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IS LIFE
FASHION IS LIFE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0.07.09 10:03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먹고 듣고 보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자 패션
“포기하지 않고 천재들 속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다”
[사람돋보기]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동그란 선글라스에 멋지게 기른 수염. 청바지에 재킷, 운동화 차림의 그가 들어서자 조용한 전시관은 온통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여고생들부터 중년 아주머니에 이르기까지. 어린 꼬마에서부터 꼬마의 아버지뻘 되어 보이는 신사에 이르기까지. 그를 알아보고, 손을 잡아보고 싶어 하고, 함께 사진을 찍자 부탁하고,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일일이 이름을 물어보고, 격려의 말을 잊지 않으며, 익살스런 표정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때론 열혈 소녀팬의 격한 포옹에도 껄껄 웃음을 잃지 않는다.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패션의 중심 도시인 파리를 주름잡는 남자. 아름다운 한글 티셔츠가 전 세계를 활보하게 한 장본인. 많은 TV 출연으로 가히 연예인급 인기를 구가하는 최정상급 패션 디자이너. 하필이면 속옷 한 장 제 손으로 잘 고르지 않는 내가 그런 그를 만나러 가게 되어 밤새 떨었다.

경험은 새로운 에너지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정상급 디자이너이자 프랑스, 쿠웨이트, 두바이, 러시아, 미국 등지에서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주)이상봉’의 대표인 그의 스케줄은 정말 엄청났다. 지난 2010 봄·여름 파리컬렉션에서 그가 선보인 의상은 무려 60여벌. 해마다 두 차례씩 열리는 파리컬렉션만 하더라도 2002년부터 16회나 참가해왔다. 그것도 매번 파격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다채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면서. 그런데 이러한 스타일이 어디 그냥 나오겠는가. 영감을 얻는 비결을 물었다.

“디자이너들이 실은 여행을 많이 해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거지요. 아니면 영화나 다른 예술 작품에서 통해서 영감을 얻는 경우도 많고요. 사진이나 책, 혹은 우리 옛 전통 문화를 접하고 얻는 경우도 많아요. 이런 다양한 것들을 다 열어놓고 살아야하지요. 그러다가 어떤 순간 나한테 감동을 주는 거, 나한테 어떤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것들을 붙잡아서 작업을 하게 되는 거지요.”

사람은 옷을 입는다. 신발을 신고, 장신구를 두른다. 패션은 연약한 인간의 몸을 추위나 더위,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한다. 그리고 지극히 아름답다. 멋지게 잘 어울리는 옷차림에 우리는 감탄한다. 패션은 기능적이고, 심미적이다. 그는 ‘옷’이라는 것은 사람이 ‘입는’ 것임을 강조했다. 패션은 일상 속에 늘 함께하는 것이다. 지나치기 쉬운 일상 속 소소한 느낌들을 놓치지 않는 열린 시야를 몇 번이고 강조했다. 작업에 대한 생각이 언제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 심지어 꿈에서도 디자인을 한단다.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패션은 곧 라이프라고 저는 생각해요. 우리들 하나하나 모든 인생들이고.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속옷을 갈아입는다 치면, 이 속옷도 패션이겠지요? 그리고 먹는 것도 저는 패션이라고 생각해요. 아니면 뭐 음악을 듣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이런 모든 것들이. 현대생활을 누리는 이런 모든 것들에 꼭 필요한 것은 디자인이고, 디자인은 곧 패션이고. 이런 것들이 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 뭐 하나를 독자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어요. 이런 모든 분야를 가장 앞서서 주도해 나가는 것이 패션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서로 영향은 주고받지만 패션은 일단 매 순간 주기적이고 반복적으로 작업을 지속해야 하잖아요.”


‘최신 유행’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패션 잡지가 떠오르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사회적인 분위기, 문화적 흐름, 철학과 예술의 사조, 이런 것들과 밀접히 영향을 주고받되, 항상 패션은 그 전위였다는 의미다. 패션은 곧 라이프이기에, 기능적인 측면과 심미적인 측면 모두를 만족시켜야만 한다. 예쁘지만 입지 못하는 옷이나, 너무 편안하지만 흉물스런 옷은 나의 패션 즉, 나의 삶이 아닌 것이다.

