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과 사랑에 빠져버린 웨딩플래너
고객과 사랑에 빠져버린 웨딩플래너
  • 최영순_ 중앙고용정보원 선임연구원
  • 승인 2005.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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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첫출발’을 장식하는 행복한 직업

최영순
중앙고용정보원 선임연구원
한때 사랑의 화살표가 일요일 아침마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것을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보면서 희비를 점쳐 보기도 했던 적이 있었던 것처럼 ‘짝짓기’프로그램은 방송사의 단골메뉴입니다.


굳이 인륜지대사라는 고답적인 말이 아니어도 결혼은 우리 인생 최대의, 그리고 최고의 이벤트임에 틀림없습니다. 물론 결혼이라는 굴레가 아닌 자유를 선택하는 독신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불편한 부부로 등을 맞대며 평생을 지내기보다 ‘쿨’한 이성관계로 당당히 마주서기 위해 기꺼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해도 결혼 그 자체의 가치가 희석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낙인 찍혀 내려오는 적령기의 미혼남녀들이 주위의 재촉에 눈을 피하고, 그 부모들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평생을 함께할 든든한 동반자로서의 인연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은 똑같겠지요.


하지만 결혼이 어디 로맨스, 사랑의 연장선으로서만 의미가 있겠습니까. 30여 년을 살아온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가장 큰 소비를 한다는 점에서, 일생 단 한 번이라는 떨쳐버릴 수 없는 유혹이 상업성으로 돌변한다는 점에서 결혼은 비즈니스입니다. 그리고 결혼 당사자의 사랑과 믿음사이로 양가 가족의 체면과 욕심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또 어느 순간 결혼의 주인공은 신랑도, 신부도 아니게 되면서 ‘결혼=갈등’ 이 되기도 합니다.   

 

해피엔딩 vs 청천벽력


비즈니스인 결혼이 갈등을 낳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을 아름답게 치르기 위해, 그리고 직장생활로 정신없는 신랑, 신부가 돈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 직업이 있으니 바로 ‘웨딩플래너’입니다.


웨딩플래너는 혼수준비에서부터, 예식준비, 신혼여행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기획하고 대행해주는 사람으로 고객의 취향과 개성, 예산, 스케줄 등을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맞춤정보를 제공합니다. 예전에는 신부의 어머니가 담당하였던 상당부분의 결혼준비과정이 이제 웨딩플래너의 전문적인 손길과 조언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몇몇 영화에도 웨딩플래너가 비춰지긴 했지만 미국 영화 <웨딩플래너>는 웨딩플래너의 일과 사랑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로 이 영화 이후 실제로 웨딩플래너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성공한 뉴요커들의 결혼식을 완벽하게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한 메리는 정작 자신은 애인도 하나 없는 쓸쓸한 커리어우먼입니다.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날 뻔한 자신을 구해준 스티브의 따뜻한 모습에 마음이 끌리게 되고 좋은 예감을 갖지만 스티브는 그녀의 고객인 여성과 곧 결혼할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예비신부가 출장을 가는 바람에 스티브와 함께 다니며 혼수를 비롯해 결혼준비를 하면서 둘은 애틋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스티브는 어디까지나 고객일 뿐, 고객에게 사적인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웨딩플래너의 직업적 특성상 메리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엉뚱한 남자와 결혼을 약속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로맨틱코미디 영화가 그러하듯 <웨딩플래너>역시 ‘헤피엔딩’입니다. 물론 갑자기 약혼자를 뺏긴 예비신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겠지만요.


이 영화는 미국 개봉 당시 2주 동안 관객동원 정상을 차지하면서 흥행작으로 떠올랐고 메리 역할을 한 제니퍼 로페즈 역시 매력적인 패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면서 배우와 가수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강인한 체력과 세심함이 요구되는 직업


웨딩플래너는 대부분 웨딩대행업체에 취업하여 일하는데 최근에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업체에서는 기혼, 미혼여부에 상관없이 전문대졸 이상의 학력으로 전공에 제한을 두지 않고 채용하며 현재 20대 후반~30대 여성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연령대가 많은 것은 유행에 민감해야 하고 신랑보다 신부가 챙겨할 것들이 더 많은 결혼준비과정에서 친정어머니처럼 든든한 도우미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클 것입니다.


아무리 웨딩플래너가 결혼준비에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까다로운 고객들의 취향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배려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웨딩플래너에게 강인한 체력은 기본입니다. 또한 성실한 상담이 고객확보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고객이 편안한 마음으로 상담할 수 있도록 화술이 뛰어나다면 더욱 좋습니다. 거기에다 혹여나 실수가 있지 않도록 전 과정을 꼼꼼하게 챙기는 세심한 성격, 몸에 밴 친절한 매너까지 갖췄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아름다운 커플의 새로운 출발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다는 보람도 크지만 웨딩플래너에게도 직업적 어려움들이 있다고 합니다. 고객과 함께 업체를 방문하다보면 어둑한 밤이 되기 일쑤이고 결혼식이 몰려 있는 주말 내내 동분서주 뛰어 다니며 일해야 하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게다가 한껏 예민해져 있는 고객들의 잔소리와 투정까지도 다 들어주어야 합니다.


요즘은 전문대학에 웨딩매니지먼트과가 생기는 것을 비롯해 사설 교육기관에서 웨딩플래너와 관련된 교육을 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어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 취업하여 이리저리 부딪히며 배우는 실무가 훨씬 더 유익하고 적응기간도 단축시킬 수 있다고 선배들은 말합니다.


2~3년 정도의 경력자 연봉은 보통 2,000~2,500만원 정도이지만 업체의 규모에 따라, 능력에 따라 개인 차이도 큰 편입니다. 확보한 고객 수에 따라 기본급에 수당을 더해 받게 되는데 여름, 겨울 등 상대적으로 결혼 비수기인 시기에는 수당이 적을 수도 있으며 프리랜서의 경우 비수기에는 아예 수입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요즘은 1년 내내 결혼시즌이라고 할 만큼 계절적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1년 중 가장 바쁘다는 결혼의 달 5월, 오늘도 웨딩플래너는 누군가의 행복한 첫걸음에 손을 내밀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