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지하 탈출할 수 있겠니?
우리, 반지하 탈출할 수 있겠니?
  • 배민정 기자
  • 승인 2010.07.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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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도 그늘도 너무 비싸다

배민정 mjbae@laborplus.co.kr
0. 
두 친구 얘기를 해보자. 편의상 A양, B군이라고 부르겠다. 둘의 공통점은 26세라는 나이와 서울의 반지하에 산다는 것.

1.
A양은 주중에는 출판사에서, 주말에는 비키니바에서 일한다. 이사를 위해 보증금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사는 월셋집의 계약 만료 기간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지금 있는 곳의 보증금을 뺀다면 어디든 한 몸 누일 데는 찾을 수 있겠지만, 그녀는 다시는 반지하에 살고 싶지 않다고 이를 악문다.

그녀의 집은 마포구의 다세대주택, 보증금 500에 월 40만원이다. 방이 두 개 있어 룸메이트랑 20만원씩 내고 지낸다. 돈을 내지 않고 지내는 생물들도 있다. 지네, 바퀴벌레, 쥐. 가끔 남자친구들이 와서 이것을 잡아주고 간다. 그녀는 석 달 안에 기필코 500만원을 모아 1000만원을 저축할 계획이다. 이 돈은 그녀를 지상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그때까지는 월요일 출근 전, 그녀에게 허락된 수면시간은 세 시간이다.

얼마 전 그녀를 만났을 때 나는 주절주절 물었다. 휴일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는지, 잠은 잘 자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은지, 일은 험하지 않은지 등등.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고 맥주를 들이마실 뿐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맥주잔을 탕하고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씨발, 견디고야 말겠어.”

2.
요즘 내 친구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연애 따윈 관심 없다고 입을 모은다. 내 주변에 국한된 얘기인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20대들 90%는 연애가 귀찮다는 거다. 이유를 물으면 돈이 없어서도,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다. 얼마 전 동네 술집에서 몇몇 친구들과 노닥거릴 때, B군은 한숨을 쉬며 털어놨다.

“사실, 예쁜 여자를 봐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함께 있던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너희들, 컵라면 너무 많이 먹어서 고자된 거 아니니?”

화제는 흐지부지 환경호르몬으로 넘어갔지만, 이후로도 비슷한 말을 여러 번 듣게 되며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세는 ‘식물남’이라던데, 지금의 20대는 견고한 자기애 덕분에 이성과의 접촉이 필요 없는 걸까?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기 때문일까? 아니면 슬슬 연애가 질릴 때인가? 나는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심리적 고자’로 만드는 걸까.

3.
며칠 전 B군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나는 비로소 한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B군은 미술을 전공한 친구로, 잡지에 일러스트를 그려 생활을 꾸려간다. B군이 서울에 둥지를 튼 것은 3년 전, 나는 그동안 그가 숱하게 집을 옮겨 다니는 것을 목격했다. 이상하게도 이사를 할 때마다 그의 방은 점점 더 작아졌다.

그가 이번에 들어간 집은 지대보다 한 뼘쯤 가라앉은 곳이다. 방문을 열자 이불과 앉은뱅이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만으로 방은 꽉 찼다. 옷장은 고사하고 행거를 놔둘 공간마저 없어 벽에 못을 빼곡히 박아 놨다. 바야흐로 눈부신 여름이었으나, 방안 가득 비 오는 날의 하수구 냄새가 맴돌았다. 그가 가진 옷가지들이 주르르 벽에 붙어 습기를 먹어가고 있었다. 나는 정말 여기서 자느냐고, 여기서 매일매일 지내는 거냐고 자꾸 확인했다.

이런 방에서는 누구도 연애를 꿈꿀 수 없을 것 같았다. 동침은 고사하고 두 사람이 다리 뻗고 앉아 있을 공간도 없으니. 아니, 그 이전에 연애를 꿈꿀만한 생의 의지조차 뿌리 뽑힐 것 같았다.

B군은 얼마 전 광고에 자주 나오는 아파트의 모델하우스에 가봤다고 했다. 그냥 심심해서 들어가 봤는데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지 뭐야. 소파에 앉아 있으니 세상이 내 것 같지 뭐야. 그런데 갑자기 너무 우울해지지 뭐야. 그는 중얼거렸다.

“충분히 시간이 지나면 작은 성공 정도는 이룰 거라 생각하지만, 그러면 내 20대는 뭐지?”

4.
집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나 역시 8개월 전 이사를 준비하며 참담한 심정을 맛봤다는 것만 말해둔다. 부동산 중개인은 “1억이 큰돈 같지만 집을 구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며 헛웃음을 지었고 나도 따라 허허허 웃었다.

5.
A양은 블로그에 썼다.

이보다 더 나빴던 적이 있었다. 그때를 견뎌온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제 한 계절만 지나가면 상황이 나아질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괜찮다. 이번 여름을 팔아서 쥐와 벌레가 없는 방을 살 것이다. 그곳에서 모든 문을 잠그고 나면 불을 끄고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여름이 공평하게 흘러가고 있다. 지상에서도, 지하에서도. 내가 아는 것은 그뿐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한 조각 햇빛의 가격에 놀랄 뿐이다.

 

 

배민정의 타인
한 사람과의 만남, 그것은 한 개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경계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 E. 레비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