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이 바로 <참여와혁신>입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참여와혁신>입니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10.07.0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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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그들은 현재 뭘 하고 있을까?
삶은 어디서든 계속된다. 쭉~~
[창간특집Ⅲ] 요즘 뭐하세요?

올해로 창간 6주년을 맞은 <참여와혁신>은 이번 호를 기준으로 한 회도 쉬지 않고 총 73권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간 <참여와혁신>은 노동운동가에서부터 정치인, 문화예술인 그리고 아주 평범한 우리 이웃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자씩 정성껏 책에 담았습니다. 저마다의 사연들이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들도 제각기여서 각각의 모든 인터뷰가 새로웠습니다.

얘기를 꺼내니 당시 상황들이 주마등 같이 스쳐가네요. 인터뷰 이후 꾸준히 연락하며 만나는 사람들도 있고, 각자의 바쁜 생활로 인해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창간 기념호를 준비하며 문득 그들이 궁금해졌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인터뷰 당시 말했던 포부와 약속은 계획대로 잘 진행하고 있는지 말이죠.

그래서 <참여와혁신>이 그들에게 근황을 물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73권에 담긴 모두의 이야기를 싣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일단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만난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근황을 물었습니다. 요즘 뭐하세요?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다

지난 6월 2일 열린 지방선거는 선거도 재밌다는 사실을 널리 알린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야당의 후보 단일화에 힘입어 여당의 독주를 막았다는 평을 받으며, 그 결과가 지금까지도 정치, 사회 각 층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참여와혁신>이 만났던 사람들 중에도 이번 지방선거와 인연이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지난 2008년 6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던 민주노동당 손석형 의원(2008년 7월호, <“생활정치로 창원에서 제 1당 되겠다”>)이 이번 6.2 지방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선거가 끝난 후 손 의원에게 전화를 해서 어디냐고 물었더니 “감자 캐고 있는 중”이랍니다. 선거 기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던 ‘2년 동안 발로 뛰는 생활 정치,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를 선거가 끝나자마자 실천하는 중이라고 말하며 크게 웃습니다. 선거 승리의 원동력을 묻자 “현장을 ‘뽈뽈뽈’ 부지런히 다녔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진보정당이 생활정치를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생활정치란 유권자에게 작은 감동과 희망을 주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우리도 그의 신념을 한번 믿어보겠습니다.

반면 손석형 의원과는 달리 아쉬운 패배를 맛본 분도 있는데요, 바로 박종훈 경남도 교육위원(2009년 6월호, <도서관 바꿨으니 이제 교육도 바꿔볼까?>)입니다. 영화 <쇼생크탈출>의 주인공 앤디가 그랬듯 수없이 지방정부의 문을 두드려 학교 도서관 증축을 요구하고, 마침내 학생들이 찾는 도서관을 만들어냈던 박 위원은 교육감에 도전했습니다.

전국적으로 6명의 진보교육감이 탄생한 가운데 경남교육감에 출마한 박종훈 위원은 당선자와 2.7%포인트 차이로 아쉬운 패배를 맛봤습니다. 선거 후유증을 겪고 있지나 않은지 안부를 묻자 아직 선거 마무리가 덜 됐다고 답합니다.

“바깥에서는 석패라고 표현을 하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고 해주시니 힘이 되긴 합니다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는 아직 선거 막바지 정리가 끝나지 않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지역 학생들의 진로지도를 도울 수 있는 비영리법인을 세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교육 바꾸기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오늘도 나는 투쟁한다

노조법 개정, 타임오프 실시 등 노동계는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노조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김기태 철도노조 위원장(2009년 4월호, <“조합 활동은 행복해야 한다”>)입니다. 현재 그는 파업 주동자라는 이유로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입니다.

인터뷰 당시 7년간의 해고기간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아내를 위해 발 마사지를 해주고, 요리학원에도 다녔던 김 위원장은 그러한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철도노조 위원장이란 자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철도노조가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의 코레일 사장 취임 이후 철도노조는 불성실 교섭, 단협 해지, 조합간부 징계 등 어려움을 계속 겪었습니다. 이에 맞서 철도노조는 파업에 돌입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실업자가 넘쳐나는 데 공기업에서 파업하느냐”라며 냉랭한 반응으로 일관했습니다.

