른 입장을 엿볼 수 있는 유인물마저 별로 나돌지 않아요. 이건 뭐 제대로 한판 붙어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지방에 있는 노조들은 부담이죠. 참석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지만 열성 조합원 아니고는 쉬는 날 서울까지 간다는 게 쉽습니까. 매년 간부나 대의원들 중심으로 참석단을 꾸리고 있는 실정이죠.”

 

노동자들이 모여서 작은 토론회라도 할라치면 비장한 각오를 하고 삼엄한 경계를 뚫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70~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이 민주노총이 합법 단체가 아니었던 1999년 전만해도 전국 규모의 노동자집회 때는 크고 작은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곤 했다. 이때는 물리력을 동원하는 것이 곧 노동자들의 의사소통 방법 중 하나였고 또,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의사표시가 불가능했다.


집회에 대한 정부의 태도나 정치·사회적 환경이 변화되면서 이제 노동자들의 집회가 일방적으로 ‘불법집회’로 여겨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없어진 것은 이런 ‘불상사’만은 아니다.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표출되고 참석자 누구나 발언하며 자신의 의견을 펼쳤던 예전의 ‘치열함’도 함께 사라지고 있는 것.

 

‘치열함’이 사라진 자리 메우는 획일성


그 ‘치열함’의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획일적인 식순과 미리 기획된 발언들이다.
노동절 집회에서 만난 코카콜라보틀링 노동조합의 한 간부는 “이제 집회 순서를 외울 지경이 됐다”면서 “참석한 대중들이 집회를 함께 만드는 ‘주체’가 아니라 무대 위의 공연과 발언을 지켜보는 ‘관객’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민중의례와 개회사, 문화공연, 투쟁사, 투쟁결의문 낭독과 행진까지 체계적인 순서로 정형화된 집회 속에서 예전의 생동감과 치열함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계속되는 무대 위의 발언을 듣다가 사회자의 제안에 맞춰 구호를 따라 외치는 것이 참석자들이 할 수 있는 ‘참여’의 전부다.


최근 집회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지방에서 차를 대절해서 서울로 오는 경우에는 아예 박스 채로 술과 안주를 싣고 올라오기도 한다. 뒷자리까지는 들리지도 않는 연설이 반복되는 동안 이들은 술을 마시며 지루함을 달랜다. 몇 차례의 연설이 끝나고 행진이 시작될 즈음 얼큰하게 취한 이들은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지역으로 돌아간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표출될 공간과 수단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과거에 집회는 그 형식만으로도 훌륭한 의사소통의 장이었다. 하지만 내외부적 환경이 변하고 있는데도 형식만 굳어지면서 점점 참여의 공간은 좁아지고 구호와 선언만이 난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공연맹 이근원 대외협력실장은 “단순한 집회의 문제라기보다는 노동운동 내의 언로가 막혀있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며 “집회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과거의 집회 형식을 과감히 탈피해 누구나 즐겁게 참여하고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제안했다.


현실 속의 ‘비주류’노동자들은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에서 비롯됐다는 노동절 속에서도 여전히 ‘비주류’다.


최근 비정규직 문제가 노동계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대규모 집회 때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규탄 및 결의 발언들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순서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조 관계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들러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한다.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박형우 교선부장은 “집회 때 발언 순서를 주는 것만 해도 큰 발전이지만 그것도 항상 그 때뿐”이라며 “일상적인 연대와 공동 투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대형 집회에서의 몇 분 발언은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심 없는 조합원, 동원되는 간부


서울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는 지방의 노동조합 간부들에게는 또 하나의 부담이기도 하다. 매년 노동절 집회마다 각 연맹별로 참석 인원을 배정하는데 노동자들의 관심이 자꾸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 인원을 채우는 것도 쉽지 않은 일. 때문에 간부들이나 대의원 중심으로 참가단을 구성하게 되고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째 같은 집회에 참석하면서 집회의 목적의식이 흐려지기도 한다.


전국노동자회 김준오 총무는 “매번 간부 중심으로 대형 집회에 참여하기 때문에 집회 전 교육이나 사전 토론 같은 것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한다. 매년 같은 사람들이 집회를 참석하다 보니 간부들조차 노동절 집회나 대규모의 수도권 집회 참석을 하나의 관성화된 사업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상급단체도 집회의 내용에 대한 고민보다는 집회 참석 인원 배정에 급급하고, 노동조합 위원장들은 ‘우리 노조가 그래도 연맹 위원장 얼굴 세워주지 않았냐’며 생색 내기 위해 최대한 많은 간부들을 동원해서 ‘체면치레’를 하는 집회 속에서 과거 노동절의 의미는 점점 퇴색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부산에 위치한 철강업체 노동조합의 간부는 “지방 노동조합의 간부들은 서울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나 각종 회의 참석이 활동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면서도 “권역이나 지역별 집회라고 해서 조합원들의 참여가 훨씬 높은 것은 아니어서 집회의 진행과 조직방식 자체를 고민할 필요를 느낀다”고 말했다.

 

노동자집회를 ‘열린 광장’으로


사실 집회의 기획자들도 매년 대규모 집회를 준비할 때면 이런 문제들 때문에 고심하게 된다. 2005년 메이데이 전야제 및 기념식의 문화행사반장을 맡은 민주노총 이준용 문화미디어실장은 “집회에 좀 더 참여의 공간을 늘리고 새로운 형식을 고민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만 참석자가 2만여 명이나 되는 대규모 집회에서 집회의 기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벅찬 게 사실”이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일부에서는 다른 대규모 집회와 달리 노동절 집회만이라도 노동자들뿐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참여해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 체육행사 등을 펼치고 마이크를 개방해서 누구나 발언하는 열린 광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부산의 메이데이문화제 기획위원회는 올해 노동절행사에서 이런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행사기간을 기존의 이틀에서 삼일로 늘리고 개막식도 공연이 아닌 자유발언대 형식의 공개 토론으로 준비했다. 또 이틀째 행사에서는 부산역 광장에서 마이크를 열어놓고 참석자나 시민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열린 토론회도 마련했다. 물론 집회형식의 기념식도 있지만 가족 단위 참석자를 위한 연극이나 문화행사 등을 마련해 굳이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기획위원회 관계자는 “과거의 집회 방식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노동절 집회만은 소수·다수, 정규직·비정규직에 상관없이 똑같이 발언하고 토론하는 노동자들의 축제로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새롭게 기획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도는 아직 ‘작은 목소리’에 불과하다. 올해에도 양대노총의 메이데이 기념행사는 축사와 연대사, 행진과 정리집회의 순으로 진행된다. 여전히 1년 중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가장 큰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노동절의 진짜 주인공이 되어야 할 많은 현장의 노동자들과, 그리고 아직 주인공 축에도 끼지 못한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노동절은 연례행사에 그칠 뿐이다. 노동자들의 집회가 연대와 소통의 장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고민을 시작할 때라는 지적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