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哀書(애서)
편의점哀書(애서)
  • 안형진 기자
  • 승인 2010.06.2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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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제가 그 ‘악덕 관리자’입니다
▲ 안형진 hjahn@laborplus.co.kr

얼마 전 청년유니온이 전국의 편의점 444곳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444곳 중 최저임금을 위반한 곳은 292곳, 65.8%의 편의점이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비교적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일자리인 편의점 아르바이트, 하지만 편의점은 이전부터 최저임금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습니다.

저 역시 편의점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바로 제가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친구들의 최저임금을 지켜주지 않은 악덕 관리자였기 때문입니다.

‘악덕관리자’의 변명

대학 졸업 무렵, 저는 편의점의 점장이었습니다. 편의점을 개업할 때 자본을 투자한 진짜 사장님은 다른 일로 바쁘고, 저는 진짜 사장님 대신 점포와 알바생들을 자율적으로 관리했습니다.

사장님이 매달 일정 금액을 저에게 보내면 일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월급을 주고 남은 돈을 제가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낮에 일하는 알바생들에게 2,500원의 시급을 줬고, 야간 아르바이트생에게는 한 달에 80만 원의 돈을 지급했습니다 2006년 당시 최저임금이 3,100원이었으니 저는 최저임금을 무시하고 알바생들을 ‘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최저임금이 3,100원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저 역시 알바생들에게 더 많은 돈을 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제 몫으로 돌아오는 돈을 쪼개 알바생들에게 돈을 지급하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비겁하게도 저는 제 몫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알바생들에게 월급을 지급하고 나면 백만 원 남짓한 돈을 받았습니다. 일하는 1년 남짓의 기간 동안 저는 단 하루도 쉬지 못했습니다. 알바생들이 시골에 내려가야 하는 명절에는 하루 종일을 편의점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어쩌다 알바생들이 펑크를 내면 저 혼자 평소보다 두 배, 세 배의 일을 감당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르바이트 비용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올려주게 된다면 당장 저는 60만원 선의 임금을 받고 일해야 하는 입장이 돼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점주님에게 돈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해야 했지만 그 마저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매달 가게로 오는 결산표를 토대로 계산해보니, 저와 알바생들에게 월급을 준 뒤 점주님에게 돌아가는 돈은 50여 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돈을 올려달라고 하는 것은 저의 과도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주의 한 달 수입 1백만 원

그나마 저는 나은 편에 속했습니다. 옆 동네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여 점주님이 우리 가게에 종종 놀러 오기도 했었는데, 그 분의 사정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그 분은 낮 시간 10시간 정도를 아르바이트를 채용해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매달 수익의 30%를 본사에 내고 임대료, 세금을 제외한 사장님에게 들어오는 돈은 200만 원이 안됐습니다. 알바생에게 돈을 주고 남는 돈은 100만 원 정도였지요.

연중 무휴, 24시간 개점의 계약 조건이 지켜지지 않으면 위약금을 물어야 합니다. 편의점을 5년 이상 운영하지 않으면 편의점을 오픈할 때 본사로부터 지원 받았던 집기 등 비용을 되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없습니다. 매일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14시간 일해 얻는 돈은 고작 100만 원 입니다.

다른 기막힌 일들도 많이 발생합니다. 한 알바생은 일을 시작한 뒤 일주일 만에 도망치듯 빠져나가 노동부에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다며 신고를 했습니다. 이 책임은 고스란히 점주에게 맡겨집니다.

무분별하게 경쟁적으로 벌이는 입점 경쟁도 편의점 점주들을 짓누릅니다. 2차선 도로의 건너편에 새로운 편의점이 열리기도 하고, 골목길 시작과 끝에 각각 다른 편의점이 오픈되기도 합니다.

알바생의 최저임금, 누가 책임지나

본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몇몇 직영점은 모두 최저임금을 반드시 준수합니다. 대기업들은 “최저임금이 지켜지지 않는 점포는 가맹점주들의 점포지만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빠져나가버리면 그만입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의 최저임금이 당장 현실화 된다면 이로 인해 근심하게 되는 것은 편의점 사업을 총괄하는 일부 대기업이 아니라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하는 시간을 줄여야 할지를 고민하게 될 영세 점포의 점주들이라는 이야기지요.

알바생들의 최저임금을 보장해줄 현실적 능력이 되지 않는 영세점주들, 그렇지 않아도 낮은 최저임금조차 보전 받지 못하는 알바생들, 직영점은 최저임금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에 본인들은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대기업들.

그렇다면 알바생들의 최저임금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영세점주들이 어려우니 알바생이 참아야 합니까? 영세점주들이 자신의 삶을 내팽개치고 최저임금을 지키며 적자운영을 하는 성자(聖者)가 되어야 할까요?

이해당사자인 삼자, 즉 대기업과 점주, 알바생 중 누가 강자인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나옵니다. “점주님들의 이익 실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하던 그들이 정작 편의점의 최저임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직영점은 잘 지키고 있으나 가맹점주들이 지키지 않고 있다”며 발뺌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강자가 보여줘야 할 너그러움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가맹점주들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급으로 알바생을 착취합니다. 그리고 대기업은 무분별한 입점 경쟁과 불합리한 계약조건으로 가맹점주들을 착취합니다. 그 거대한 착취의 고리 꼭대기에는 대기업이 존재합니다.

그 착취의 고리를 이제 끊어 주십시오. 편의점 사업으로 매년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는 여러분.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을 가진 것은 오직 당신들 뿐입니다.

안형진의 皆忘難以(개망난이)  모두 어려움은 잊고...행복해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