7개월 동안 진행되고 있는 1심 재판 최후진술에서 김 위원장은 “공사에서 성실하게 교섭에 임했다면 파업은 없었을 것”이라며 “우리사회에 아직도 헌법적 가치가 의미있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오는 7월 2일 열릴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지난해 일제고사 반대 체험학습을 시작으로 두 차례에 걸친 교사 시국선언을 주도한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2009년 5월호, <더 낮은 자세로 국민들과 함께하겠다>)은 여전히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거나 후원회비를 납부했다는 혐의로 검찰이 교사들을 기소하자, 정 위원장은 이에 맞서 거리에서 노숙농성과 단식농성을 수차례 진행했습니다. 6월 10일, 18일째 단식농성을 진행하던 그는 끝내 탈진해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최창식 대우조선노조 위원장(2008년 11월호, <“조합원과 함께 있으니 마음 편하다”>)도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최 위원장은 대우조선의 매각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08년 8월 위원장에 취임했습니다. 당시 대우조선의 매각을 맡았던 산업은행은 국내의 모 대기업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매각을 추진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결국 매각이 무산됐습니다.

이후 그는 바람직한 매각의 원칙을 주장하며 지난해 수차례에 걸쳐 산업은행 앞에서 상경투쟁을 진행했습니다. 현재까지 대우조선 매각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는 현재 올해 임·단협 교섭과 관련해 부분파업과 함께 상집위원회 철야농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삶을 고민하다 한편 노조활동을 끝내고 현장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흥석 전 민주노총 경남본부 본부장(2008년 12월호, <해고 7094일만에 노동운동가에서 현장노동자로 돌아가는 이흥석>)의 근황을 묻기 위해 전화를 했을 때, 그는 마침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무려 21년 만에 복귀한 현장, 잘 적응하고 있는 걸까요?

이 질문에 그는 껄껄 웃더니 “너무 편하고 좋다”고 답합니다. 제관 노동자로 선박의 블록을 조립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일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고 하네요. 그렇게 ‘일 하는 재미’에 빠져 사는 그가 지난 5월에는 다시 잠깐 휴직을 했습니다. 지방선거 때문입니다.

그의 아내인 이종엽 창원시의원은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창원시 의회 부의장까지 지냈고, 이번에는 도의원 선거에 나섰습니다. 늘 노동운동가 남편을 내조했던 아내를 위해 이번에는 그가 ‘외조’에 나선 것입니다. 선거를 마친 지금, ‘현장노동자’ 이흥석은 자신의 회사(한진중공업)가 구조조정에 나선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 전 본부장처럼 노동자로 돌아가 땀 흘리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2007년 시작된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투쟁을 기억하시나요? 장장 510일 간에 걸친 처절한 투쟁을 이끌었던 김경욱 전 이랜드일반노조위원장(2008년 12월호, <“민주노총이 변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은 현재 중소IT업체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복직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조합원들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합의에 따라 김 전 위원장은 노동운동을 정리하고 평범한 회사원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 전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자 “노동운동에서 떨어져 아주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렇지만 510일 동안의 투쟁이 쉽게 잊혀 지지는 않을 텐데요.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정말 후회 없이 오랫동안 싸웠다”고 말합니다. 김 전 위원장은 “쌍용자동차 투쟁에서 해고된 분들이 현재까지 고통 받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고통 받고 힘들어하고 있다.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현재를 설명합니다. 그 치열했던 기간을 헤쳐 나갔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학생과 시민들은 이러한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을까요?

그리고 지난해 하반기, 성폭력사건으로 총사퇴한 이석행 전 위원장의 잔여임기를 맡아 민주노총을 이끌었던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2009년 4월호, <지붕 샌다고 집 버릴 건가>)은 올해 초 진행된 선거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서 잠깐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최근 허리 통증이 재발해 몸을 추스르고 있는 중이랍니다.

서울지하철노조 출신인 임 전 위원장은 해고된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다시 돌아갈 일터가 없습니다. 임 전 위원장은 “<참여와혁신> 창간 6주년을 축하한다”면서 “지난 선거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이야기하자”고 전했습니다. 임 전 위원장에게서 지난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면 궁금하더라도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모양입니다.

