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후보’ 베어스의 ‘이유 있는’ 반란
‘꼴찌 후보’ 베어스의 ‘이유 있는’ 반란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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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ㆍ인재 양성ㆍ개인과 조직 조화ㆍ고객과 함께

지난 4월 2일 개막한 2005 프로야구에서 두산 베어스의 초반 기세가 무섭다.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 ‘우승 후보’ 삼성 라이온즈와 함께 양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시즌 시작 전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많은 전문가들의 시즌 전 예상은 4강 내지 3강 구도였다. 모든 전문가들의 예상에서 첫손에 꼽힌 것은 역시 삼성이었다.

 

삼성은 지난 시즌이 끝난 후 최고 거포 중 하나인 심정수와 6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FA 계약을 체결했고, 더불어 유격수 박진만까지 영입했다. 이에 따라 박종호, 박진만, 김한수로 이어지는 ‘철벽 내야 수비 라인’을 구축했다는 평을 들었다. 또 최고 스타 플레이어였던 선동렬 감독 체제가 들어서면서 배영수, 임창용 등 투수진도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아울러 심정수의 가세로 양준혁, 진갑용 등과 함께 막강 타선을 구축했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손색없는 우승 후보인 셈이다.


삼성과 함께 거론되던 팀은 기아 타이거즈다. 기아는 복귀한 이종범이 되살아나고 마해영이 가세함에 따라 타선의 파괴력은 삼성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전문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박재홍, 김재현이 가세한 SK 와이번스, 주요 전력이 빠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투수력이 강력하고 노련한 김재박 감독이 이끄는 현대 유니콘스, 김인식 감독 부임 이후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인 한화 이글스 등을 4강의 한자리에 포함시킨다.


이렇게 보면 확실한 약체로 분류된 팀은 ‘단골 꼴찌’ 롯데 자이언츠와 전력 누수가 심한 LG 트윈스, 그리고 베어스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베어스는 최근 몇 년간 해마다 하위권으로 분류돼 왔다. 그간 전력 보강은 거의 없이 심정수, 정수근 등 스타급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구자운, 이재영 등 젊은 주축 투수들이 병역비리 파문으로 인해 대거 군입대하는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도 지난해 3위에 이어 올해 다시 돌풍을 일으키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장한다


베어스는 프로야구 출범 초기부터 마스코트인 곰과 같은 뚝심과 끈기를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어느 팀보다도 개인이 아닌 조직을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는 상당 기간 동안 걸출한 스타 플레이어를 보유하지 못한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했다.


선수 자원이 풍부한 서울 지역을 연고로 하면서도 매년 트윈스에 ‘재목’들을 뺐겨왔다. 90년대 들어서도 김동주 정도를 제외하고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이름을 날리던 선수는 없었다. 딱히 내세울 것 없는 선수들이 모였지만 프로에 와서 기량을 꽃피우는 선수들이 속속 나타났다.


이런 와중에 정수근, 홍성흔 등 젊은 세대들이 들어오면서 팀 분위기가 바뀌었다. 개성이 강한 선수들이 모여들어 밝고 활기찬 새로운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오랜 기간 전통처럼 내려온 조직을 우선하는 분위기와 젊고 개성 있는 선수들이 충돌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조화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갔다.

 

자체 인재(스타) 양성


프로의 핵심은 역시 스타라고 할 수 있다. 초창기처럼 한 팀에서 은퇴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트레이드나 자유계약 등을 통해서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스타를 찾는 구단과 자신의 성적에 맞는 대우를 원하는 선수의 입장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체 스타를 양성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구단이 무명의 선수를 스타로 키워 다른 팀에 이적시키는 것도 구단 운영의 중요한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우리 프로야구는 어떨까. 대표적인 스타팀인 삼성의 경우 선동렬 감독은 익히 알려진대로 타이거즈맨이다. 여기에 베어스, 유니콘스 출신의 심정수, 유니콘스 출신의 박진만, 박종호, 베어스 출신의 진갑용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양준혁, 박한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입 케이스’이다.


이에 반해 베어스는 대부분이 ‘자체 양성’한 선수들이다. 김경문 감독이 원년 박철순과 배터리를 이뤘던 포수 출신이고 김동주, 홍성흔, 안경현, 장원진 등 주력 선수들이 모두 출발부터 베어스에서 시작한 선수들이다. 이는 팀의 단결을 위해서도 중요한 요소다.

