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파트타임’은 무슨 뜻?
‘양질의 파트타임’은 무슨 뜻?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06.0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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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근로시간 1천8백 시간으로 단축 합의
2020년까지 단계적 단축…다양한 근무형태, 합리적 임금체계 전환 등 합의

▲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근로시간·임금제도개선위원회(위원장 김태기)의 제7차 전체회의가 열렸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한국노총과 노동부, 경영계가 오는 2020년까지 우리나라 전 산업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을 1천8백 시간대로 단축시키는데 합의했으나 ‘양질의 파트타임 창출’ 등 모호한 실천방안을 마련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원회) 산하 근로시간・임금제도개선위원회(위원장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8일 오전 여의도 노사정위원회 대회의실에서 7차 전체회의를 진행해 장시간 근로 관행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현재 한국의 전 산업 평균 노동시간은 연평균 2천2백 시간에서 2천3백 시간으로 추정된다. 이는 OECD 평균인 1천8백 시간, 일본의 평균 근로시간인 1천7백 시간에 비해 높은 수치다.

합의문에 따르면 노사정은 2020년 이내에 우리나라 전 산업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을 1천8백 시간대로 단축시키기 위해 단계적 목표를 설정하고 노동계, 경영계, 정부를 포함한 범국민 추진기구를 구성해 장시간 근로와 근로문화 개선을 위해 전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위해 노사는 휴가 등이 본래 취지대로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여성과 고령자들의 고용 개선을 위해 양질의 파트타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직무 발굴 및 임금 체계의 개발, 숙련 축적이 가능한 여건 조성과 함께 파트타임 근로자가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공동 노력을 기울이기로 합의했다.

또한 노사정은 근로자와 기업의 여건에 맞춘 다양한 근무시간제도의 도입을 위해 적극 노력하는 반면, 일자리의 양적・질적 저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생산성 제고 방안으로 생산성, 직무 등을 반영한 합리적 임금체계로의 전환과 임금피크제 등 고용친화적 임금체계 도입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 대표적 산업이나 업종을 정해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전체회의 이후 김태기 위원장과 한국노총 손종흥 사무처장, 경총 황인철 경제조사본부장, 노동부 정현옥 근로기준국장이 참가한 기자 브리핑에서 김태기 위원장은 “노사정 공히 고비용・저효율의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며 “노사정 협상의 결과로 이번 합의를 도출했으며 근로의 질과 국민생활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 김태기 위원장이 노사정 합의문 채택을 선언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실효성은 의문

그러나 이번 합의문 발표가 근로시간 단축에 어느 정도의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번 합의문에는 휴가 등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노사정이 노력하기로 합의했으나 휴가 사용을 법적으로 강제하기가 어렵고 유럽과 같이 장기간 휴가 사용은 조직 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란 점에서 실행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고용 취약계층인 여성과 고령자 취업을 위해 ‘양질의 파트타임’ 일자리 창출에 공동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으나 이 또한 ‘양질’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이고 모호해 구체적인 제도 마련에 노사정의 합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김태기 위원장이 기자 브리핑에서 밝혔듯이 “정규직 임금체계로는 양질의 파트타임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파트타임에 맞는 임금체계를 구성해야 하나 이는 자칫 임금 수준의 하락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여기에 여성과 고령자가 핵심 취업계층이 아니기 때문에 파트타임을 늘려야 한다는 사고 또한 위험한 발상으로 보인다.

파트타임의 증가, 비정규직의 증가는 정규직의 임금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현재의 임금체계 전반을 수정해 총량적인 임금이 근로자 생활 안정에 기여하지 않는 한 이 또한 근로빈곤가구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일자리의 양적・질적 저하가 없다는 전제하에 다양한 근무시간제도의 도입에 노사정이 노력하기로 했다는 것은 파트타임, 재택근무 등 다양한 근무시간제도가 자칫 변칙적 고용 관행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간과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 한신대 노중기 교수는 <참여와혁신>과의 전화통화에서 “파트타임을 늘리겠다는 것은 현재 비정규직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나 작업환경, 장기적으로 정규직 전환 문제 등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구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늘리겠다는 것”이라며 “또한 2020년까지 현재 2천3백 시간인 근로시간을 1천8백 시간으로 25% 정도를 줄인다는 것은 정규직을 줄여 비정규직 파트타임을 늘리겠다는 의도로, 서구에서 파트타임이 많다는 근거를 들어 이야기를 하는데 넓게 보면 고용형태 유연화 전략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하지 않고 있는 민주노총은 이번 합의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실장은 “근로시간 단축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지난해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결국 일자리는 나누지 못한 채 임금삭감으로 귀결됐듯이, 이번 합의 내용을 보면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 없이 파트타임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만 나열하고 있어 결국 근로시간 단축은 이루지 못한 채 노동시장 유연화만 불러올 뿐”이라고 주장했다.

▲ 전체회의를 마친 후, 김태기 위원장이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애매한 실천방안에도 노동부 올해 내 근기법 개정 예고

한편 이번 합의와 관련해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예고해 주목된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노동부 정현옥 근로기준국장은 “오늘 합의를 통해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범국민적 논의를 통해 실무적 작업을 하겠다”며 연내 개정을 추진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개정 방향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 중에 필요한 부분을 노사 합의를 통해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다만 한국노총 손종흥 사무처장은 “일자리의 질이 저하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다양한 근로시간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에 합의한 것”이라며 “제도 개선과정에서도 큰 틀의 합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는 수준에서 법 개선이 돼야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노동계 일부에서는 노동부의 근기법 개정이 파견근로자 등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합의 정신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지켜진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이명박 정부가 줄곧 주장했던 노동시장 유연화의 서막을 연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