 

새로운 일이 즐겁다

공직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삶을 꾸려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먼저 공직자로서 최고위직이랄 수 있는 장관급까지 지낸 후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무급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김성중 전 노사정위원장(2009년 2월호, <“눈물 닦아주는 게 아니라 안 흘리게 하는 게 공직자 역할”>)은 여전히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상임고문으로 돈을 벌고,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그 돈을 쓰는 일을 계속 하는 와중에 일이 더 늘었다며 그는 함빡 웃습니다.

그는 올해 6월부터 전북대학교 석좌교수직을 맡아 법대, 상대, 사회과학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문제에 대한 특강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김 전 위원장은 얘기 도중에 “요새 즐거운 일이 생겼다”며 자랑을 꺼내놨습니다. 바로 김 전 위원장의 행정고시 동기회에서 매달 한 차례씩 ‘밥 퍼’ 봉사활동에 동참하기로 한 것입니다. “은퇴한 친구들도 있고, 또 새로운 일을 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이들이 흔쾌히 함께 하기로 했다”며 시작된 그의 자랑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한 해, 노동계 키워드를 뽑으라면 ‘탈퇴’를 뽑을 수 있습니다. 많은 노조들이 상급단체를 탈퇴하고 그 때마다 보수 언론들은 기회다 싶어 상급단체를 비난하는 기사들을 수없이 내놓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민주노총이 가장 많은 표적이 됐을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2008년 12월 위원장으로 당선된 김구현 KT노조 위원장(2009년 2월호, <“실추된 이미지 회복 위해 최선”>)이 이끄는 KT노동조합의 사례가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2009년 7월, 정치투쟁 중심의 민주노총 운동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새로운 노동운동을 표방하며 민주노총 탈퇴를 위한 총회를 소집했습니다. 이에 대해 KT노조 조합원은 94.9%라는 압도적인 찬성표로 화답했습니다. 현재 김구현 위원장과 10대 집행부는 창조적 신노사문화운동(일명 ‘HOST’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한국노총에서도 공공연맹 소속 일부 공기업 노조(토지공사노조, 수자원공사노조, 도로공사노조, 인천국제공항공사노조)가 탈퇴해 전국공기업노동조합연맹을 결성했습니다. 그 중, 2008년부터 주택공사·토지공사 통합 논란 속에 임기를 보내며 통합 반대 투쟁을 이끌었던 토지공사노동조합 9대 집행부 고봉환 위원장(2009년 4월호, <선진화? 하려면 제대로 해라>)은 6월 임기를 마치고 10대 박해철 집행부에 노동조합을 인계하게 됐습니다.

그는 임기를 마무리하는 소감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아쉬움’이라고 말합니다. 고 위원장은 “직원들이 아주 힘들어하고 있다. 힘든 모습을 어루만져주고 안심을 시켜놓고 떠나야 하는데 힘든 상태 그대로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 앞으로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상황에 대한 아쉬움,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아쉬움’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1월 수자원공사노동조합 8대 집행부를 꾸린 장병훈 수자원공사노조 위원장(2009년 3월호, <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은 요즘 개정된 노조법 적용의 문제점을 해결하려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 정권이 임기가 많이 남은 상황에서는 장기전으로 가야한다. 수공노조는 단위사업장 차원에서, 연맹 차원에서 돌파구와 내실을 찾는 방향으로 나가려 한다”고 전했습니다. 두 위원장은 현재 전국공기업노동조합연맹의 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사람이 곧 예술이다

이제는 방송도 ‘풀뿌리 민주주의’ 시대. 마포지역 내 주민을 대상으로 한 ‘마포FM 100.7’(2008년 8월호, <우리는 오늘도 함께 만드는 행복을 꿈꿉니다)>의 <톡톡마포>는 2009년도 ‘공동체라디오어워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톡톡마포>는 구민 24명이 제작에 참여해 지역 소식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톡톡마포>의 김정남 PD는 “아마추어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이라 기성 방송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마포의 색깔을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좋았다”고 수상소감을 밝혔습니다.

“왜 방송은 늘 서울 이야기, 큰 이야기만 할까 항상 의문을 가졌다”는 김PD는 “<톡톡마포>를 통해 소소한 주변의 이야기도 충분히 재미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다짐합니다.

