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가 기억나십니까?
초등학교 교가 기억나십니까?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0.07.2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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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 벨레(die Welle)>와 스포츠머리 학창시절
▲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전 강원도 철원의 동송초등학교(국민학교에 입학해서 국민학교를 졸업했지만)에 입학해서 3학년 때까지 다녔습니다. 춘천으로 전학와서 그곳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쳤지요.

1988년에 입학했으니 어느덧(?) 22년이 흘렀습니다. 전 아직 동송초등학교의 교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백두산 정기 받아 금학산 높고~”로 시작하는 교가를 선생님 따라 한 소절씩 배우면서 ‘정기를 받는다는 게 무슨 말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끔씩 ‘어릴 땐 더 똑똑했던 거 같은데...’라는 착각을 하면서 지냅니다만, 특별히 제가 신동이었던 건 아닙니다. 남자들이라면 공감하는 얘기겠지만, 두드려 맞으면서 외운 군번이나 총번 같은 건 수십 년 지나도 잊히지 않으니까요.

병아리처럼 삐약삐약 따라 외운 교가는 신통하게 20년이 지나도 기억이 납니다. 담임선생님의 풍금 반주 소리까지 생생히 기억납니다. 당시 우리 반에서 쓰던 풍금은 가온 다(도) 음이 소리가 작았습니다.

중·고등학교 교가는 머리를 쥐어짜면 기억이 납니다. 대학의 교가는 졸업 때까지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군요.

"희한하게 많이 본 모습 같네..."

▲ <디 벨레(die Welle)> 공식 홈페이지. http://www.welle.info

<디 벨레(die Welle)>라는 영화를 소개할까 합니다. <걸스온탑>이라는 재기발랄한 코미디를 찍은 데니스 간젤 감독의 2008년 작품입니다. ‘벨레’는 영어로 'wave(파도)'와 같은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해운대>같은 재난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의 배경은 독일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김나지움, Gymnasium)입니다. 독일의 고등학교에선 ‘프로젝트 주간(Projektwoche)’이라고 해서 교과 이외의 특별한 활동을 하는 주간이 있다고 합니다.

한 젊은 교사의 주도로 영화 속 청소년들은 일주일간 ‘전체주의’에 대한 일종의 실험을 진행합니다. 나치즘의 광풍을 경험한 곳이라 독일인들은 전체주의적 성향에 대해 반사적으로 경계를 합니다. 게다가 미디어가 눈 돌아가게 발달하고 있는 요즘 세상에 다시금 전체주의가 가능한지를 확인해 보는 게 실험의 요지입니다.

선생과 학생들은 디 벨레라는 가상의 조직을 만듭니다. 선생이 학생들에게 ‘강요’한 것은 단 두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토론을 진행할 때 자유로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반드시 일어서서 말할 것, 그리고 자신을 친칭이 아닌 존칭으로 부를 것(독일어의 존칭은 주로 초면인 상대에게만 씁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집단 체조’를 권장합니다. 국민체조 수준의 복잡한 퍼포먼스도 아니고 단순한 제자리걸음을 시킵니다. 다만 클래스의 모두가 발걸음을 맞춰 걸어야 하지요. 전체주의 클래스 바로 아래층에는 무정부주의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는 클래스가 있었습니다. 무정부주의 담당 교사는 학생들에게 ‘졸음전도사’라고 불리는 답답한 사람이었지요.

시큰둥해 하는 학생들의 제자리걸음은 무정부주의의 ‘졸음전도사’를 공동의 적으로 설정하면서 군홧발 소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일사분란해집니다. 아래층에서 아무리 항의를 해도 소용없습니다. ‘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나약함이 필요합니까?

그 이후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로 모든 게 진행됩니다. 조직의 명칭을 정하고 유니폼을 맞춰 입고, 조직의 마크나 강령, 거수경례의 방법까지 정합니다. 점점 더 실험 수업에 심취하면서 학생들은 더 이상 서로 ‘친구’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동무(Kamerade)’로 받아들입니다.

영화의 자세한 결말을 듣는 것은 제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일이니까 이 정도만 소개하겠습니다. 소재는 신선할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주제는 뭐 예상하는 그렇고 그런 얘기입니다. 전달하는 메시지도 뻔하고요.

다만 시청 중에 흥미로웠던 점은 디 벨레의 이런저런 활동이 묘하게 제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유니폼도 맞춰 입었고 교훈은 물론이요 반마다 급훈도 따로 있었고, 20년 전 교가는 아직도 기억나는가 하면 중·고등학생 6년간은 머리도 박박 깎고 지냈지요.

요즘 초등학생들이야 입학 전 한글은 물론 알파벳이나 구구법까지 익히고 들어간다지만 제가 1학년 때는 학교 공부에서 한글 익히기가 꽤 비중이 컸습니다. 국민교육헌장 10번 베껴쓰기 이런 것을 고사리손 쥐나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소위 지역 명문이라는 고등학교 입학식 날 느낌도 생생합니다. 신입생들은 강당의 아래에 도열하고 2·3학년 선배들은 위쪽 스탠드에 자리잡고 일어서 후배들을 환영하는 의미로 발을 구르며 '빵빠레'를 선보였습니다. 교복에 검정 구두를 맞춰 신는 게 복장 규정이었기 때문에 소리가 울리는 강당에서 '척척' 뒷굽을 부딪치는 소리와 우렁차고 절도있는 동작은 꽤나 신입생을 주눅들게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학교가 많이 달라졌겠지요. 현장의 선생님들과 학부모들 모두 더 좋은 교육을 위해 고민하고 실천했으니까요. 새로 취임한 교육감이 ‘체벌 금지’를 언급한다든지 ‘무상급식’과 같은 ‘과격한(?)’ 공약이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거론된다든지 하는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내용은 잘 모르지만 ‘학생인권조례’ 이런 명칭만 들어도 참 가슴 설렙니다.

영화를 같이 봤던 사람은 “우리 사회 곳곳에 내재된 전체주의성” 이런 얘기를 운운했습니다만 그 분은 초등학교 교가를 기억하진 못하시더군요. '난 왜 기억나지?' 하면서 속으로 좀 ‘허걱~!’ 했습니다. 그냥 그랬다는 얘기입니다. 영화를 보며 내 학창시절이 기억났습니다.

더 예전에 학창시절을 경험하신 분들은 ‘귀엽게 저게 뭐야’라고 반응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