한글과 이상봉, 우리 것에 대한 욕망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대중에게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은 한글로 통한다. 피겨 요정 김연아 선수와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출연진들, 린제이 로한과 같은 헐리우드 스타들이 선보인 아름다운 한글 의상들은 우리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었다. 디자이너 이상봉의 대명사처럼.

“네, 너무 박혀있어요. 특히 한글 디자인에 대해서 이런 것들이 저는 너무 감사하죠. 한글하면 이상봉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이런 얘기들을 들으면 부끄러울 때도 있고요. 정말 오랫동안 한글을 주제로 작업해 오신 훌륭한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 분들에 비하면 저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구요. 그 분들이 노력해오고 성취해 오신 것만큼 저도 따라가려고 합니다. 또 그 분들이 실은 평소 많은 도움을 주세요. 책도 가져다주시고, 본인의 자료들도 다 가져다 맘껏 쓰라고 말씀하시고, 계속 공부를 하게끔 강요(?)하시기도 하고. 해서 아마 그런 분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제 한글 디자인은 호기심에서 한두 번 작업을 하고 그만두지 않았을까…. 저명한 서예가 분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글 학자 분들께서도 많이 도와주시고, 또한 한국 전통 문화와 관련된 문화계 인사 분들도 역시 아낌없이 본인들이 쌓아 오신 것들로 도움을 주세요. 물론 용기도 주시고(웃음).”

널리 알려진 한글 디자인 외에도 이상봉은 우리 전통 문화를 접목한 독창적인 스타일로 서구 패션의 중심지인 파리에 직격탄을 날리길 서슴지 않았다. 2002년 루브르 박물관에선 한국의 샤머니즘을 주제로 중요무형문화재 이해경 만신을 초청해 세계 굴지의 패션쇼를 한바탕 굿판으로 뒤집어버렸는가 하면, 소나무, 미인도, 자개, 붓글씨, 조각보, 자수, 비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에 이르기까지, 한국적인 소재를 부단히 해외로 모시고 나가느라 애를 써왔다.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이미 아시아 문화의 많은 요소들이 공유되고 있는 현실이니까 이런 것들을 누가 빨리 선점하느냐가 관건이거든요. 누가 먼저 발굴하고 세계화하느냐에 따라 우리 문화가 세계 속에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감춰져서 우리끼리만 향유하느냐가 결정되니까요.”

한글 디자인, 전통과 현대적 감각의 조화, 이런 통속적인 세평이 오히려 그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을까? 끊임없이 창조적인 작업을 선보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살벌한 현장에서 클리셰(진부함)로 치부되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없을 듯한데….

“그런 얘기를 많이 하세요. ‘그렇다면 이상봉의 시그니쳐(signature)는 뭐냐?’, ‘한글 이외에는 뭐냐?’ 그런데 저는 25년 전부터 지금까지 늘 새로운 이상봉을 꿈꿔왔었고, 항상 버리는 작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왔어요. 버려야만 새로운 것을 느낄 수가 있고 시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상봉은 항상 버리는 작업을 하자. 그래서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항상 새로운 작업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지, 내가 지금 현재 내 위치를 고수하기 위한 그런 것은 정말 아니에요. 내가 비록 떨어질지언정, 비판받을지언정, 저는 다음에도 또 다른 작업을 위해서 노력할 것 같습니다.”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패션은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 항상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는 그를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패션은 곧 라이프라고 단언했던 것처럼 그는 우리 생활 속속들이,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부분들까지도 감성을 불어넣고 있다. 이른바 최근 ‘유행’인 콜라보레이션(각기 다른 분야의 협업)을 통해 이상봉의 디자인은 주변의 공산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담뱃갑에서부터 휴대폰, 찻잔, 다이어리, 벽지, 스카프와 넥타이에 이르기까지.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에 대해서 물었다.