2000년 돌연 성균관대 사학과에 입학해 인문 계열 수석 졸업으로 눈길을 모았던 개그맨 정재환(2008년 11월호, <‘열정’을 이기는 것은 없다>)은 ‘한글문화연대’의 부대표로 아름다운 우리말을 알리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논문을 계속 쓰고 한글운동도 계속할 계획”이라며 “제 연구과제인 ‘동포들의 민족교육’에 대해 기회가 된다면 방송으로 알리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2009년 연극 ‘굿 닥터’에 출연해 배우로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여기 왕성한 활동으로 주목받는 예술인이 또 있습니다.

지난 인터뷰에서 “죽음을 노래하는 이유는 삶의 희망 때문”이라고 말한 소리꾼 장사익(2009년 3월호, <“꽃이 늦게 핀다고 서러운 것은 아니여”>)은 꾸준한 공연으로 관중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지난 6월 4일 일본 오사카 NHK홀에서 열린 장사익 콘서트 ‘꽃구경’은 공연 2주 전에 1,400석 전석이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고, 지난해 인터파크의 ‘클래식, 전통예술’ 부문에서 장사익이라는 이름은 티켓파워 1위로 선정됐다고 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한국인의 혼과 정서를 표현하는 소리꾼 장사익. 그를 향한 관중들의 사랑은 여전히 흐드러지게 만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당시 그가 불러준 ‘동백아가씨’ 한 대목이 아직도 귓가에 아련히 맴돌고 있습니다.

문화예술이 꽃피는 데 기획자의 역할이 빠질 수 없죠. 국내 마임 1세대 감독인 유진규 감독(2009년 4월호, <말 없이 말할 때 느끼는 교감>)은 지난 5월 올해로 22회를 맞는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을 맡아 성공적으로 행사를 이끌었습니다.

이번 춘천마임축제는 ‘아!水라장’을 개막으로 9999마리 공지어(공지천에 사는 가상의 물고기)를 모아놓고 불태우는 난장인 ‘아!우다마리’까지 관람객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갔습니다. 춘천마임축제는 매 회가 더해갈수록 완성도가 높아져간다는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 모두는 유 감독을 포함한 스태프들의 땀이 이뤄낸 수확입니다.

상상은 현실이 되기에 족하다

한편 홍대 앞 어르신들의 청춘 회복 축제 ‘나이 없는 날’과 클럽데이 등을 기획한 상상공장 대표 류재현(2009년 5월호, <낯선 문화도 자유롭게 만나라>)은 현재 경북 영덕에서 ‘한옥의 날’과 ‘한옥길’을 만들 계획으로 분주합니다.

낙후된 농촌을 관광도시로 만들기 위한 ‘문화 이모작 사업’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류 대표는 “홍대에 클럽데이를 만들었던 경험으로 전통문화자원과 주민의 문화성을 활용해 ‘농촌을 더욱 농촌답게’ 만들 것”이라 다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땅의 실업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고 있는 ‘전국백수연대’의 ‘프로 백수’ 주덕환(2009년 4월호, <백수들이여 기죽지 말고 당당해져라! >)을 호명하겠습니다. 그가 1998년 만든 ‘전국백수연대’ 온라인 카페는 1만5000여명의 회원들이 가입해 서로의 고충을 나누는 교류의 장이 됐습니다. 직업 탐방프로그램과 라디오 방송 등을 진행하며 ‘백수여,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서라’를 외치던 그는 요즘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2009년 ‘독도쿠키사업단’을 설립해 상근 직원 13명에 이르는 어엿한 과자공장의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독도쿠키사업단은 온라인 카페 ‘전국백수연대’의 회원들이 “취직이 안 된다면 아예 창업을 하자”는 생각으로 만든 회사로 독도 모양을 본뜬 과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처음엔 적자신세를 면하지 못했던 독도쿠키는 각고의 노력 끝에 공기업과 대형 매장을 중심으로 조금씩 호응을 얻어가는 중입니다. 24세 말단부터 최고령 77세에 이르는 사원들은 오늘도 열심히 ‘백수 탈출’의 꿈을 담은 과자를 굽고 있습니다.

2년 전 만났던 이들과 통화를 하며, 처음 그들과 마주했을 때만큼이나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얼핏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상투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실제로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 글에 언급된 사람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이 흘린 땀으로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모두의 승리를 기원하며 <참여와혁신>도 부지런히 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