 

믿음의 리더십


김인식 감독 시절부터 이어져 온 베어스의 ‘믿음의 야구’는 김경문 감독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베어스에서는 유달리 아마추어 시절 명성을 떨치지 못하거나 다른 팀에서 방출된 선수들이 실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았다.


팀내에서 확실한 주전 자리를 확보하고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는 안경현, 장원진, 손시헌 그리고 현재 자이언츠를 대표하는 정수근 등은 모두 프로에 와서 이름을 알린 경우다. 또 ‘팔색조’ 조계현이 마지막 선수 생활의 불꽃을 불태웠고, 타이거즈에서 방출됐던 외국인 선수 레스도 베어스에서 다승왕을 차지한 후 일본으로 진출했다.


이는 믿음의 리더십이 일궈낸 성과였다. 성적이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2군으로 내려 보내거나 방출하는 것이 프로의 냉혹한 세계다. 그러나 베어스에서는 선수들을 믿고 기다려줬다.  선발투수의 경우 부상이나 심한 난조가 아니라면 5회 이상 던지도록 하고, 야수들도 출장기회를 꾸준히 주면서 페이스를 찾아나가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게 되고 또 팀과 자신을 일체시킬 수 있도록 해준다.

 

뚝심과 끈기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조직이든 ‘눈 앞 이익’의 유혹을 이겨내기 쉽지 않다. 당장의 성적을 위해서 재미와는 상관없이 이기기 위한 야구를 하는 경우가 허다한 이유다.


현대 김재박 감독의 경우 팀을 세 차례나 챔피언에 올려놓는 등 성적은 항상 최상을 유지해 왔다. 구단 고위층의 입맛에 맞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팬들로부터는 외면을 받는다. 승리를 위해 경기 초반부터 번트 작전을 구사하거나, 경기시간 제한 규정을 활용하기 위해 이기거나 비기고 있는 경기 막판에 고의로 시간을 지연하는 스타일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는 당장의 승리는 보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팬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팀이나 감독에 대한 외면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 시장을 위축시킨다.


이에 반해 김경문 감독은 번트를 거의 지시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올들어 번트 작전 구사가 간간히 눈에 띄기는 하지만 아직도 경기 중반 이후 한점 차 승부가 아닐 경우 번트를 자제한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재미있는 야구’를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선수들을 믿고 맡기면서 전체적인 재미를 생각하다보니 베어스 야구에서는 종종 막판 대역전극이 펼쳐진다. 9회에 다섯 점 차를 뒤집는 짜릿한 승부, 바로 팬들이 원하는 야구다.


고객(팬)과 함께 한다


베어스의 팬들은 남다른 데가 있다. 올들어 성적에 비례해 최다 관중 동원을 기록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전국적인 팬들이 많은 기아, 열성적 홈팬을 지닌 롯데, 세련된 이미지의 서울 라이벌 LG 등에 비해 팬들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베어스에는 이른바 ‘골수팬’들이 많다. 이들은 팀이 가장 어려울 때 함께 했던 팬들이다. 따라서 어떤 팬들보다 ‘충성도’가 높다. 또한 맹목적인 추종이 아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베어스 팬들은 2001년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파동으로 심정수가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자 집단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온라인상의 시위는 물론 야구장이나 야구협의회에서 집회를 갖고 모금을 통한 광고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서 구단에 의해서 관리되는 팬이 아니라 쌍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한 능동적 주체로 거듭났다.


구단 운영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이를 긍정적인 힘으로 결집시켜 내는 팬들은, 평소에는 냉철한 비판자이자 감시자로 나서지만, 팀이 어려울 때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준다.

 

남는 문제들


베어스의 상승세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우선 객관적인 전력이 다른 ‘화려한’ 팀들에 비해 뒤처지고, 주전 선수들이 대부분 노장으로 체력적인 문제가 존재하는데다 주전을 대체할 만한 백업 요원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영진이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몇 년간 제대로 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성장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자유계약 선수가 됐을 때 이들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현장’이 제몫을 다해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버틸 수는 없다. 경영진의 투자가 함께 이루어질 때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