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혁신 열풍 지나간 자리 성과는 ‘빈 강정’
경영혁신 열풍 지나간 자리 성과는 ‘빈 강정’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5.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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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정도 높지만 구성원 참여·성과는 제자리걸음

전 세계의 기업이 생존을 위한 ‘혁신 경쟁’에 휩싸였다. 이 경쟁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우리 기업들은 각종 기법의 도입과 벤치마킹으로 혁신의 고삐를 죄고 있다. 하지만 ‘급히 먹은 밥이 체하는 것’처럼 성급하게 도입된 많은 기법들은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보다 구성원 간 갈등으로 덫에 걸린 모양새를 하고 있다.

우리기업의 환경에 맞지 않는 외국기법의 무분별한 도입, 지속적이고 끈기 있는 변화보다 단기성과를 노리는 경영진, ‘왜’라는 질문은 없이 ‘남이하니까 나도한다’는 식의 추종, 현장에 쌓이는 ‘혁신 피로감’ 속에서 경영혁신 운동을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뒤늦게 ‘우리식 모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생산현장이 바뀌지 않고는 혁신의 길은 여전히 요원하다.
<참여와혁신>은 우리기업의 체질과 조직문화에
맞는 ‘한국형 경영혁신 모델’ 을 찾기 위해 3회에 걸친 기획을 마련한다.

    ● 대해부 _ 경영혁신 활동, 어디까지 와 있나 ①

     ● 노사관계와 경영혁신 사이의 ‘깊은 골’ ② (2005년 11월호)

     ● 한국형 경영혁신 모델을 찾아서 ③ (2005년 12월호)



경제위기 이후 우리기업에 불어닥친 ‘경영혁신’ 열풍은 이제 기업의 일상적 화두로 자리 잡고 있지만 혁신의 성과는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말 제조업에서 시작된 경영혁신 운동은 2000년대 들어 서비스업과 공공기관 등으로 확대됐고 최근에는 정부조직까지 혁신에 나서 ‘혁신 공화국’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가 됐다.

90년대부터 본격화된 우리기업의 경영혁신 운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전개돼 왔다. 가장 큰 특징이 내부적 변화의 필요성이 아니라 외부에서 강제된 필요성에 의해 혁신운동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외환위기와 WTO 체제 출범으로 대표되는 ‘세계화’는 우리기업에게 ‘혁신’을 생존의 조건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경영혁신 운동도 외국의 선진 기법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1980년대까지는 일본의 경영혁신 기법이 주로 도입됐고 90년대 들어서는 미국의 기법이 주류를 이뤘다.

또 다른 특징은 양적 성장 중심의 혁신 운동이다. 외국의 경영혁신 기법이 70년대에는 성장성, 80년대에는 수익성, 90년대에는 장기적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추진되어 왔다면 우리기업은 90년대까지는 성장성 중심으로 기법을 도입하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야 장기적 경쟁력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경영혁신 기법이 한꺼번에 도입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경영혁신 전개 수준 50% 못 미쳐

그렇다면 현재의 경영혁신 운동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최근 국내 3천대 기업 중 88개사의 CEO와 264개사의 혁신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05 한국산업의 경영혁신 실태조사’ 결과는 우리기업의 경영혁신 운동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응답자의 95% 이상 (CEO 96.6%, 실무자 98%)이 경영혁신 운동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지만 혁신기법을 도입한 기업이 답한 추진 및 전개 정도는 높지 않았다. CEO의 45%, 실무자 47%만이 경영혁신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고 대답했고, 매우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는 답변은 7% 미만에 머물렀다. 경영혁신의 필요성과 도입 정도는 높지만 실제로 도입된 기법의 활성화 정도는 매우 낮다는 점을 입증하는 결과다.

주요 도입 기법을 살펴보면, 2000년 이후에는 제조업과 비제조업을 불문하고 ‘경영전략’과 ‘고객만족’을 지향하는 혁신활동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80~90년대에는 생산혁신과 공장단위의 시설관리, 품질혁신이 주류를 이뤘다면 2000년 이후에는 품질혁신이 상당히 비활성화되고 대신 그 자리를 고객만족과 경영전략이 차지한 것이다. 이 때부터는 품질혁신보다는 경영성과와 고객만족 분야의 혁신 활동이 주류라고 볼 수 있다.

