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의 해법은? … ‘매년 그래왔듯이’
최저임금의 해법은? … ‘매년 그래왔듯이’
  • 봉재석 기자
  • 승인 2010.07.0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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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여지없이 밤을 샜습니다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지난 6월 29일은 2011년 최저임금 의결 법정시한이었습니다. 같은 날 오후 4시에 시작된 최저임금위원회 7차 전원회의는 무려 12시간가량 진행되다 결국 노사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매년 6월 말이 되면 최저임금에 대한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제시한 이듬해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 위해 늦은 새벽(표현상으로는 ‘이른 새벽’이 맞겠지만, 기다림을 감안하면 늦은 새벽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까지 잦은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며 격론을 벌이면서 오랜 진통 끝에 정해지는 것이 바로 최저임금입니다.

이 때문에 최임위 취재 경험이 있는 기자들은 반드시 밤샐 것이라 예상하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한 채 현장에 나타납니다. 간단한 세면도구를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책이라든지 긴 시간을 때울 만한 소일거리 등을 마련해오기도 합니다. 요즘 같은 월드컵 시즌에는 DMB가 큰 몫을 합니다. 더 능숙한(?) 기자들은, 초반에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 여겨 아예 늦은 새벽에 나오기도 합니다.

일단 회의가 시작되면 중간에 정회가 되더라도 회의장 안에 출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밖에서는 안의 상황을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회 때마다 바람을 쐬러 나오는 위원들을 붙잡아다가 진행 상황을 묻거나 가끔 근로자위원들이 기자대기실에 들러 상황 브리핑을 해주는 것이 취재의 전부입니다. 오랜 기다림에 지친 기자들이 “왜 이렇게 상황이 늘어지냐”고 푸념어린 질문을 하면, 노사 위원 할 것 없이 하나같이 같은 대답입니다. “매년 그래왔듯이 새벽 3~4시나 돼야 뭔가 가닥이 잡힐 거예요. 다 아시잖아요.”

이렇게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예년 같으면 우리 모두가 다 아는(?) 그 시간에 어찌됐든 합의를 이룰 텐데, 올해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닥이 잡힐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러자 역시 기다림에 지친 기자들이 “이번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법정시한을 넘기는 것인데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하자 이번에도 위원들은 “매년 그래왔듯이 최저임금은 시한을 크게 두지 않고 논의와 합의가 가능하다”라며 별문제 될 것 없다는 듯이 대답을 합니다. 그러면 기자들은 “아~ 매년 그래왔듯이~”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취재를 준비하는 기자들도 ‘매년 그래왔듯이’를 문제의 원인으로 받아들이고, 협상 테이블에 앉은 위원들도 ‘매년 그래왔듯이’라는 말로 현재 벌어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최저임금은 ‘매년 그래왔듯이’라는 말로 시작과 끝을 맺습니다. 그렇다면 올해도 역시 ‘매년 그래왔듯이’ 서로가 100% 만족하진 못하더라도 ‘선방’할 만한 수준으로 합의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 내년도 최저임금 의결 법정 시한일인 지난 달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최저임금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오후 4시부터 장시간 동안 열린 7차 전원회의에서 정회를 선포하자 사용자위원들과 공익위원들이 자리를 비운 가운데 근로자위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왜 그토록 장시간 동안 마주하며 얼굴을 붉히기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신경전을 벌일까요? 잘은 모르지만 이들은 아마도 ‘최저임금’이라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를 걸고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중인가 봅니다. 지금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 하는 끈기와 인내입니다.

전 지금 연기된 최저임금위원회 8차 전원회의 취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역시 ‘매년 그래왔듯이’ 밤을 새겠지요. 그래도 지난 회의 때는 ‘일본 대 파라과이’의 월드컵 16강전이 있었기에 기자들도, 위원들도 그나마 덜 지루했습니다. 아, 위원님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경기의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굳게 잠긴 회의실 안에서도 신기하리만큼 적절한 타이밍에 커다란 탄성이 흘러나와 제가 추측을 해본 것입니다. 한해의 최저임금이 정해지는 중요한 사안을 놓고 반나절이나 되는 긴 시간동안 회의를 하는데 아무리 정회 중이었다고 해도 설마 그러셨겠습니까. 제가 좀 앞서갔나 봅니다.

오늘은 ‘네덜란드 대 브라질’의 8강전 빅 매치가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긴 시간 덜 지루할 것 같아서. 이 외에 철저한 준비로 기다리는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보내렵니다. 이 싸움은 지루해하면 지는 겁니다.
 

  봉재석의 포토로그  못 다한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