“다 애정이 가는 작업이었죠. 다 해보고 싶었던 것이고. 제가 1993년에 이상봉과 아트컬렉션이라는 작업을 했었어요.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변화를 꿈꾸겠다는 의미의 작업이었죠. 그때 이제 한 2년을 하다가 포기했었죠. 그 시절 실패가 지금의 제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때 참 다양한 작업을 많이 했던 것들이.”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결국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한다는 의미는 소통에 관한 문제를 얘기하는 게 아닐까? 사람과 사람사이의, 혹은 나와 나 사이의 소통.

“아, 그렇죠. 패션은 분명히 소통이지요. 순수예술과는 달리 벽장 속에 가둬 놓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이것은 인간하고 호흡해야 하는 것이고, 사회하고 호흡해야 하고, 다른 분야랑 소통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패션의 범주는 미래 생활에 있어서 점점 커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포기하지 않은 것에 감사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디자이너 이상봉은 데뷔 30주년, 브랜드 설립 25주년을 맞아 지난 5월 7일부터 30일까지 청주시 한국공예관에서 ‘이상봉 25주년 기념 전시회’를 가졌다. 이웃나라 일본에 비하면 규모나 인지도 면에서 변방에 가까운 한국의 디자이너로서 지금의 입지까지 오며 얼마나 많은 역경이 있었을까? 그동안의 세월 동안 슬럼프 기간은 없었을까? 매너리즘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하는 거 같다고 느껴질 때마다 그는 어떻게 극복해 왔을까? 하필 궁금해도 이런 게 궁금하다. 한동안의 침묵 끝에 한숨을 푹 내쉬며 얘기를 꺼냈다.

“이런 것들은 뭐... 솔직하게 말하면 할 때마다 느껴요. 내 자신 능력의 한계, 어떤 경우는 절망, 이런 것들은 할 때마다 느껴요. 그래도 스스로에게 항상 고마운 것은 어찌했든 포기하지 않고 해냈구나 할 때지, 정말 이건 너무 잘 했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아니, 근데 30년 동안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신 분께서도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까? 새파란 기자는 어찌하오리까...

“아, 저는 앞으로 십년이 지나더라도 아마 똑같은 얘기를 할지도 몰라요. 정말 내가 포기하지 않은 거에 대해서 감사를 하는 거지, 내가 한 번도 어떤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매 작업마다 계속 내가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를 하는 것이고, 진화를 하는 것이지, 그리고 꾸준하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지, 제 능력을 들여다보자면 정말 천재들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 대는 것 정도?”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그와 함께 작품을 둘러보면서 소매 끝자락이 삼각 텐트를 친 모양처럼 입체적인 형태를 유지하도록 작업하느라 꼬박 일주일을 매달렸다는 얘기를 듣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삼각형 문양의 조각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공예인들과 씨름한 얘기(전통적인 조각보의 문양은 문창호처럼 사각형 모양이라고 한다)며, 재봉틀에 넣고 돌릴 수 없는 예민한 소재는 한 땀 한 땀 손으로 누벼 작품을 만들었다는 얘기 등, 30년 내공의 무용담이 어찌 한두 합뿐이겠는가. 다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스스로가 참 좋다며 웃는 모습이 무척 친근했다.

지난 5월 22일 이상봉은 프레타포르테(기성복 박람회) 부산의 피날레 무대를 환호 속에 마쳤다. 25주년 기념 전시가 끝나는 30일 이후의 일정과 앞으로의 계획, 30년 세월의 디자이너로서의 삶에 대한 소회를 들어보는 것으로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을 정리하려고 한다.

“일단 다음 달에 아프리카 여행을 잠깐 갈 예정이구요. 그리고는 이제 바로 컬렉션 준비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 이제는 디자이너로서 참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안에 갇혀서 내 작업도 잘해야 되고, 또 사회와 소통하면서 디자이너의 이런 생각들을 대중하고 같이 호흡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구요. 소통과 내 자신의 작업이 잘 유기적으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한글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세계화하는 그런 역할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