상위 순위별 도입 기법은 고객만족경영이 46%, 경영전략부분이 38.7%, 경영품질 부문이 25%로 나타났다. 업종별로 도입 기법을 분류해 보면 제조업에서는 6시그마·제안활성화· TPM(전원참여 생산보전)· 5S(친절운동)· 원가혁신 등에 대한 혁신활동 전개 경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서비스·공공부문은 총제적 경영혁신, 윤리경영, CS(고객만족)경영에 대한 경험이 높게 조사됐다.

구성원 참여도와 혁신운동 성과 비례

도입 기법이 점차 다양해지고 도입률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었지만 혁신 활동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CEO와 실무자 공히 58점 이하의 만족도를 나타냈고 매우 만족한다는 답변은 CEO 4.5%, 실무자 4.1%에 그쳤다.
경영혁신 성과 불만족 이유는 ▲공감대 형성 부족이 20.7%로 가장 많았고 ▲CEO의 의지부족 17.1%, ▲구성원 비협조 13.7%, ▲보상체계·평가 부족 13.7% 순이었다. 공감대 부족과 구성원 비협조 항목을 합치면 34.4%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CEO와 실무진 모두 구성원 참여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직책에 따라 문제 인식의 수준에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구성원 참여도에 대한 질문에서 CEO는 평균 64.8점을 준 반면 실무진은 53.7점으로 경영진보다 다소 낮게 평가해, 실무진과 경영진 사이의 인식 차이를 보여줬다.

조사를 총괄한 능률협회컨설팅 CS본부 김희철 본부장은 “조사 결과 우리 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경영혁신의 문제점은 구성원의 참여 부족이라는 점이 명확히 드러났다”고 지적하고 “혁신은 ‘기법’이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인데 우리 기업의 담당자들은 ‘혁신=참여’가 아니라 ‘혁신=기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고 말했다. 구성원과의 합의, 구성원의 참여가 성공의 관건이지만 이런 합의점을 찾은 기업은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 태평양제약

 

 

 

 ‘혁신 = 기법 도입’ 이라는 오해 만연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지금까지의 경영혁신 운동의 특징이 나타난다. 첫 번째는 CEO의 의지와 구성원공감대가 부족한 상황에서 각종 혁신이 추진되어 왔다는 점이다. 응답자 중 CEO의 76.4%와 실무자의 71.4%가 ‘CEO의 리더십’을 경영혁신 때 고려할 요소의 1순위로 꼽은 것과 달리 CEO의 리더십과 구성원 참여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 ‘경영혁신의 목표가 전 구성원과 공유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 중 58.3점을 기록했다.

능률협회컨설팅 TCS연구소 이주열 원장은 “이 조사에서 CEO의 리더십이란 단순히 리드하는 능력이 아니라 강력한 혁신 리더십을 의미한다”며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수동적 경영혁신이 아니라 조직 내 혁신의 필요성을 충분히 공유하면서 혁신 활동을 이끌어 가는 것이 ‘혁신 리더십’의 요체”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총체적 혁신보다는 개별과제 중심의 단기적 혁신이 주를 이룬 점이다. ‘경영혁신의 방향이 장기적 관점에서 설정되어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100점 만점 중 60점, ‘혁신 테마가 부분별로 연계성 있게 전개되는가’ 라는 질문에는 55.6점의 점수가 나왔다.

현재 제조업의 경우 6시그마, 제안 활성화, TPM, 5S 등은 생산, 보전, 서비스 등 특정 분야의 개선을 목표로 하는 기법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미래의 혁신 과제를 묻는 항목에서는 변화관리, BSC(성과관리시스템), 고객만족 등 경영전반에 걸친 총체적 혁신을 지향한다는 답변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부분적이고 개별적인 혁신활동의 변화 필요성을 반영하는 결과다.
우리기업이 경영혁신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 지 20년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혁신 활동이 겉돌고 있다는 지적은 끊이질 않는다. 이런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기법이 소개되고, 기업들은 이전의 혁신활동에 대한 평가 없이 또 다른 기법으로 옮겨가기를 반복한다.
지금 우리기업에게는 ‘어떤 기법을 도입할 것인가’보다 ‘왜 혁신하는가’,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